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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결 Sep 12. 2024

너에게 보내는 열일곱 번째 편지

As always



‘오늘 하루도 살아내줘서 고마워.’





To.


점심쯤 책이랑 차키를 챙겨 들고 파주출판도시에 갔어. 자주 가는 북카페에 넓은 소파 자리를 고른 뒤 고구마 베이글과 커피 한잔을 하며 금세 책 한 권을 다 읽었지. 혹자는 이런 내 삶이 부럽다고 말하지만 나도 가끔은 삶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깊은 사색에 잠기곤 해.


실은 아침에 엄마랑 크게 다퉜어. 언제까지 네가 그런 삶을 살 수 있을 거 같냐고, 언제까지 이 집에 얹혀살며 학교를 복학하지 않을 거냐는 원론적인 말들. 가족들과 충분한 대화를 하면서 이 주제에 대한 설명을 한 것 같은데 본인의 욕심을 참지 못하고 터져 나오는 말들이 나를 좌절하게 만들었다. 아니 어쩌면 저 말들은 내 안에 가지고 있던 불안감들이라 여겨서 수긍하면 안 된다 생각했던 것 같아. 그래서 더 격렬히 저항하고 다투다가 들어서는 안 되는 말을 들어버렸지.


부모의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야. 난 집에 있기로 선택한 것이고 이 과정에 대한 부산물들은 내가 책임져야지. 하지만 이것과 별개로 정제되어 있지 않은 말들까지 나에게 다가왔을 때 용서의 크기를 고려해 보고는 해. 상대가 내뱉은 말이 이 관계를 유지하는 데 치명적인 것이라면 치유가능성도 살피고 상처가 얼마나 큰지, 회복될 수 있는 건가도 가늠해야 봐야 하거든. 그리고 결단해야 해. 설령 가족이라고 할지라도 말이야.



존중은 진정한 격려와 관심이 동반 돼.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일에 흔쾌히 도움을 주려하면서 신경을 써주는 것이니까. 하지만 네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다면 그 관계를 멈출 수 있는 용기가 있었으면 좋겠다. 존중하지 않는, 굴욕감만 주는 관계는 신체 학대와 별반 다를 게 없거든.


우리는 그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사람들이야. 그 안도감과 자신에 대한 신뢰감을 나는 자존감이라고 부르고 싶다. 세상이 그것을 부정하려 들 때면 지금 이 말을 꼭 기억해 주기를.


‘오늘 하루도 살아내줘서 고마워.’


From. 가을비를 바라보며

한결 :)




p.s 명절 때 맛난 거 많이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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