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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상훈 May 01. 2024

3화 : 다이칸야마에서 도시락



 넷이서 걷다 보니 어느새 다이칸야마로 접어들었다. 엄마는 잘 걷는다. 연세가 칠순이 넘으셨는데도 평소 하루 만보 걷기를 꾸준히 하셔서 그런 듯하다. 그에 비해 나는 영 걷기가 편치 않다. 과자살이 쪄서 뭔가 둔한 느낌으로 한 발짝씩 걷고 있었다.


 “무슨 과자를 얼마나 먹었길래.“

 “매일 저녁 먹고 한 봉지씩 해치웠지.”


 형은 어릴 때 내가 먹던 과자를 자주 뺏어 먹었었다. 그 얘길 해도 기억에 없다고 시치미 떼곤 한다. 막내라 형과 누나의 옷을 물려 입고 먹을 것도 항상 마지막에 먹을 수 있었다. 식탐이 생긴 이유가 있는 거다.


 “여기는 동네가 어른스럽네. 하라주쿠보다.“

 “그러네, 차분한 느낌이네요.”


 엄마는 형과 나보다 누나를 더 신뢰했다. 자기 앞가림 못하는 형제보다 스스로 알아서 공부하고 취직한 누나였다. 물론 누나도 늘 일이 잘 풀렸던 건 아니었다. 처음 했던 결혼이 안좋게 끝나고 지금의 커리어를 쌓기까지 우여곡절들이 있었다.  


 “저기 저 카페가 맛있기로 소문난 곳이에요.”

 “또 카페 가? 야 무슨 커피로 배 채우려고 일본 왔냐.”

 “뭔가 음식 같은 걸 먹어야지.“


 고객님들의 원성이 높아져갔다. 가이드로서 고객의 뜻대로 언제나 계획을 바꿀 수 있어야 프로다. 나는 사실 내가 너무도 좋아해서 가고 싶었던 카페 방문을 취소하고 다시 구글에서 다이칸야마 맛집을 검색했다. 그러다 내 눈에 잡힌 건 서점이었다.




 “야, 여긴 책방이잖아.“


 말 않고 서점 앞에 다다르자 누나의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는 대답 대신 씨익 웃었다. 엄마와 형은 서점 주변의 화단에 핀 꽃들을 구경하며 감탄중이었다. 벚꽃은 졌지만 세상엔 벚꽃 말고도 예쁜 꽃들이 있었다.


 “일본어 하나도 모르는데 책을 어떻게 보냐.”

 “여기 먹을거도 팔아.”


 서점이 있는 건물의 다른 층엔 식당 같은 것도 있는 모양이었다. 뭐 별 대단한 음식을 파는 것 같진 않았고 쇼핑몰 푸드코트 같은 정도.


 “문 닫은것 같은데?”

 “어, 진짜?”


 하필이면 가는 날이 장날. <금일 휴업>이라는 글자가 출입문에 떡하니 붙어있다. 아이고 이걸 어쩌나.


 “아버지였으면 이럴때 화내셨다, 크큭.”

 “인정.”


 아버지는 생전에 밥때가 되면 예민하셨었다. 엄마가 제때 밥을 준비해주지 않으면 큰 소리로 ‘배고파!’라고 닦달하셨고, 부아가 치미시곤 하셨다.


 “편의점에서 도시락이라도 사올게요. 저기 화단 근처에 벤치에서 먹으면 어때요?”

 “난 괜찮아.”

 “나도.”


 내 제안에 누나와 형은 동의했고 엄마는 시큰둥한 반응이었지만, 가장 먼저 벤치에 가 앉으셨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근처의 편의점을 샅샅이 뒤져 가장 비싸고 맛있어보이는 도시락 4개를 찾았다.


 “이게 편의점 꺼라고?”

 “비싼 신제품이 나왔더라고요.”

 “와 고기가 많네~”

 “젓가락에 이쑤시개 들어있다.”


 네 사람의 목소리는 자연스럽게 씹고 삼키는 소리로 변해갔다. 가족이라 음식을 먹는 모습도 어딘지 닮았다. 일본이 자랑한다는 지역 특산미로 만든 밥을 입에 넣으며 한명 한명 바라보니, 옹기종기 모여 밥 먹는 고양이들처럼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둘째 날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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