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식구들이 집으로 돌아온다. 아이는 유치원에서 신이 났는지 연신 싱글벙글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그 모습이 정다워 나에게도 미소가 지어진다. 남편은 피곤한지 느릿느릿 현관을 들어선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한다는 말이 “고생했네, 배고파?”이다. 결혼 16년 차 부부의 대화는 몇 마디 더 나아가지 못한다.
조용히 저녁 식탁을 차린다. 아침에 씻어 말린 식탁 매트를 깔고 김치와 몇 개의 밑반찬을 좋아하는 접시에 담아내고, 오늘의 주요리인 복지리를 물결치듯 쉐입이 넘실대는 희고 흰 대접에 소복이 채워 밥그릇 옆에 놓는 것으로 소박한 밥상을 정성으로 차려 낸다.
남편도 알 것이다. “밥 먹자”는 말에 식탁에 앉으며, 우리의 평범한 밥상에 나의 사랑이 담겨 있음을.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하루를 위로하고 돌보며 같은 시간을 살아간다. 부드럽게 감싸는 식탁 조명이 따스하다. 하루를 성실히 살아낸 가족들을, 정성을 다해 보살피고, 그 보살핌은 아이에게도 전달된다.
지난 가족 여행에 아이에게도 미션을 주었다. 여행 가방을 싸는 엄마 옆에서 자신의 짐도 챙겨 보라고 작은 가방 하나를 내주었다. 분주하게 여행 가방을 싸면서 힐긋힐긋 곁눈질로 쳐다보니 제법이다. 좋아하는 장난감과 인형 두어 개, 밤에 읽을 책 세 권 초콜릿과 사탕 서너 개, 그리고 귤 한 봉지 아이가 자기 가방을 챙기는 모습이 기특하고 흐뭇했다.
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여행지는 즐겁다. 숙소 풀장에서 지칠 때까지 놀고 허기진 배를 배달 음식으로 준비한다. 배달 음식이라고 뚜껑만 열어 내놓지는 않는다. 숙소에 비치된 그릇을 깨끗이 씻어 보기 좋게 식탁을 차려낸다. 밖에서 먹는 배달 음식이지만, 여기에도 한 끗의 정성을 더한다. 그러다 보니 방에서 부스럭부스럭 소리가 난다. 아이가 작은 종이 접시에 귤 두 개씩을 담아 엄마 아빠에게 내민다. “밥 먹고 이거 먹어” 말문이 막혔다. 챙겨 온 귤이 자기 간식이 아니라 엄마 아빠를 위한 것이어었고 만들기 재료로 사두었던 검은색 종이 접시까지 쓰임을 생각하고 챙겨 온 게 신기했다.
매일 정성 들여 식탁을 차리고 내가 하는 일에 마음을 담아 정성을 다해야 하는 이유를 새삼 아이의 행동에서 알게 되었다. 부모의 태도나 자세는 아이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내 아이가 자신을 정성껏 돌보며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자세로 자신의 삶을 살아갔으면 한다. 귤 두 개를 접시에 받쳐 내놓을 수 있는 삶을 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