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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신앙, 고난, 그리고 구원

브루탈리스트(The Brutalist, 2024)

by Widermovie

브루탈리스트(The Brutalist, 2024)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브래디 코베 감독의 <브루탈리스트>는 건축가 라즐로 토스(에이드리언 브로디)가 미국에 정착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민자의 ‘아메리칸드림’을 215분(인터 미션 포함)간 펼쳐내는 이 영화에서 가슴 뛰는 희망의 이미지를 좀처럼 느끼기는 힘들다. 그 대신 새로운 나라에 정착하고자 애쓰는 라즐로의 몸부림이 만들어낸 괴로움이 자리하고 있다. 라즐로는 건축가다. 그는 건축이라는 창작 활동, 즉 예술을 통해 괴로운 현실에 맞선다. 그런 라즐로의 예술 활동은 마치 종교적인 활동처럼 느껴진다. <브루탈리스트>는 예술가 라즐로의 예술을 향한 신앙과 고난, 그리고 그를 통한 구원을 다룬 영화다.



현실의 어려움에 치이는 인물이 예술을 향해 나아간다는 점에서 <브루탈리스트>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안드레이 루블료프>를 떠오르게도 한다(실제로 <안드레이 루블료프>는 브래디 코베 감독이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다.). 여기서 이 영화에 종교적 숭고함이 엿보인다.


영화 속 라즐로 일생의 프로젝트는 부유한 사업가 해리슨 리 반 뷰런(가이 피어스)의 의뢰를 받아 쌓아 올리게 된 건축물이다. 반 뷰런의 어머니 이름을 딴 반 뷰런 센터는 자연으로 둘러싸인 언덕 위에 올라간다. 반 뷰런 센터의 이미지는 흥미롭다. 잔혹한 일상에서 라즐로가 이 건물에 매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예언된 홍수에 대비해 만들어지던 노아의 방주를 연상케 한다. 또, 건물 위를 장식한 십자가의 모습에서는 불현듯 골고다 언덕 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스친다.


뭐가 됐든 이 영화는 라즐로 일생의 예술을 종교적 이미지와 겹치게 만든다. 라즐로에게 건축, 즉 예술은 숭고함 그 자체이며, 구원을 향한 간절한 의지이자, 현실을 잊게 하는 도피처다.



이리저리 치이는 라즐로는 더욱 예술에 집중한다. 그리고 그가 언덕 위에 올린 콘크리트 건축물은 견고하고 굳건하다. 영화의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중년이 된 라즐로의 조카 조피아(아리안 라베드)는 중요한 건 ‘과정’이 아닌 ‘목적’이라고 강조한다. 훌륭한 예술의 탄탄한 뼈대에는 예술가의 의지, 그리고 그 의지로부터 나오는 예술가의 목적이 있다. 치열한 삶 속에서도 자신이 만들고자 했던 예술을 향한 라즐로의 의지가 튼튼한 건축물을 창조해 낸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탄생한 훌륭한 예술은 다양하게 해석된다. 예술의 의미는 그 예술이 전시될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 창작자가 바라본 자신의 예술을 넘어, 그 예술을 향유하는 다른 이들이 바라본 예술. 예술은 그렇게 다양하게 가지를 치며 더욱 견고하고 굳건해진다.


라즐로의 콘크리트 건축물은 앞서 언급했듯 반 뷰런의 의뢰에서 출발한다. 반 뷰런은 이 건축물에 자신의 어머니 이름을 붙이며 그녀를 기린다. 영화 후반부, 라즐로의 아내 에르제벳 토스(펄리시티 존스)와 언쟁 이후 반 뷰런은 건축물 안으로 사라진다.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음이 암시되는 가운데, 카메라는 건축물 중앙에 자리한 제단에 빛나는 십자가를 보여준다. 결국 이 건축물은 반 뷰런 어머니의 삶을 기리는 건물인 동시에, 반 뷰런이 자신의 추함과 함께 묻힌 무덤이다. 라즐로의 예술은 그렇게 누군가의 삶으로도 읽히며, 누군가의 죽음으로도 해석된다. 왜냐하면 그 예술은 뼈대가 튼튼한 훌륭한 예술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건축물은 초기 계획 중 도서관이 빠진, 체육관이자, 극장이자, 예배당을 포함한 지역 문화센터다. 그리고 에필로그에서 조피아가 해석한 것처럼, 라즐로가 그의 아내 에르제벳과 함께 수용소서 겪은 경험을 토대로 그것을 재연한 상징물이기도 하다. 라즐로의 예술은 그렇게 지역 문화센터로도 읽히며, 라즐로의 과거를 옮긴 상징물로도 해석된다. 왜냐하면 그 예술은 뼈대가 튼튼한 훌륭한 예술이기 때문이다.



<브루탈리스트>는 이렇게 탄탄하게 구축된 예술의 영원함을 믿는 영화다. 시공간을 초월한 예술. 불멸의 예술. 다시 말해 이 영화는 고전의 힘을 믿는다. 고전은 시대를 초월한다. 1965년 발매된 비틀즈의 ‘Yesterday’는 2025년에도 여전히 빛나는 음악이다. ‘Yesterday’는 시대를 뛰어넘은 고전이기 때문이다. 1939년 개봉한 빅터 플레밍 감독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도 마찬가지다. <브루탈리스트>는 ‘Yesterday’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같은 고전을 꿈꾼다.


고전을 선망하는 이 영화는 옛 클래식 영화들처럼 서막으로 시작해 1막을 보여준다. 그리고 15분의 인터 미션을 거친 후 2막, 그리고 에필로그와 함께 문을 닫는다. 완벽한 고전의 구성. 어쩌면 우리는 새로운 시대, 새로운 고전의 탄생을 목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한, 이 영화가 품고 있는 고전의 구성은 그 자체로 건축적인 구조를 띠고 있다. 라즐로의 탄탄했던 건축물처럼, 이 영화 역시 클래식함을 앞세워 견고하고 굳건하게 우리 앞에 도착했다. 이제 당신이 바라본 당신의 <브루탈리스트>가 이 영화를 더욱 견고하고 굳건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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