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샘비 Jan 16. 2024

단순한 삶

어제의 단상_#33

#33_단순한 삶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의 욕망의 스위치를 눌러버린 말, 미니멀라이프 혹은 단순한 삶.

복잡한 세상 속에서 단순한 삶을 욕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조금만 가볍게 살고 싶다. 나를 구속하는 족쇄와 감시의 시선에서 벗어나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면서.


배낭 하나의 삶, 생각만으로도 벅차오른다.

낯선 도시로 향하는 야간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감정을 느끼고, 이름 모를 해변에 앉아 저무는 해를 바라보고,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에 의지해 시집을 읽고, 인적 드문 숲 속 굴참나무에 기대어 바람소리를 듣고, 그러다 다시 낯선 도시로 향하는 버스에 오르고.


그런데 말이지. 말처럼 쉽지가 않다. 사람노릇은 해야 하니까.


"세상이 복잡한데 어찌 단순할 수 있을까?"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관계는 '나라는 존재' 그 자체에 의해 맺어진다. 존재의 흔적만으로도 관계는 생겨난다. 오는 사람이 있으면 가는 사람도 있고, 버리는 사람이 있으며 치우는 사람도 있다.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관계다.


세상이 복잡하다는 건 '관계'가 복잡하다는 것을 뜻한다. 나와 이어지는 선이 하나씩 늘어날수록 관계는 더 복잡해진다. 내 몸에서 뻗어나간 선들은 느슨했다 팽팽했다, 밀었다 당겼다 가만히 있지 않는다. 관계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요구한다.


그러니 관계를 완전히 끊지 않고는 단순한 삶이란 불가능하다.


"그렇게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미니멀라이프를 위해 소유를 줄인다. 이것도 버리고 저것도 버린다. 그러다 보면 조금은 가벼워진 것 같다. 하지만 느끼고 있다. 소유를 줄이는 걸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소유를 줄일수록 필요한 것들이 눈에 보인다. 어떻게 해야 할까? 필요하면 빌려 쓰면 되지 않을까. 아니, 민폐다. 주변에 폐를 끼치지 않으려면 필요한 것은 소유해야 한다. 그럴 바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이 낫다.


결국 필요를 줄이지 않고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필요는 소유의 가장 강력한 동기이자 논리다. 필요는 소유를 정당화한다. 그래서 필요는 미니멀라이프를 선택적이게 만든다.


'이건 반드시 필요한 거니까 괜찮아.'

어디까지가 필요이며, 어디까지가 욕심인 걸까. 어디까지가 미니멀이며, 어디까지가 맥시멀인 걸까.


"오늘도 관계의 빚을 진다."


단순한 삶을 위해서는 소유를 줄여야 한다. 소유를 줄이기 위해서는 필요를 줄여야 한다. 필요를 줄이기 위해서는 관계를 잘라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관계의 빚을 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나간다, 아니 저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