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alwyas
나를 더 알아가고, 더 사랑하는 기억이었다 말하고 싶다.
To.
얼굴이 누군지도 모를 친척 장례식을 마친 후 할아버지를 모시고 사우나에 갔어. 통뼈와 188cm의 장군감의 할아버지 모습에서 나이가 들어갈수록 근육이 빠진 앙상한 뼈들을 보니 뭔가 모를 안쓰러움이 느껴지더라. 손자와 이야기하고 싶지만 그런 언어를 못 배운 탓에 1차원적인 감정표현 밖에 못하시지만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아. 가족들을 먹여 살리러 밀항을 택하시고 타지에서의 외로움을 묻어둔 채 일만 하시다 이가 빠져버리는 고통도 겪으셨던 분이거든. 그저 묵묵히 등을 밀어드리고 좋아하시는 들깨 칼국수도 사드리고 왔어.
남은 3일 동안 뭐 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근처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어. 가서 글이나 좀 쓰고 근처도 좀 돌아다니다 보면 시간이 흘러갈까 해서 찾았지. 안으로 들어갔는데 누군가 나한테 ‘스텝이세요?’ 말을 건네는 거야 ‘저도 손님이에요ㅎ’ 답한 뒤 자연스럽게 대화에 물꼬가 터 같이 커피를 마시러 가고 같은 방이 배정돼 저녁도 같이 먹게 되면서 제주에 왜 오셨는지, 그리고 무엇을 깨닫고 있는지 공유하게 되었어. 그분은 제주도 올레길을 걸으면서 중간중간 만나게 된 분들에게 나를 소개해주면서 또 다른 분들과도 급속도로 친해지게 됐단다 ㅎ
신기하지? 일면식 없는 사람들끼리 만나 밥을 먹고 내일의 일정을 잡아 함께하면서 또 같은 곳에 묵고, 각자 다른 개성을 지녔지만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면서 제주의 시간을 보냈어. 제주 맛집을 찾아가고, 월정리 해수욕장에서 스노클링을 하다가 돌고래도 보고, 카페에서 케이크들을 잔뜩 시키고서는 와구 먹었던 게 생각나네. 사람들과 헤어지는 순간에서 제주도 일정을 3일밖에 잡지 않은 내가 참 미워지더라. 너무 행복했고 좋은 추억이 된 것 같아서 아쉬움이 컸던 거 같아. 육지에서 보자는 말을 뒤로 미련 가득한 운전대를 돌렸어.
제주에서의 마지막 일정은 호주에 가기 전 내게 많은 조언을 해주셨던 피카 사장님을 만나는 거였어. 제주에 갈 때마다 꼭 들리는 곳인데 내가 책을 출간하기 전 글을 쓰러 왔던 곳이기도 하거든. 간절했던 그 기억들이 떠오르면서 이제는 카페 한편에 꽂혀있는 내 책이 뿌듯하기도 하네 ㅎ 10개월 간의 호주 생활의 이야기들을 들려드리며 그간의 감정들을 털어놨어. 너무나 경청을 잘하시는 분이고 워홀 경험도 있으신 분이셔서 더 많은 이야기들을 꺼내 놨던 거 같아.
이번 제주 여행은 그리워했던 따스함들과 관심들이 날 더 행복하게 해 줬던, 많은 감정들을 느낀 시간이었어. 생각을 비우고 그 순간에 충실하려고 했었고, 외면했던 진실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있었고, 쉼표로 이어지는 관계에 마침표를 찍는 여행이었거든. 나를 더 알아가고, 더 사랑하는 기억이었다 말하고 싶다. 너의 하루는 어땠니. 벤치에 앉아 나무를 보며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기를 바라볼게. 또 편지할게 :)
From. 육지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한결 :)
p.s 4일 뒤면 태국에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