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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결 Jun 27. 2024

너에게 보내는 다섯 번째 편지

As always



 ‘ 이렇게 이야기해 줘서 고마워.’





To.


한국에 온 지도 일주일이 다 돼가네! 정신없이 사람들을 만나고 밀린 이야기들을 하느라 시간이 느린 듯 빠른 듯한 기분이 든다. 어제는 호주에 가기 전 같이 ‘결핍’이라는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촬영했던 작가님들을 보러 홍대에 갔어. 난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쇼핑도 하면서 사람들을 구경하고, 혼자 코인 노래방에 가 1시간 동안이나 고음을 질렀지 ㅎ  그분들을 만나기 전 사실 좀 걱정이 있었던 거 같아. 내재된 우울감을 과감히 들어낸 사이들이라서 서로를 봤을 때 그때의 기억이 생각나면 어쩌나, 또다시 짙은 ‘결핍’에 허우적 되면 어쩌나 하는 고민들이 있었어.



걱정과 설렘을 가지고 만나기로 한 장소에 도착해 서로를 봤을 때, 너무나 밝아진 표정으로 반겨주는 그들을 보며 쓸데없는 생각을 했구나 싶더라. 그간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공감하고, 축하해 주고 그리고 각자의 결핍을 사랑으로 채워나가는 모습들을 고백하며 우리는 한 뼘 더 성장했음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어. 누군가에게 추억을 선물한 적은 많지만 정작 본인들은 담지 못했던 카메라에 앞에서 사진을 찍자 제안했어! 요즘 트렌드에 맞게 공중에서 찍어주는 곳에 갔는데 렌즈 앞 어색함을 숨길 수는 없네 ㅎ 연말에 다시 보자는 인사를 끝으로 집으로 향하는 길에서 그들의 행복과 안녕을 기도했어.



아침에 눈을 떠 오늘은 뭐 할지 고민하다 휘수가 보고 싶어서 연락을 했어. 저번주에도 만났지만 그때 느꼈던 휘수의 그늘진 얼굴이 신경 쓰였던 거 같아. 20년 동안 우정을 지속해 오면서 한 번도 속 마음을 터 놓은 적 없는 그였지만 처음으로 내게 그동안의 이야기와 힘듦을 말해주더라. 6년간 만났던 여자친구와 이별에 대한 고민, 자취를 시작하면서 느낀 익숙함의 소중함, 자신만 아는 내면의 이기적인 모습들까지. 언제나 내 이야기를 묵묵히 경청해 줬던 그의 울분과 터짐을 들어주며 나지막이 말했어 ‘ 이렇게 이야기해 줘서 고마워.’


휘수는 내게 그런 사람이야. 나의 천국행 티켓을 양도할 수 있으면 양도하고픈, 내가 지옥에 가도 휘수만큼은 천국에 갔으면 하는 사람. 인성적으로나, 삶에 대한 태도로나 가끔은 그의 그런 성품이 부러워 유심히 관찰하게 만드는 사람. 수술 후 침대에서 못 움직일 때,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사 와 함께 먹어주고, 나의 심오한 예술적 사고들이 공감 가지 않아도 공감하려 애써주는 그런 사람이거든. 이제는 내가 들어줄 차례라고 생각하니 듣는 기쁨이 생기더라. ‘너한테 참 위로받는 거 같아.’라고 말하는 휘수를 모습을 보며 깨달았어. 어쩌면 우리는 해결해 줄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니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한 것이라고.



우리는 살아가면서 두 가지 갈림길을 마주하고는 해.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 성공과 실패, 믿음과 배신, 기대와 실망. 잔인하게 들리겠지만 우리의 삶은 충만하던지 아예 삶을 포기하던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을 뿐이야. 난 당연한 인과관계에서 오는 이 정당한 고통을 우리가 외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만약 네가 이별을 선택했지만 연인에 대한 추억이 그리워 힘들다면 그건 정당한 고통이라고 말하고 싶어. 그때의 너는 누구보다 찬란했고 아름다웠으니까 말이야. 그 고통을 참고 견디다 보면 언젠가 성장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거야. 고통은 늘 언제나 성장을 뒷받침하니까 말이지. 하지만 네가 그 고통을 혼자 버텨내기 어렵다면, 내게 이야기해 줬으면 좋겠다. 고통은 나눌수록 크기가 작아진다고 난 믿어! 언제가 그럴 날들이 머지않아 오기를 바라면서 글 줄일게. 또 편지하마 :)


From. 뉴꽃필에서

한결 :)






p.s 떡볶이가 먹고 싶어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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