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함께 살고 싶다 5편

너의 정체가 뭐야?

by 꺼꿀이

은성은 ‘민호’에게 빈방을 내어주었다. 집이 큰 편이었기 때문에 ‘민호’가 지낼 방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넓은 거실과 방 두 개, 그리고 작은 팬트리까지 딸린 이 집에서 은성은 민호와 함께할 미래를 그렸었다. 이제는 그 빈방 중 하나를 민호를 닮은 낯선 존재에게 내어주어야 한다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했다.

감정의 폭풍이 밀려온 터라 은성은 급격하게 피곤해졌다. 민호가 세상을 떠난 이후로 이렇게 마음이 요동치는 하루를 보낸 적이 언제였던가. 따뜻한 물로 씻고 이불에 누워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해 보고 싶었다. 불안하고 애절한 눈빛으로 본인을 바라보는 ‘민호’를 방으로 꾸역꾸역 집어넣으며, 은성은 방에 들어가면 문을 닫고 알아서 거기서 지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민호’는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다. 은성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따르겠다는 순종적인 모습이었다.

은성도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꽝 닫았다. 은성은 왠지 불안해서 방문을 잠갔다. 오늘만큼은 단단히 빗장을 걸어두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은성의 방 안에 화장실이 딸려 있어서 다시 한번 다행이었다.

민호를 잊을 수 없어 민호와 똑같이 생긴 존재를 집에 들여놓았지만, 이 희대의 미스터리를 어느 정도는 해결해야 그를 정상적으로 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샤워부스 안에서 뜨거운 물로 몸을 지지며, 은성은 ‘민호’의 존재에 대한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보았다.


가설 1. 죽은 민호의 유전자를 이용한 복제인간

가설 2. 민호의 숨겨두었던 쌍둥이 형제

가설 3. 은성의 조현병 발병

가설 4. 은성에게 접근하기 위해 성형수술로 민호처럼 변한 제삼자


가설 2는 금방 폐기되었다. 민호는 쌍둥이 형제 따위는 없었다. 민호의 어머니, 그니까 어쩌면 시어머니가 됐을지도 모르는 그녀와의 만남에서 은성은 외아들 민호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었다. 은성은 예비 시어머니에게서 숨겨둔 쌍둥이 아들이 있는 공허함을 찾으려야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외아들에 대한 극진한 사랑과 자부심만이 가득했다. 민호는 외아들이 분명하다!

가설 3도 금방 폐기했다(아니, 폐기하고 싶었다). 가설 4도 합리적인 선택지는 아니었다. 은성은 큰돈을 갖고 있지도 않고, 유명한 사람도 아니었다. 평범한 한의사인 자신에게 누군가가 그토록 공을 들여 접근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성형수술을 통해 민호의 얼굴로 바꿔가면서까지 은성에게 접근할 목적이 단 한 개도 없었다. 심지어 지금 건너편 방에 갇혀 나오지 못하고 있는 ‘민호’의 얼굴은 수술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순도 100퍼센트 자연 그대로의 민호 얼굴이었다.

그렇다면 진짜 의심해 보아야 할 것은 복제인간이다. 민호의 유전자를 누가 빼돌려서 복제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했다. 하지만 여기서도 문제가 있었다. 복제하려면 태아 상태부터 만들어져야 하지 않나? 복제 기술로 성인을 바로 만들어 낼 수는 없을 터였다. 한데 지금 저 사람은 3년 전 민호의 얼굴을 그대로 하고 있다. 미궁 속에 빠진 은성이 머리를 말리지도 않은 채, 맥북을 집어 들고 <복제인간>이라는 검색어를 치려던 찰나에….

똑똑똑-

은성의 방문이 조심스럽게 두드려졌다. 가설을 증명하느라 너무 심취했던 은성은 노크 소리를 듣자마자 심장이 쿵 내려앉을 만큼 놀랐다. 잠시 숨을 고르고 방문에 귀를 기울여 보니 ‘민호’가 문 앞에서 뭐라 중얼중얼했는데 목소리가 너무 작고, 발음이 불분명해서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혹시나 해 주섬주섬 속옷을 입고 은성은 방문을 살짝 열어보았다. 문틈 사이엔 머리를 막 말려서 촉촉한 ‘민호’가 서 있었다. 은성은 문을 황급히 다시 닫았다. 복제인간이라고 하기엔 일상생활 수행 능력이 훌륭했다. 원래 복제인간은 일상생활 처음부터 다 알려줘야 하지 않나…. 은성의 머릿속에는 온갖 SF 영화 속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혹시나 싶어 방에만 가둬놨더니 개운하게 샤워까지 다 하고 서랍 속에 있던 잠옷까지 야무지게 갈아입은 ‘민호’를 보니 이제는 두려움보단 황당함이 몰려왔다. 가장 유력했던 복제인간 가설도 폐기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민호’는 본인을 보자마자 문을 닫아버리고 아무 반응이 없는 은성을 안심시키듯, 문 너머로 들어가지 않겠다고, 하지만 질문할 게 하나 있다고 했다. 목소리에는 조심스러움과 간절함이 뒤섞여 있었다.

