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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나 Dec 03. 2023

시니어 손님에 대한 단상

먼 훗날 타령_40대 편순이의 기록


 노부부가 오셨다. 인상 좋은 할머니께서 "물어보기 미안한데" 하시며 조심스레 말을 꺼내신다. 교통카드 하나를 보여주시며 엊그제 분명히 여기서 삼만 원을 넣었는데 돈이 하나도 없단다. 잔액조회를 하니 정말 카드 잔액은 0원. 하지만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게 없다. 바로 직전에 충전해 드린 것도 아니고 이틀 전이라니. 나 역시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할머님, 말씀은 알겠는데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어요. 이틀 전이라 하셨으니 그동안 사용하셨을 수도 있고요. 어떡하지요. 근데 혹시 이 카드가 맞으세요?" 할머니의 살짝 아쉬운 표정이 보인다. 그래도 그녀는 내 말을 받아들였다. 할머니는 매장 한편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할아버지와 함께 사이좋게 가게를 나간다. 들릴락 말락 한 그녀의 목소리가 떠나는 그들 뒤로 들려온다.

“이 카드가 아닌가 봐요."  

 먼 훗날엔 나도 이렇게 되겠지. 이 카드인지 저 카드인지, 돈을  넣었는지 썼는지 도통 기억나지 않을 때가 오겠지. 꽤 서글플 텐데 어쩌면 좋을까.



파란 양복의 할아버지가 오셨다. 어르신은 대뜸 "내 뭐 하나 물어봅시다" 하시는데 문제는 '뭐 하나'가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는 것. 버스를 어디서 몇 번을 타고 목적지까지 어떻게 가는지 알려주는 걸 깔아달라고 하신다. 졸지에 할아버님 핸드폰을 손에 쥔 나. 나는 뭘 쓰더라. 그런데 생각보다 복잡해 보이는 이 앱, 과연 할아버지가 쉽게 알아보실 수 있으실까? 한번 해 보자고 하시며 목적지를 불러 주시는데 건물명이나 회사 이름이 아니라 주소다. 나는 마치 주소가 적힌 꼬깃꼬깃한 작고 소중한 종이를 펴보는 느낌이다. 둘이 사이좋게 가는 법을 확인했다. 하지만 영 밝지 않은 그의 표정. 내가 봐도 오늘따라 앱이 더 복잡하게만 느껴진다.

 “할아버지, 죄송해요.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건 이 정도 같아요. 어쩌죠. 그래도 한번 보고 해 보세요. 하실 수 있으실 거예요.”

 그는 그 후에도 한 번 더 왔다. 여전히 파란 양복을 멋지게 입고서. 이번엔 내게 어떠한 부탁도 없으셨다. 대신 매장 구경을 오래 하셨을 뿐. 그래도 어르신, 다음에도 또  오세요. 이렇게 밖으로 자주 외출하셔야 다리도 튼튼해지고 하죠. 그리고 순간의 말동무 정도는 해드릴게요. 나는 속으로만 말한다.

  먼 훗날, 나의 모습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서글픈 일이 자꾸 쌓인다.



 할아버지는 아니지만 중장년의 어르신이 오셨다. 에쎄 골드는 금색이 특별해 잘 찾을 수 있는데 대뜸 "거기 뇌졸중 줘요." 하신다. 어이구야 뇌졸중이라니. 내가 담배를 건네드리며 걱정스럽고 민망한 표정을 지었더니 그가 호탕하게 말한다. “살만큼 살았어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조금만 피우세요, 손님. 백세 시대인데요." 우리 시원시원한 어르신, 내 백세시대 타령에 이렇게 한 말씀하신다.

 “백세 시대요? 육십 넘으면 눈치 보고 살아야 돼요. 눈치. 허허"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나이 드니 눈치를 본다.'라...  순간 나이 듦이 억울하게 느껴졌다. 곧이어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항선 배우의 대사 하나.

 “이게 뭔 … “



내가 공감대 형성 폭이 큰 편이라 이렇게 시니어 손님들을 겪고 나면 복잡해진다. 누구나 가야 하지만 대부분 가기 싫어하는 길. 결코 멀지 않은 나의 ’먼 훗날‘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편순이, 오늘 꽤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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