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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결 Jun 14. 2024

너에게 보내는 첫 번째 편지

As always



듣는 나도 이렇게 힘든데, 넌 얼마나 힘들었겠니. 그동안 정말 마음고생했어.





To.


벌써 6월의 반이 흘러가네. 5월은 나에게 처한 상황들과 문제를 직시하는 시간이었던 반면 6월은 남아있던 것들을 정리하고 또 다른 출발을 알리는 달이 되겠지.

물질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가장 힘이 들었어. 차도 팔아야 하고 여기서 샀던 캠핑 용품들도 처분해야 하는데 그게 마음처럼 돼야 말이지. 귀국 날짜를 미룰까도 했는데 그냥 시간 안에 맡기기로 했어. 조급해한다고 무엇인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니까 말이야.


이곳에서 한동안 일했던 스시집 사장님의 유산 소식을 오늘 아침에 접했어. 뭔가 되게 허무하고 슬프더라. 임신 중이실 때는 최대한 신경을 거스르지 않게 하려 방 밖에서 나오지 않았고, 내게 모진 말들을 해도 그저 예민하시니까 그럴 수 있다 하며 그저 혼자 견뎠는데.. 이제는 미움보다는 안쓰러움과 뭔가 모를 죄송함이 더 커지는 하루인 거 같아.


사실 엊그제 셰프님께 연락이 왔었어. 가게에 나와서 일을 도와줄 수 있냐고. 아는 형님과 밥을 먹고 있어서 그럴 수 없다는 답을 했어. 하나라도 더 팔려고 손님들과 스몰 토킹을 하고, 가게가 잘되게 하고 싶어 내가 할 수 있는 건 모든 것을 했던 곳인데 그만둔다고 말했을 때 내게 쏟아냈던 말들의 미움이었을까, 아니면 다시 40분을 운전해서 가야 한다는 귀찮음이었을까. 아마도 복합적인 감정이었을 거야. 돌이켜보니 아픈 아내 곁에 있고 싶었던 남편의 간절한 외침이었는데 내가 알지 못했어.


두 개의 심장을 느끼다 한 개의 심장으로 돌아왔을 때의 심정은 생물학적으로 내가 느낄 수 없는 감정이겠지만 간접적으로도 상상이 잘되지 않는다.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일 거 같아서 나의 서툰 위로가 오히려 그 상처를 덧나게 할까 봐 두려워. 집에서 마주치면 무엇이라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아니면 그냥 모른 채 남은 시간을 방 안에서 숨죽여 보내야 할지. 자존심 강한 분이라 무엇이 맞는 행동일까 가늠하기가 어렵다.



복잡해진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서 책을 읽으려 공원에 나왔어. 나무 위 새들의 지저귐과 노을 진 태양 밑으로 지나가는 가족들이 보이네. 표면적으로 보이는 평화 뒤에 저마다의 잊지 못하는 상처를 간직한 채 살아갈 테지. 언젠가 그 상처를 말할 수 있을 때가 되면, 그리고 내가 듣게 된다면, ‘듣는 나도 이렇게 힘든데, 넌 얼마나 힘들었겠니. 그동안 정말 마음고생했어.’라 말해주고 싶다. 그게 내가 세상을 살아내는 방식이니까 말이야.


너의 하루는 어땠니. 네 하루는 길 가다 마주친 귀여운 강아지에 잠시 눈길을 주며 미소를 지었던 순간이였으면 해. 혼자 슬픔을 감싸안고 우는 날이 되지는 말았기를.


From.

cotton tree park에서

한결 :)






p.s 호주의 겨울은 정말 추운 거 같아… 감기 조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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