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등원시키고 집안 정리를 마치고, 엄마들 모임을 간다.
수다는 즐겁고, 남이 차려주는 밥상은 맛있고, 동질감에서 오는 안도가 위안을 준다.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들과 비슷한 고민들을 털어놓고 정보를 나눈다.
늦은 나이에 아이를 키우며 10년쯤 시간이 되돌아간 느낌이었다.
예전에 친구들과 나누던 수다를 지금 아이 친구 엄마들과 하고 있다.
아이들이 다 성장하여 나의 어린아이에 대한 고민을 나눌 수 없던 지인과 친구들을 이 엄마들이 대신했다.
만나면 즐거웠고 위로를 얻었다.
하지만 '지나치면 독이 된다'는 평범한 진리가 여기에도 통했다.
육아에서 오는 스트레스 해소와 시간을 거꾸로 돌린 듯한 즐거움에 중독되어 버렸다. 경계를 무너뜨리고 말았다.
많은 시간을 이들과 보내고, 저녁 외출도 잦아졌다. 물리적으로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관계의 친밀도도 약해졌다.
아이의 생활이나 행동에 대해 아이랑 눈맞추는 게 아니라 엄마들과 상의하고 풀어갔다. 주객이 전도된 간편한 해결 방식을 택한 거다.
그 결과 조금씩 무너진 둑이 어느 날 한꺼번에 무너지는 것처럼 나의 일상이 무너지는 것도 모르고, 달콤함에 취해 정작 중요한 것들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그 끝에 문제의 그날을 맞이한 것이다.
그 무렵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상의 평온함에 균열이 가고 있는 걸 못 본 것도 아니었다. 달콤한 유희가 나의 눈을 멀게 한 것이다.
곰곰이 따져보자.
엄마들과의 모임이 아이 양육에 도움이 되는가?
아이를 키우는데 "필요한 정보"란 무엇인가?
그리고 이들과 더 깊어질 것인가?
또, 아이를 위한 다는 명목으로, 내 안의 어떤 욕구를 채우려 하는 것인가?
아이가 생각지 못한 문제의 행동을 보인다면 분명 그것은 엄마인 나로부터 기인한 문제 일 것이다.
그러니 고민의 해답은 간단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요즘 나의 생활과 행동을 바꾸어야 한다.
어쩜 다 아는 뻔한 결론이지만, 내 아이를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미션이다.
첫째 관계를 유지하는데 쓰는 시간과 노력을 내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으로 채우자.
둘째 단순한 유희로 나를 소진하는 게 아닌 나를 쌓아 가고, 진정 내가 행복해지는 방향으로 선회해야 한다.
셋째 '육아의 정보'란 외부에서 찾아 헤매는 게 아닌 이미 아이가 엄마에게 많은 정보를 주고 있음을 깨닫고 아이의 행동과 말에 집중한다.
아이를 위한 명목으로 시작된 모임은 엄마의 감정소모로 아이에게 에너지를 쏟을 수 없게 했고, 아이를 위한 정보는 이미 내 아이에게 있었다.
그런 것들을 무시하고 간과했던 대가는 혹독했다. 이리저리 감정이 흔들리는 엄마, 그 흔들림 속에 더 큰 파장이 아이의 마음속을 불안하게 했을 것이다.
아이는 매일 조금씩 얘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관계의 밀도가 약해진 틈을 보지 못한 엄마는 아이의 얘기가 들리지 않는다.
알아 들지 못하는 엄마에게 더 큰 소리로 더 큰 몸짓으로 그날 저녁 울부짖었을 것이다. 제발 나를 봐 달하고.
내 아이를 위한 정보는 내 아이에게 있다.
다른 엄마들이 알려 주지도, 책이나 인터넷에서 찾아 지지도 않는다.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 몸짓 하나하나에 집중할 때 세상의 정보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