“질문할 게 뭔데요?”

“아까 왜 저를 보자마자 울었어요?”

“...”

“이 얼굴이 싫은 거죠? 그래서 이 얼굴을 가진 사람을 보면 자꾸 눈물이 나는 거죠?”

“싫은 건 아니고요. 그 얼굴을 보면 눈물이 나는 건 맞는데, 아까 펑펑 울고 이제는 좀 괜찮아요. 지금은 아까 당신이 했던 말들을 좀 생각해 보고 있었어요.”

“제가 호랑이라는 말이요?”

은성은 그제야 호랑이 생각이 났다. 너무 개소리라서 아예 까먹고 있던 호랑이 가설. 은성은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너라면 네가 호랑이란 말을 믿겠냐, 싶은 은성이었지만 예의상이라도 믿어주는 척을 해야만 할 것 같았다.

“아…. 예. 그 호랑이도 좀 검색해 보고 그러고 있었어요….”

“하늘에서 내려온 동물은 인간계에선 다 자유자재로 모습을 바꿀 수 있어요. 제가 아예 다른 얼굴로 바꾸면 기분이 좀 나아지지 않을까요? 그럼 좀 더 쉽게 같이 악귀를 물리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은성이 민호한테 미쳐서 산 만큼, 이 사람은 악귀한테 미쳐서 산 것 같았다. 호랑이를 믿는 사이비 종교인가? 예전에 친구한테서 호랑이를 믿는 종교 얘기를 들었던 것 같기도 한데…. 단군 신화에서 기원한 종교였던가…. 아니면 그냥 정신이 나간 사람인가.

“악귀…. 네…. 그… 악귀를 무찌르려면 차라리 호랑이 모습으로 싸우는 게 낫지 않아요? 호랑이로 지금 변하면 제가 진짜 악귀 평생 같이 무찔러 드릴게요.”

은성은 초강수를 두었다. 잘생긴 얼굴에 반해서 사이비 종교에 빠질 뻔했다. 악귀 얘기를 3번쯤 듣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드는 듯했다. 쟤 심지어 민호 안 닮은 것 같아. 은성은 민호가 죽고 난 뒤 오늘에서야 본인의 광기가 정점에 다다랐다고 생각했다. 이제 진짜 민호를 보내줘야 할 때인가 보다. 더 이상 환상에 매달려 있으면 안 됐다. 은성은 심란한 마음을 부여잡고 방문 앞에 머리를 박았다. 차가운 문짝의 감촉이 이마에 전해졌다.

그와 동시에 은성의 방 밖에서 짐승 울음소리 비슷한 것이 들렸다. 그니까, 믿기지 않지만...호랑이가 우는 것 같은 그런 그아아앙거리는 소리...저음의 울림이 온 집 안을 진동시켰다. 이건 확실히 사람이 낼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다. 은성은 망설이다가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거실 한복판에 거대한 호랑이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주황색 털에 검은 줄무늬가 선명하게 그어진, 그야말로 완벽한 호랑이였다. 거실이 갑자기 비좁게 느껴질 정도로 덩치가 컸으며, 귀를 쫑긋 세우고 은성을 바라보는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간절해 보였다.

민호의 모습을 했던 호랑이는 본연의 제 모습으로 돌아가자 너무 개운하고 편안했다. 혹시나 옷이 찢어질까 봐 옷까지 벗고 변신을 한 본인의 배려에 심취해 있을 새도 없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목석처럼 서 있는 은성의 눈치를 10분째 보고 있었다. 동업자를 구하는 과정은 정말 쉽지 않다고 느꼈다. 뭐만 하면 울다가, 아무 반응이 없다가, 도망갔다가 하니까 호랑이는 인간이 점점 피곤해지고 있었다.

게다가 이 여자는 특히나 더 예민하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다른 인간에게 접근하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영물이 여러 인간의 손을 타면 힘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호랑이는 이제 은성에게 최선을 다해야 했다. 호랑이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앞발로 바닥을 긁었다.

"으아아악!"

얼어붙었던 은성은 15분쯤 지났을 때 비명을 질렀고, 호랑이는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꼬리를 바닥에 탁탁 치면서 당황하는 모습이 영락없이 초콜릿을 훔쳐먹고 눈치 보는 강아지 같았다.

