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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나 Mar 24. 2023

돼지머리국밥

"어디니? 트럭 중고로 사려고 지금 너네 집 근처에 왔는데 점심 안 먹었지? 전에 얘기했던 그 국밥집으로 와라."

"응? 나 지금 샤워하려고 하는데?"

"아빠도 입금하러 잠깐 은행 다녀올 테니까 샤워하고 와."

"알겠어요."

영주는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전화가 오늘은 당황스럽지 않고 오히려 반가웠다. 오랜만이라 그런가. 아니면 전에 아버지가 여러 번 얘기하시며 영주 집 근처 맛집이라고 꼭 가보라고 했던 곳을 함께 가게 되어서 그럴까. 영주는 기분이 좋았다. 겨울이 지나 다시금 찾아온 따스한 봄날씨에 살랑살랑 걸어 나가보니 아버지가 짙은 베이지색의 트럭 옆에서 여기저기 살펴보고 계셨다.

"아빠, 차 샀어요?"

"응. 트럭 중고로 샀어. 엄청 새 차 같아. 당근마켓에 올라왔길래 보러 왔다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다른 트럭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더구나."

아버지는 에어컨도 고장 나고 운전할 때마다 덜컹덜컹 큰소리 나던 예전 트럭을 폐차시키고 새 트럭을 알아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당근마켓에 괜찮은 트럭이 올라와서 엊그제 보러 왔었다가 고민 끝에 샀다. 

"차 안은 더 새 차야. 어떻게 이렇게 깨끗하게 쓸 수 있지. 영주야 타봐. 에어컨도 빵빵하게 나오고. 올여름 바다 갈 때 아주 좋겠어."

"바다?"

"응. 애들 다 타도 자리가 넉넉할 것 같다. 시원하고. 튜브며 텐트며 뒤에 다 실을 수 있겠어!"

소풍을 기다리는 아이 마냥 신이 난 아버지의 표정에 영주는 문득 미주와 진주 아이들이 여름 방학에 부모님 댁에 자주 놀러 가 바다 물놀이를 즐겼던 것이 생각났다. 영주는 아버지가 포도 농사 때문에 괜찮은 트럭이 필요해서 산 거라 생각했었는데 착각이었다. 손주들이랑 올여름 바다에 다니려고 에어컨이 잘 나오고 새 차처럼 깨끗한 트럭을 산 거였다.

"그러네. 시트도 엄청 새 거야. 안은 트럭이 아니라 승용차 같은데. 너무 좋아."

"시내 나올 때 타도 될 정도야! 하하하."

갓 구매해 뽀송한 트럭을 타고 국밥집으로 향했다.

"여기 아빠 잘 아는데야. 자주 와서 먹거든. 느끼하지 않고 아주 깔끔해. 맛집이야. 맛집."

'자주..?'

영주는 아버지가 자신의 집 근처에 오셔서 자신에게 연락을 하지 않고 국밥집에서 국밥만 드시고 가셨다는 말에 갑자기 미안해졌다.

'아빠는 우리 집에 오는 게 불편하신가. 내가 불편함을 드렸나.'

영주는 언제든 편하게 부모님 댁을 찾는데 아버지는 딸 집을 편하게 드나들 수 없는 게 영주만의 집이 아니라서 그러신 것 같아 이해되면서도 조금 슬펐다.

'엊그제도 오셨으면 연락하시지.'

아버지는 식당에 들어서서 주인아저씨와 한참을 인사하셨다. 원래 아시는 사이신가 궁금했다. 

"얘가 우리 큰 딸. 여기 세명아파트 근처에 살아."

영주 아버지는 영주를 밑반찬을 듬뿍 가져오시는 아주머니께 소개했다.

"아, 그전에 얘기했던 큰 딸이구나. 아빠랑 똑같이 생겼네."

영주는 아버지와 단둘이 음식점에서 먹는 것도 처음이지만 지인분께 영주를 소개하는 걸 듣는 것도 처음이었다. 매번 영주 어머니가 얘기하셨다. 함께 길을 걷다가 지인을 만나더라도 서로 안부 얘기만 하시고 옆에 서 있는 영주는 그 자리에 없는 것 마냥 대하셨다. 영주는 동생들과 달리 변변한 직업이 없으니 소개할 게 없겠다 생각하며 아버지를 민망하게 해 드리는 것 같아 매번 죄송스러운 마음이었다. 그럴 때면 영주는 늘 고개를 숙여 눈인사만 하고 조용히 지나갔었다.

"안녕하세요. 여기 맛있다고 아버지께 많이 들었어요."

영주는 아버지가 자신을 지인분에게 큰 딸이라고 말하는 순간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아버지와 딸이 단둘이 자주 데이트하는 것처럼 생각이 들어서 아니 앞으로 그럴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이 생겼다. 

"아버지가 맛있다고 큰 딸 데리고 온다고 그랬었어요. 맛있게 먹고 가요."

"영주야. 뭐 먹을래? 돼지머리고기 수육도 먹을래?"

영주 아버지는 영주에게 국밥 다음으로 맛있는 수육도 사주려고 하였다.

"아니야. 국밥만 먹어도 될 것 같아. 너무 많아"

"그럼 포장해서 갈래? 저녁에 애들이랑 같이 먹어."

"응. 그럴까? 사람 많은 거 봐봐. 진짜 아빠 말대로 맛집이네. 맛있겠다."

