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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나 Nov 16. 2023

40대 편순이의 기록

담배 2_ 담배 찾기, 너무 겁먹을 필요 없다



담배종류 많은 거야 평소에 편의점에 물건 사러 들락날락하며 자주 봤으니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내가 실제로 일을 하게 되니 걱정이 앞섰다. 과연 내가 손님이 원하는 담배를 신속정확하게 잘 찾아낼 수 있을까 하는. 시간이 흐르니 손님들이 선호하는 담배를 어느 정도 자연스레 파악하게 되었다. 게다가 자주 오시는 손님은 '저 손님은 저 담배', 이렇게까지 기억하게 되었다. 내가 주 2회 알바라 시간이 좀 걸렸는지 모르지만 한 달 정도 지난 요즘은 담배도 어느 정도 척척 찾아내고 있다. 참고로 담배를 잘 못 찾는다고 뭐라고 한 손님은 6주가 지난 지금까지 딱 한 분뿐이었다. 좀 나이 드신 여성분. 그녀는 나에게 정말 대놓고 뭐라고 했다. 직원이 이렇게 못 찾으면 어떡하냐고. 열심히 찾고 있는데 못 찾는다고 뭐라 하니 더 못 찾겠었다. 그 딱 한 분 빼고는 다 나이스했다.



1. LSS 원 주세요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순간 내 머릿속이 멍해졌다. 메비우스 찾는 손님의 99%는 '메비우스' 생략이다. 주로 LBS를 많이 찾고 LSS는 가끔 나간다. 마일드세븐이 메비우스로 바뀐 것도 처음엔 몰랐다. 바뀐 데는 이유가 있었다. 담배 명칭에 '마일드', '라이트' 같은 단어 사용이 금지되었다고 한다. 약 10년 전부터. 그래서 바뀐 거로군. 그래도 전통의 강호일까, 마쎄는 여전히 제법 나간다.   



2. 오렌지/아쿠아/아이스블랑/파인컷



대뜸 오렌지를 달라고 한다. 앞에 제품명이 없으면 일단 당황스럽다. 오렌지요? 하고 되물으니 저기 저기 하시며 손가락으로 가리키신다. 이렇게 버벅댈 때 하필 찾는 제품이 내 바로 등뒤에 있는 경우가 많다. 더 곤혹스럽다. 열심히 찾다 보니 오렌지색이 눈에 확 들어온다. 다음엔 바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제법 많은 손님이 제품명을 생략한다. 한 번은 "프렌치 아이스블랑 주세요"하길래 1초 정도는 와인인가? 싶었다. 하지만 빈손으로 카운터에 왔으니 담배손님일 터. 나는 "연초인가요?"하고 되물었다. 그 밖에도 "파인컷 1미리" 소리에 열심히 찾는데 잘 못 찾으니 손님 동행분이 손님께 "좀 유명한 거 펴라." 하며 다같이 웃은 적도 있다. 이 분들은 자주 오시는데 이렇게 기다려주시는 걸로도 매우 감사한 일이다. 손님이 '던힐'이라는 단어를 붙여주셨음 더 빨리 찾았을 테지만. 암튼 파인컷도 머릿속에 저장. 이밖에 아쿠아시리즈도 처음에 한참 헤맸다. '팔리아멘트'라는 쉽게 기억 안 나는 이름은 그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절대 그 누구도.

 



3. 후두암주세요



편의점 일 첫날인가 둘째 날인가의 일이다. 정말 이때는 담배위치 파악이 거의 안 된 때라 제품명 떼고 말하면 그야말로 멘붕이었다. 손님이 조용하게 무언가를 달라고 했다. 이름을 들어도 잘 모르겠다. 손님이 손가락으로 대충 어느 쪽인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그래도 못 찾겠다. 워낙 그 줄에 비슷한 이름이 많아 눈에 안 들어온다. 그때 손님이 야무지게 외쳤다. "후두암이요. 거기 후두암이요!" 찾았다, 후두암. 치아변색, 구강암, 심장병, 성기능 장애 속에서 겨우 후두암을 찾았다. 담배 이름 아니고 이렇게 질병이름으로 건네자니 또또 아줌마 편순이 오지랖 발동이다. 예쁜 손님, 많이 피지는 말아요. 너무 깊숙이 빨아 땡기지 말고요.




담배 종류가 많지만 담배 손님, 대체적으로 친절하다. 그도 그럴 수밖에. 일개 알바생의 실수로 엉뚱한 담배가 손에 들어오면 안 되니 말이다. 그러니 최대한 찾는데도 협조해 주신다. 물론 일하다 보면 자연스레 담배위치를 기억하게 되니(기억하려는 노력은 해야 하고) 담배 업무에 너무 걱정할 필요 없다. 아, 담배위치 잘 기억하는 좋은 방법이 있다. 바로 '재고조사'다. 담배 재고조사 몇 번 하면 담배 이름과 위치가 확실히 잘 외워진다. 두드리면 열리고 찍어보면 기억된다. 참, 처음엔 담배 이름도 이름이지만 대부분 영어라 손님들의 초스피드 영어발음을 알아듣기가 쉽지 않았다. 마치 영어 듣기 평가 같다고나 할까. 아니면 가족오락관의 스피드게임처럼. 크고 천천히 또박또박 말해주는 손님은 없으니까. 하지만 이것 역시 시간 지나고 익숙해지니 어렵지 않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그래서 그나마 살아가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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