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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결 Aug 15. 2024

너에게 보내는 열세 번째 편지

As always



어둠이 찾아왔을 때, 비로소 고요한 것들은 빛이난 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해.





To.


어제는 휴무여서 북한산에 다녀왔어. 마음 같아서는 등산을 하고 싶었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는 몸이기에 파전이랑 칼국수를 먹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카페에 앉아 멍하니 산의 능선을 바라보는데 내게 허락된 지금의 평화가 참 감사하게 느껴지더라. 호주에서 수많은 숲과 광활한 대자연들을 봤음에도 난 온전히 그것을 느낄 수 없었거든. 한 치 앞도 모르는 타지의 삶에서 여유라는 심적공간은 내게 사치였어.



착실하게 일했던 광산회사를 그만두고 동호주 로드트립을 떠났을 때, 모두가 내게 낭만 가득한 삶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여행 내내 난 두려워서 운전대를 붙잡고 울기 일쑤였어. 그만 이 삶을 멈춰달라고, 나를 데려가 달라고 울며 신께 울부짖고 기도했던 나날들이었지. 상처를 치유받고자 온 나라에서 더 많은 차별과 무시를 당하니 아물지 않고 덧나 버린 상처를 혼자 감당하기 버거웠던 거 같아. 어쩌면 로드트립은 내 선택이 아닌, 그럴 수밖에 없었던 강제성과 같았어.



그냥 무작정 카메라를 켜고 그때를 기록했어. 내 현재 상황, 그리고 마음 상태, 상처받은 일들 전부다. 누군가한테 보여주려고 기록하는 것이 아닌 오로지 나한테 보내는 영상을 말이야.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10년 뒤 나에게 영상편지를 보내고 있더라 ㅎ 혼자 그렇게 카메라 앞에서 떠들어대니 감정기복이 잦아지고 비로소 평온을 찾을 수 있었어. 어쩌면 나는 누군가와 대화는 할 줄 알았으면서 나 자신과는 대화하지 못했던 거 같아.



영상편지 말미에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어. 10년 뒤 네가 뭘 할지도 모르겠고,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겠다만. 이 또한 다 지나가리라 말해주고 싶다고. 너한테 하고 싶은 말도 그와 동일해. 그때가 있기에 지금의 네가 있는 거니까, 어둠이 찾아왔을 때, 비로소 고요한 것들은 빛이난 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해.


더위가 무덥다. 외출할 때 선크림 꼭 발라야 하는 거 알지? 우리의 피부는 소중하니까 말이야! 또 편지할게.



From. 농구 후 낮잠을 실컷 자버린

한결 ;)




p.s 내일 출근인데 오늘 잠 어떻게 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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