영주에게 꼭 사주고 표정의 아버지를 보며 거절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자신의 단골 식당을 자신 있게 소개하는 게 귀엽기도 했고 평소와 다른 아버지의 모습에 조금 낯설었다. 

"집에서 가까우니까 평일에 너 혼자 밥 차려 먹기 귀찮으면 여기 와서 먹어. 돼지머리고기는 그 콜라겐이 많다더라. 피부에도 좋잖아. 혼자서 먹는 사람 여기 꽤 있으니 편히 와서 먹어도 돼."

영주는 평일 점심을 대부분 혼자 먹어서 대충 라면이나 빵으로 때우는데 아버지께 들킨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평소와 다르게 말도 많으시고 사근사근한 아버지의 모습에 영주는 자주 이런 시간이 있었으면 했다. 부모님 댁에서 늘 뵙던 아버지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오늘은 오로지 아버지와 서로의 이야기를 깊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새우젓 넣으면 더 맛있어. 부추도 넣고."

"네. 새우젓은 처음 넣어보는데."

"영주, 밥은 왜 이것만 먹어? 더 먹지."

"나 다이어트 중이거든. 국물이 너무 맛있어서 다 먹었지만."

"중고차 전문점 세 군데를 다니고 당근마켓으로 여러 차를 봤는데 이 차보다 좋은 게 없더라고. 이틀을 고민하다 팔릴까 봐 아침에 결정하고 왔지."

"차 너무 좋아. 중고인데 새 차 같아서 아빠 좋겠다."

"영주야, 겉절이 먹어봐. 여기 밑반찬이 너무 깔끔하다. 짜지도 않고. 간이 딱 좋단 말이야."

"정말 그러네. 김치 너무 맛있다. 나 이렇게 갓 한 것 같은 김치 너무 좋더라. 김치 포장하고 집에 가져가고 싶어."

"국물은 더 깔끔하다고. 면은 여기 넣고 먹는 거야."

"네."

영주와 아버지의 이야기는 쉴틈이 없었다. 영주는 아버지가 이렇게 수다쟁이셨나 흠칫 놀랐다. 


"나 중고차 샀어. 저기 보여? 완전 새 거야 새 거."

영주 아버지는 주인아주머니께 차를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멋지네. 새 차네. 뭐 하려고 샀대?"

"밭도 다니고 애들 태워서 여름에 바다에 다닐라고. 널찍해서 애들 다 태우고 다닐 수 있겠어. 엄청 좋다니까."

"에고. 밭은 핑계고 너네 아빠 귀여운 손주들 태워서 바다에 데리고 다닐라고 차 샀나 보다."

주인아주머니는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며 영주를 한참 바라보셨다.

영주는 아버지의 즐거움이 손주들 데리고 바다에 놀러 가는 것이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차 얘기하시면서 영주한테든 주인아주머니한테든 애들 바다 데리고 가는 얘기뿐이었다.

"아빠는 애들 데리고 바다에서 물놀이하는 게 그렇게 좋아요?"

"좋지. 이젠 에어컨도 빵빵 나와서 꼬맹 이들 여름에 차에서 덥다고 찡찡대지 않겠어. 하하."

영주 아버지는 올여름을 상상이라도 하는 듯 빙그레 미소를 지으면서 차를 한참을 바라보셨다. 영주는 미주, 진주가 여름이면 애들을 거의 맡기다시피 하며 부모님을 힘들게 한다고 생각했다.

'에휴. 아빠는 딸이며 손주들 뒤치다꺼리하시느라 힘드시겠네.'

영주는 그럴 때면 미주와 진주가 철이 없다고 생각했다. 자기들 편하라고 애들을 할아버지한테 맡기고 편하게 육아하는구나 하고 혼자 지레짐작 생각했다.

그것은 영주의 큰 착각이었다. 아버지를 힘들 게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퇴직 후 무료했던 아버지의 삶에 즐거움과 기쁨을 주는 선물 같은 시간이었던 것이다. 영주의 섣부른 생각에 영주의 아이들은 할아버지와 함께 한 번도 바다를 못 가본 게 너무나 죄송스러웠다.

영주는 아버지와 점심을 먹고 헤어지면서 문득 옛 생각이 났다. 영주 아버지가 영주 어머니를 힘들게 설득해 영주 가족 모두 계곡에서 텐트 치고 수영하고 하룻밤 잤던 날들, 아버지와 동생들과 힘을 합쳐 여름이면 바다에 가자고 어머니를 설득했던 것, 바다에서 아버지가 영주, 미주, 진주에게 수영을 가르쳐 주었던 것들이 파노라마처럼 스르륵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맞아. 아빠는 예전부터 바다 물놀이를 좋아하셨어. 우리와 함께 바다에 가는 걸 좋아했지.'

아무리 가족이라도, 부모 자식 사이라도 온전히 그 사람을 다 알기 어려운 것 같다. 영주가 오늘 본 아버지의 모습은 영주가 평소 생각했던 아버지의 모습과 너무나 달랐다. 서로 각자 자신의 인생을 살기 바빠서 예전 함께 했던 좋은 기억들도 잊어버리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영주는 자신이 아버지를 너무 엄격하게만 생각해서 가까이하기 어려웠던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아기로 태어나서 다시 아기로 되돌아간다고 했다. 영주는 아버지를 보고 있자니 정말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영주는 다정이, 혜성이와 함께 아버지를 자주 찾아가 좋은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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