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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나 Nov 06. 2023

모순

양귀자 장편소설

모순.

창과 방패라는 뜻으로 말이나 행동의 앞뒤가 서로 일치되지 아니함.


남들 인생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난 인생사 관련 소설이 참 좋다. 모순 또한 우리 주위에 있을 법한 인물들이 많이 나온다. 그래서 더 끌렸고 내려놓기 싫었던 책이었다.


1998년 출간된 양귀자님의 소설로 25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독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기술은 빠르게 변했을지라도 인간과 삶의 본질은 25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유명 문학 평론가는 모순이란 소설을 이렇게 평한다.

"양귀자의 문장은 알기 쉬운 묘사로 젊은 여성들의 심리를 정확하게 포착한다."

"우회적인 장치 없이 젊은 화자의 목소리를 빌어 여성의 현실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기에 독자들의 마음을 울린 것 같다."

시대를 관통하는 문제의식과 이야기 중심의 서사가 지금 독자들과 만났다고.  



소설의 화자는 25살의 안진진.

부모가 합의하기는 진, 이라는 외자 이름이었는데 아버지가 출생신고를 하러 가는 도중에 참 진자 같은 것은 한 번 쓰면 너무 무거우니 두 번으로 합시다라고 해서 즉흥적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러나 아버지도 진진이란 이름 앞에 '안'이 붙는다는 사실까지는 유념하지 못했을 것이다. 약간 지나치게 해석한다면, 어떤 식으로 해도 나라는 인간은 평생 자신의 이름을 부정하며 살아가야 할 운명인 것이었다......


아버지.

아버지는 어머니를 아주 많이 사랑했다는 것을, 어머니를 사랑했으므로 나와 진모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 또한 절대적이었을 것임을. 우리 모두를 한없이 사랑했으므로, 그러므로 내 아버지는 세 겹의 쇠창살문에 갇힌 것이다. 아버지가 탈출을 꿈꾸며 길고 긴 투쟁을 벌인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불행의 과장법. 어머니.

소소한 불행과 대항하여 싸우는 일보다는 거대한 불행 앞에서 차라리 무릎을 꿇어버리는 것이 훨씬 견디기 쉬운 법이다.

"또 시작이구나! 또 시작이야! 니 아비 사라져서 잠잠하고, 그놈 군대 가서 조용히 엎드려 있었지, 그것 조금 마음 편하게 살았다고 그새 또 시작이야. 아이고, 끔찍하다, 끔찍해. 이젠 하다 하다 못해서 살인이야. 아이고, 난 이제 어디 가서 낯 들고 사니. 살인자를 자신으로 둔 이년, 어디 가서 사람대접받고 사니......"

어머니는 살인만 인정하고 미수는 무시해 버렸다. 내가 살인은 무시하고 미수만 인정한 것과는 정반대였다. 


쓰러지지 못한 대신 어머니가 해야 할 일은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극대화시키는 것이었다. 소소한 불행과 대항하여 싸우는 일보다 거대한 불행 앞에서 무릎을 꿇는 일이 훨씬 견디기 쉽다는 것을 어머니는 이미 체득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생애에 되풀이 나타나는 불행들은 모두 그런 방식으로 어머니에게 극복되었다. 불행의 과장법.

지난 몇 년 동안의 평화를 어떻게 견디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어머니는 이 불행을 해결하는 데 온갖 신명을 다 내고 있었다. 벽을 붙잡고 절규를 하며 울부짖던 어머니의 과장법은 이렇게 쓸모가 있었던 것이었다. 부풀릴 수 있을 만큼 한껏 부풀려놓은 불행에서 이처럼 맵시 있게 빠져나오는 어머니. 8월에 보는 어머니는 역시 과장법의 대가였다. 나는 진실로 어머니에 대해 감탄했다. 


그 확실한 증거가 바로 어머니의 독서였다. 정신분열증의 이해와 치료라는 의학서적에서 일본어 회화책으로, 그리고 느닷없이 딱딱한 법률서적을 읽어야 했던 어머니는 요즘 다시 중풍, 이렇게 치료한다나 가정을 파괴하는 병, 치매 같은 의학서적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용서했을 뿐만 아니라 포기하지도 않은 것이었다.


어머니는 여전히 행복했다. 이젠 완전히 누운 채로 대소변을 받아내게 하고 쉴 새 없이 헛소리를 해대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지루하지 않게 했다. 면회를 갈 때마다 도무지 철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 아들도 어머니의 삶을 지리멸렬한 것으로 떨어뜨리지 않게 도왔다. 부쩍 말수가 줄고 홀로 처박혀 있기를 좋아하는 나, 안진진의 우울도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 준다. 아버지의 시중 때문에 결국 어머니는 가게에 점원 한 사람을 두었다. 얼마 되지 않는 수입에서 점원 월급까지 나가야 하니 그것 또한 어머니의 나날을 긴장으로 채워주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더욱 바빠졌고 나날이 생기를 더해갔다. 아, 어머니의 불행하고도 행복한 삶......


이모.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찰나에 불과했던 느낌이었지만, 이모가 뭔가 과장하고 있다는 혐의를 지울 수 없었다. 무엇이든 좋은 것이면 마음속에 영원히 간직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은 평소의 이모 말버릇이긴 했다. 하물며 첫눈일진대 얼마든지 이모답게 수선을 피울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이모의 모습에서 한순간 문득 내 어머니의 과장법을 읽었다.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극대화시켜 그 앞에 무릎을 꿇는 것으로 극복의 힘을 얻곤 하던 어머니의 과장법이 이모에게 응용되고 있다는 나의 순간적인 느낌을 그러나 오래 반추하지는 못했다.


모순-생의 비밀을 찾아서

하나지만 둘이고, 둘이지만 하나인 인생 궤적을 보여주기 위해서 일란성쌍생아보다 더 적합한 장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소설이 중반에 이르렀을 때, 나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우리들 모두, 인간이란 이름의 일란성쌍생아들이 아니었던가 하는 착각. 생김새와 성격은 다르지만, 한 번만 뒤집으면, 얼마든지 내가 너이고 네가 나 일수 있는 우리.

행복의 이면에 불행이 있고, 불행의 이면에 행복이 있다. 마찬가지다. 풍요의 뒷면을 들추면 반드시 빈곤이 있고, 빈곤의 뒷면에는 우리가 찾지 못한 풍요가 숨어 있다. 하나의 표제어에 덧붙여지는 반대어는 쌍둥이로 태어난 형제의 이름에 다름 아닌 것이다. 


모순은 무엇을 따라도 모순의 벽과 맞닥뜨려지는 인간과 삶에 관한 진술이었다. 세상의 일들이란 모순으로 짜여 있으며 그 모순을 이해할 때 조금 더 삶의 본질 가까이로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함부로 다른 사람을 판단해서도, 내 생각대로 무시해서도 안 되는 일이다. 누구나 모순된 모습이 있기에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풍요롭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하나의 비법이 아닐까.


읽는 내내 나를 돌아보고 깊이 성찰할 수 있게 해 줬다. 사람들과 얽힌 갈등과 얕은 부딪힘일지라도 그 안에 깊은 통찰을 담은 이 책을 25년 전, 1998년에 썼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지금도 너무나 공감이 되는 이야기와 감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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