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옹지마에 대해 말하고 싶다. 그러기 전에, 노파심이 생겨서 주의사항을 얘기하겠다. 나에게 있어 새옹지마는 무조건적인 긍정 혹은 정신승리와는 다른 개념이라는 것이다. 무조건 잘될 거야, 어떻게든 잘 흘러갈 거야라는 식의 태도는 개인의 무책임함을 야기하기 쉽고, 결국엔 황폐한 허무주의로 끝이 날 수 있다. 왜냐면 이 세상에 어떻게든 잘 풀리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무.조.건.잘.되.는.일 따위는 없고, 없는 무언가를 간절하게 기다리다 보면 내 안의 마음은 삭막해지는 것이다. 새옹지마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하게 짚고 넘어가겠다.
새옹지마의 유래에 대해 초등학교 시절 플래시 애니메이션으로 배운 적이 있다. 중국의 한 할아버지가 말에서 떨어져서 다리를 다쳤다. 근데 다리를 다친 덕에 전쟁에 징집이 안되었다. 그런데 또 본인이 징집이 안되어서 본인 손자가 징집이 되었고 … 상세한 줄거리는 틀릴 수 있으나 뭐 이런 식의 이야기였다. 인생에 영원히 좋은 것도 없고 영원히 나쁜 것도 없다는 것. 무럭무럭 자라고나니 그 어린 시절 배웠던 새옹지마라는 사자성어는 우리네 인생에서 기어코 정답이었다.
중학교 1학년이 딱 되자마자 내 마음은 어떤 친구를 사귀어야 할 지에 대한 고민으로 일렁거렸다. 내가 속한 반을 쭈르륵 둘러보니 폴로 옷만 입는 여자애가 눈에 띄었다. 예쁘고 키가 컸고 잘 웃는 여자아이였다. 나는 그 아이와 친해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 당시 굉장히 소심했던 나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고, 심지어 선생님께서는 성적순으로 짝을 정하겠다고 해서, 나보다 더 괴짜 같은 여자아이와 짝이 되어버렸다. 걔가 반 1등이고 내가 반 2등이었다. 얼마나 재미없는 궁합인가. 나는 내 옆에 앉은 하얗고 어수선하고 빼빼 마른 반 1등 여학생이 너무 싫었다. 여기서 등장하는 새옹지마. 30대가 된 지금까지 나는 그 괴짜 같은 여자아이와 가장 친하다. 그렇게 싫었던 여자애와 나는 어느덧 서로의 개그에 깔깔 웃는 사이가 되었고, 서로의 일을 열렬히 응원하고 가장 내밀한 비밀을 털어놓는 친구가 되었다. 내 눈을 사로잡던 어여쁜 폴로 여자애는 알고 봤더니 나와는 전혀 다른 가치관을 지니고 있었고, 고등학생 때까지도 진정으로 친해지지 못한 채 서로 갈 길을 갔다. 인생도 참 주식처럼 길게 봐야 하는 것이다. 내 ‘친구’라는 주식 종목은 거의 15년을 넘게 봐야 하는 종목이었으니깐. 단타로 치고 빠졌다간 이도저도 못 얻었을 것이다.
새옹지마의 예시는 차고 넘친다. 나와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다. 우리 직업군은 대체적으로 공직에는 많이 종사하지 않는다. 친구 c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 때부터 공직에 종사하고 싶어, 여기저기 메일을 넣고 지원을 해보고 결국 공무원이 되었다. 공무원보다는 돈을 더 잘 벌 수 있다고 생각되는 직업군이었기에 우리는 c 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안정추구형이라고 해도, 꽤 파격적인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5-6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정말 달라졌다. 미국 연준이 숨 쉴 때마다 금리를 올리고 있고, 세계적인 은행들의 파산 도화선에 불이 붙었으며, 국내 재정계에 어떤 질서도 없는 이 시점, 공무원이 된 c는 우리 업계에서만큼 받는 월급을 받으며 안정적으로 공직에 종사하고 있다. 세상에. 인생에 영원한 특성을 가진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어야 하는데 말이다. c는 어쩌면 새옹지마 요정의 가호를 받은 모양이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 영화가 아카데미에 폭풍을 일으켰다. 웨이먼드 역할로 출연한 남자배우의 사연이 뜨겁다. 그는 동양계 배우이며, 아역으로서는 큰 성공을 거두었으나 성인이 된 이후 그렇다 할 배역을 찾지 못해 방황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에에올> 영화 오디션을 보았고, 합격했고, 해냈다. 그의 인생은 정말 새옹지마 그 자체였다고 생각한다. 아역으로서의 큰 성공은 성인이 되어서의 성공을 보장해주지 못했다. 하지만 성인 동양인 배우로서의 방황 또한 그를 끝없이 추락시키진 못했다. 그는 비틀비틀 방황하다가 결국 성공했다. 이 성공 또한 그의 노년을 책임지지는 못하겠지만, 그는 뭐든 해낼 수 있겠지. 그는 인생의 정답을 알아버린 사람이니까.
인생은 결국 새옹지마다. 지구에 중력이 존재하듯, 인생에서 이 프레임을 벗어날 수 없다고 나는 강력하게 생각한다. 모든 사람에겐 공평하게 중력이 작용한다. 또 모든 사람에겐 공평하게 새옹지마가 작용한다. 중력을 잘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용이라고 하면 거창하지만, 어쨌든 운동을 하는 것도 중력을 이용하는 거고, 놀이공원 같은 데서 노는 것도 결국 중력이 있기에 더 재밌게 놀 수 있는 거고,,, 새옹지마도 똑같다고 생각한다. 새옹지마는 모두에게 존재한다. 모두에게 존재해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걸 잘 이용하면 인생의 많은 부분을 평온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걸 그러려니 생각하라는 팔자 좋은 소리는 아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은 막을 수 없다. 하지만 새옹지마의 힘이 모두에게 작용하기 때문에, 그 힘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초점을 맞추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사과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화들짝 놀라지 않듯, 인생에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일들에 화들짝 놀라지 말고, 받아들이고, 그것의 전환점을 기다리거나, 찾아내서 행복해지면 좋겠다.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소에 쉽게 벌어지지 않는 일들이 벌어져서 너무 힘들고 지쳐버린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나의 이런 얘기가 힘이 되지 않을 수 있다. 그저 그런 사람들에게는 새옹지마고 나발이고, 모든 세상의 행운이 다 그쪽으로 몰려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