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많은 것들을 하고 싶었다. 아니, 했어야 했다. 나는 아버지와 목욕탕에 가는 걸 싫어했다. 아버지는 그런 날 보며 당신 스스로를 탓했다. 같이 탁구를 치고 싶어 하셨고, 자전거를 타고 싶어 하셨다.
“아버지랑 길게 대화해 본 적 있었어?“
형이 뭔가 눈치챘는지 하라주쿠 역 앞을 지나며 내게 물었다. 대화라.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오래도록 병원 신세 지시다 코로나로 돌아가실줄 알았다면, 당신 입으로 말씀도 밥 먹는 것도 못하시게 될줄 알았다면 억지로라도 하려 했을 것이다. 대화라는 것을.
“없었던 것 같아. 아버지 얘기는 듣기만 했지.“
“나도.“
형과 함께 오모테산도로 향하는 길에서 아버지를 떠올렸다. 누군가를 간절히 그리워하면 그때만큼은 함께 살아있다는 뜻이 된다. 이번 여행에 아버지도 같이 와 있다고 생각하니 비로소 완전한 가족 여행이 된 기분이었다.
“아버지는 그때 왜 그러셨을까?”
“응? 무슨 소리야?”
엄마가 뭔가 살게 있어서 잠깐 형과 드럭스토어에 들어간 사이, 누나에게 조심스레 사적인 얘길 꺼냈다. 가족 간에도 나 혼자만 아는 비밀 같은 게 있다.
“자고 있는데 새벽에 갑자기 내 방에 오셔서 울면서 날 끌어안으셨던 적이 있어.”
“그랬어?”
악몽을 꾸셨던 걸까, 하고 짐작했었다. 아버지는 항상 나를 걱정하셨다. 내가 어릴 때부터 몸도 약하고 형이나 누나에 비해 미덥지 않게 보여서 그랬던 것인지.
“내가 죽는 꿈을 꾸셨던 걸까..”
“그런가? 모르지 뭐. 아버지한테 묻지 않고서야.“
누나에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주로 혼났던 일들이었단다. 그래도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으로 S그룹에 들어갔던 누나를 아버지는 한동안 차로 회사까지 데려다주셨다.
“가자.“
“살거 사셨어요?”
“응, 이거.”
“아, 치실 안 가져왔었어? 나 있는데.. 말씀하시지.”
엄마가 누나에게 조금 전에 산 치실을 보여주는 동안 나는 가이드로서 역할을 다하기 위해 오모테산도에서 가장 좋아 보이는 카페를 구글에서 찾기 시작했다. 엄마는 카페든 어디든 창가 자리를 좋아하시니까 내부 사진들을 꼼꼼하게 살폈다.
“벚꽃이 다 졌구나.”
엄마는 창밖으로 오모테산도의 가로수들을 보며 손에 쥐고있던 커피잔을 만지작거렸다. 꽃은 졌어도 거리에 사람들은 넘쳐났다.
“아버지는 벚꽃 구경 한다고 사람 바글바글 한거 이해가 안된다고 하셨었지.”
엄마는 체구는 자그마하시지만 목소리가 우렁찬 분이다. 그 목소리에는 신비한 힘이 있어서 말씀을 하시면 우리는 다들 귀를 쫑긋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 넷은 말은 안했지만 어느새 아버지를 다시금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사라지고 잊혀서는 안 될 분이었다. 추모하고 또 추모해야 하는 분이었다. 내 아버지여서가 아니더라도 그냥,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생각해 봐도 이 험한 세상에 많으면 좋을 참된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