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탈출: 새로운 시대(Kingdom of the Planet of the Apes, 2024)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이하 <새로운 시대>)는 전작인 <혹성탈출: 종의 전쟁> 엔딩 직후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기품 넘치는 서사의 삼부작을 끝으로 순교자의 길을 걸었던 시저(앤디 서키스)의 장례를 치르는 유인원들. 카메라는 화염에 불타는 시저를 지긋이 바라본다. 화장의 불길은 시저라는 유인원을 통해 타오르는 희망의 횃불처럼 보이기도 한다. 오프닝 시퀀스 이후 그로부터 수 세대 지난 시점에서 <새로운 시대>의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출발한다.
이 영화가 시작과 함께 시저의 죽음을 보여주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 영화는 순교자 시저가 남긴 가르침. 그 숭고한 메시지가 수 세대가 지난 시점에서 어떻게 작용하는 지를 들여다보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루퍼트 와이어트(<진화의 시작>)와 맷 리브스(<반격의 서막>, <종의 전쟁>)가 연출했던 앞선 세 편의 <혹성탈출>은 유인원과 인간의 대립 구도를 단순하게 바라보지 않았다. 유인원도 절대 선이 아니었고, 인간 역시 절대 악이 아니었다. 삼부작에서 선, 악의 구도는 공존을 믿는 자, 그렇지 않은 자로 나뉘었다. 그 안에서 유인원과 인간은 서로 힘을 합치기도, 서로를 위협하기도 했다.
웨스 볼이 새롭게 메가폰을 잡은 <새로운 시대> 역시 이전 삼부작의 이런 구도를 그대로 가지고 온다. 그리고 여기에 새로운 선과 악의 구도를 형성시킨다. 시저의 메시지가 흐릿해질 정도로 시간이 흐른 시점에서, 이 영화는 과거의 유산, 혹은 메시지를 제대로 바라보는 자를 선으로, 그렇지 않고 오독, 왜곡하는 자를 악으로 그린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이번 영화 속 주인공 이름이 노아(오웬 티크)인 것도 흥미롭다. 노아를 보면 구약 성서 창세기에서 신의 명령을 제대로 이행하고 방주를 만들어, 신의 뜻을 거스른 이들을 덮친 홍수로부터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는 선지자 노아가 단번에 떠오른다. <새로운 시대>는 창세기 속 노아의 방주 모티브를 동력 삼아 진행된다. 신화적 이야기를 따라가는 이 영화에서는 전작과 같은 기품이 느껴지기도 한다.
<새로운 시대>에서 시저는 단순히 초기 유인원을 이끌었던 리더가 아니라 사실상 종교 속 신처럼 묘사된다. 시저로 비롯된 종교의 가치는 그가 가지고 있던 품위, 도덕성, 연민 등이 함축된 그의 의지다. 이 영화는 그 의지를 따라가는 노아를 중심으로 한 일종의 로드 무비다. 무지하던 노아가 여정을 통해 시저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알아가는 과정 끝에 동족을 구원하는 이야기가 이 영화의 기본 구조다(그런 측면에서 볼 때 영화 속 노아는 창세기의 노아보다도 똑같은 구약 성서 속 출애굽기의 모세가 보이기도 한다.).
반대로 이에 맞서는 이는 인간을 노예로 부리려고 하는 프록시무스 시저(케빈 듀랜드)다. 시저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유인원은 뭉치면 강하다(Apes together strong)”을 외치며 시저의 메시지를 오독, 왜곡한 캐릭터다. 공존을 믿은 시저가 “유인원은 뭉치면 강하다”를 외쳤던 이유는 갈등 안에서 소수 무리이자, 약자였던 유인원 집단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다시 말해 시저가 말한 저 대사의 본질은 ‘Together’이며 악을 향한 ‘저항’을 상징했다. 그러나 프록시무스는 ‘Strong’을 믿는 자이자, 저 대사를 ‘저항’이 아닌, 강압적 ‘통치’의 상징으로 삼는다.
노아는 이런 프록시무스에 맞서 격납고를 덮친 홍수로부터 자신의 부족을 지켜낸다. 특히 절벽 끝에서 동족과 함께 노래를 부르며 독수리를 불러오는 것으로 시저가 말한 “유인원은 뭉치면 강하다”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성서 속 최초의 인류는 신이 자신을 본떠서 만든 아담이었다. 그러나 신의 격노로 발생한 거대한 홍수 이후에는 노아가 새로운 인류의 시조가 된다. 시저가 아담이라면, 노아는 말 그대로 노아로 이 영화 속에서 존재한다. 시저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어받은 노아는 적합한 리더로, 유인원의 새로운 시조가 된다. <새로운 시대>는 이렇듯 비장한 모습과 함께 새로운 시대의 시저를 관객들에게 소개한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결국 과거의 것은 사라진다. 하지만 존재가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그 존재의 유산은 후대로 이어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유산을 올바르게 보는 것임을 <새로운 시대>는 말하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순간. 메이(프레야 앨런)와 노아의 대화. 결국 그들은 각자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메이는 등 뒤에 총을 숨기고 있다. 이를 모르는 노아는 시저의 상징을 그녀에게 넘겨준다. 각자의 길을 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시저가 남긴 '공존'의 가르침을 여전히 확신이 없는 는 그녀에게 남기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이 영화는 다시금 타오르는 희망의 횃불을, 이를 향한 믿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