그런데 그 순간, 호랑이의 몸이 흐릿해지더니 윤곽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호랑이의 몸이 마치 물에 풀어지는 물감처럼 형태를 잃어가더니 갑자기 키 작은 중년 남성으로 변했다. 대머리에 배 나온 아저씨였다. K대학 한방병원 수련의 시절, 은성의 지도 교수님이었다. 특유의 둥근 안경과 구겨진 와이셔츠, 그리고 웃을 때 눈이 작아지는 표정까지 완벽히 박태곤 교수님이었다.

"이, 이건 어때요?"

은성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진짜였다. 진짜 변신했다. 복제인간도, 성형수술도, 조현병도 아니었다. 은성의 눈앞에 있는 존재는 진짜 자유자재로 모습이 변하는 호랑이였다.

"아니면 이건요?"

이번에는 순식간에 20대 여성으로 변했다. 긴 생머리에 스포티한 옷을 입은 익숙한 여자였다. 은성의 가장 친한 한의대 동기인 수진이였다. 수진의 이마 흉터, 웃을 때 나타나는 왼쪽 볼의 보조개까지 그대로였다. 그러더니 또 변했다. 참새로, 매미로, 얼룩말로, 야자수로...호랑이의 변신 차력쇼를 보고 있자니 은성은 어지러워졌다. 빠르게 변하는 모습들을 따라가려니 눈이 아파지고, 머리가 핑핑 돌았다.

"잠깐, 잠깐만요!"

은성이 양손을 들어 제지하자 호랑이는 즉시 변신을 멈췄다. 하필 호랑이는 은성이 가장 힘들어하던 한의원 환자로 변해있었다. 양 갈래머리를 한 50대 중년 여성 김숙희님. 하루에 침을 6번 놔달라는 통에 은성은 그녀와 매일매일 실랑이를 벌였다.

"죄송한데...일단 다시 원래 얼굴로 좀 변해주시고요…."

"네!" 호랑이는 김숙희님 특유의 날카로운 목소리로 살뜰하게 대답하곤 다시 ‘민호’로 돌아왔다.

은성은 다리에 힘이 빠져 벽에 기댔다. 세상에...한국에 진짜 호랑이가 있구나…. 호랑이가 진짜 영험한 동물이 맞구나. 은성은 ‘민호’를 빤히 바라보았다. 눈앞에선 호랑이가 사람으로 변했다가 매미로 변하고 있었다. 생생히 목격했지만, 참 믿기 힘든 현실이었다.

하지만 선량하게 교통 법규를 잘 준수하던 민호가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한순간에 죽었다는 소식보다는 변신하는 호랑이 소식이 더 받아 들일만 했다. 적어도 호랑이는 살아서 움직이고 있다. 적어도 이 세계에서 아무도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때 ‘민호’가 또 변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손바닥만큼 작고 털이 부숭부숭한 무언가로 변했다. 작고 뜨거운 강아지였다. 그것도 아주 어린 강아지. 콩자반처럼 윤기 나는 검은색 털에 까만 눈망울, 볼록한 주둥이까지. 은성이 어릴 때 키우고 싶어 했던 그 강아지와 똑같았다. 어렸을 때 시장 돗자리 앞에 서서 한참을 바라보던, 엄마에게 수없이 졸라댔던 바로 그 강아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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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은성은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앉아서 강아지를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털이 손끝에 닿는 감촉이 너무나 황홀했다. 강아지는 꼬리를 신나게 흔들며 은성에게 다가왔다. 은성이 손을 내밀자, 강아지는 작은 혀로 핥아주었다.

"세상에...미쳤다...어떡해요...평생 이 모습으로 살면 안 돼요?"

은성이 중얼거리며 강아지를 조심스럽게 안아 올렸다. 강아지는 폭신폭신하고 따뜻했다. 전자레인지에 돌린 슬라임 같았다. 호랑이는 강아지 모습으로 은성의 품에 안겨 있으면서 처음으로 졸리기 시작했다. 여자 품이 꽤나 포근했다. 은성의 손길이 자신의 털을 쓰다듬을 때마다 포근한 전율이 흘렀다. 인간계에서의 수행을 성공적으로 끝냈던 천령단 형누나들이 가끔 인간계를 그리워하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었다. 왜 완벽한 하늘계를 두고 번잡한 인간계를 그리워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호랑이는 본인이 언젠가는 이 순간을 그리워할 것 같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평생 이 모습으로 살아 달라는 은성의 말에 강아지 모습을 한 호랑이는 더욱 꼬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아, 동업자를 구한 것 같다! 호랑이는 처음으로 인간계에 내려온 것이 꽤 괜찮은 수행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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