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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결 Jul 01. 2024

너에게 보내는 여섯 번째 편지

As always



난 이 시간이 우리가 살아 숨 쉬는 존재인 것을, 주체로서 홀로 설 수 있는 순간이라 믿어.







To.


어젯밤 집을 나와 휘수네로 갔어. 아버지와 정제되어 있지 않은 말들을 주고받으며 묵힌 감정들을 쏟아내고 ‘너 정신과 가봐라’는 말을 들었거든. 아무것도 챙기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나와 휘수한테 연락을 했는데 흔쾌히 자기 집으로 오라고 하더라. 늦은 시간 집주인이 여행한 간 집 비밀번호를 알려주며 편히 쉬다 가라는 말이 고마우면서 울컥했어.


호주 생활을 정리했던 이유 중 하나는 집이 내게 평안함을 주지 못해서였어. 문 앞에 서서 사람들 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린 적도 있었고, 집 안 불이 꺼질 때까지 멍하니 차에 있기도 했었지. 그러다 ‘똑같이 돈 내고 살아가는데,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이곳에서도 평안함을 받지 못한 거 같아.



호주에서 독립된 생활을 하면서 무의식을 의식으로 끌어올리는 연습을 했었어. 외면했던 결핍과 트라우마 들을 마주하면서 하나하나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위로했었거든. 물론 상처를 굳이 들춰낼 필요가 있을까 반문할 수 있겠지만 이것이 날 성장하게 만드는 정당한 고통이었다고 생각해.


그중 하나는 어릴 적 부모에게 받은 상처였는데 받아들이기가 정말 힘들었어. 날 이만큼 키워준 존재이고 내가 누리는 이 모든 것들은 그들로부터 받았으니까 말이야. 그렇다고 혼자 모든 것을 짊어지기에는 내가 앞으로 사랑할, 그리고 사랑으로 태어날 존재에게 너무나 미안해지더라. 마음속 한편에 담아두기에는 나도 내 자식에게 그런 말과 행동을 할 수 있겠다 싶었으니까.

어쩌면 지금의 부모와 자식의 이 상황은 언젠가 한 번쯤 직면해야 할 서로의 진실일지도 몰라.



때로는 우리의 선택에는 고통이 따라. 난 그 선택을 한 거고. 그 이유를 묻는다면 난 아직도 가족을 많이 사랑한다고 답하고 싶네.


생동감 있는 그림 속에는  밝은 색으로 채운 빛과 가늘게 자리 잡은 그림자가 있어. 우리는 그 그림을 보고 ‘살아 숨 쉬는 것 같다’고 표현하지. 난 이 시간이 우리가 살아 숨 쉬는 존재인 것을, 주체로서 홀로 설 수 있는 순간이라 믿어.


너도 그러하기를! 또 편지할게



From. 제주도 고모집에서

한결 :)




p.s 제주도는 정말 습한 거 같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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