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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상훈 Apr 29. 2024

1화 : 보이지 않아도 분명히 그곳에 흐르고 있어




 *케야키자카46의 두 귀염둥이 멤버가 결성한 유닛 <유이짱즈>가 불렀던 [시부야강]이란 노래가 있다. 비록 지금은 그룹 이름이 바뀌었지만 한때 내가 좋아했던 아이돌 그룹이었고, 모처럼 도쿄에 가족여행 온 김에 시부야강에도 한번 가보고 싶었다. 시부야에 강이 흐른다니 신기하지 않은가.


 “다 드셨으면 이제.. 가실까요?“

 ”어디?“

 “시부야강이요.”


 일단 엄마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저렴한 호텔이라 조식 메뉴가 부실해서였을까.


 “시부야에도 강이 있어?”

 “그러게, 처음 듣네.”


 강이 있냐고 말한 사람은 나보다 네 살 많은 누나다. 누나에게 맞장구친 이는 그녀보다 한 살 많은 형인데 참 멘탈이 좋다. 그저께 이혼 서류 도장 찍고 어제 우리와 도쿄로 여행 왔다.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베이컨을 질겅질겅 씹고 있다.


 “있대. 폭이 좁긴 하지만.”

 “아 너도 가보진 않았어?“


 누나. 우리 3남매 중에서 제일 잘났다. 대학 졸업 후 바로 S그룹에 들어갔었고 지금은 C모 방송사에서 간부급으로 일하는 팩트지상주의자다. 사실이냐 아니냐, 이게 중요한 사람이라서 대화할 때 신경이 좀 쓰인다.


 “가보진 않았지. 강이 있다는 사실도 노래 때문에 알게 됐는데...”


 누나는 전혀 내 대답을 듣고 있지 않았다. 엄마와 호텔 조식 중에 뭐가 괜찮고 뭐가 별론지 품평회를 벌이고 있었다. 자주 있는 일이다. 누나가 내게 예의상 물어보는 거.


 “다들 반응이 안 좋네. 그럼 전망대나 돈키호테..“

 “어딜 가든 일단 밖에 나가자. 날씨도 좋다.”


 엄마의 말씀에 다들 동의하는 눈치였다. 도쿄에 자주 오진 않았지만 올 때마다 하늘이 예뻐서 날씨가 좋다는 기분이 들곤 했다.


 “나 아이스크림 다 안 먹었어.”


 형의 말에 다들 같은 생각을 하는 표정으로 서로를 본다. 이럴 땐 제일 막내 같다니까.




 스크램블 교차로.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의 행렬. 의도되지 않은 그 모습은 어떤 퍼레이드나 플래시몹보다도 역동적이면서 무심해 보인다.


 “사람 진짜 많네. 정신 사납다.”

 “그치? 정신없지? 전에 아빠랑 왔을 때 생각나네.“


 아버지는 3년 전에 돌아가셨다.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하시기 전, 그러니까 15년 전쯤에 엄마와 누나가 아버지와 도쿄 여행을 했었다.


 “그때 누나 고생 많았겠어.”

 “말모~ 일본어 전혀 못하는데 아버지는 내가 조금만 길 헤매도 화내시고. 난들 길을 알았겠냐구 처음 왔었는데.”


 당시에는 우리 가족 누구도 아버지의 뇌질환을 생각하지 못했다. 원래 평소에도 화를 잘 내시던 분이었고, 도쿄에 와서 시부야와 신주쿠 거리를 걷는 시간이 길어지면 힘들어 하셨다고 했지만 뇌질환 때문일 줄은 미처 몰랐다.


 “아버지 보고 싶네. 일본 또 오자고 했었는데.”


 그리고 그렇게 몰랐던게 너무 후회되고 한스럽다. 시부야강처럼, 지금 눈앞에 보이지 않아도 아버지의 기억이 우리 가족 마음속 어딘가에 흐르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케야키자카46: 일본의 국민 걸그룹 노기자카46의 자매그룹으로, <사일런트 마조리티>라는 데뷔곡을 빅히트 시킨 여자 아이돌. 현재는 그룹 이름이 사쿠라자카46로 바뀌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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