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덕 소리에 황급히 몸을 웅크렸다. 머리 위로 비둘기 떼가 무리 지어 날아가고 있었다. 인간과 동물은 공생관계라지만 도심 속 비둘기에겐 도무지 정이 안 간다. 회식의 흔적일지 모르는 토사물을 쪼아먹는 모습, 아스팔트보다 더 시커먼 오물을 뒤집어쓴 모습을 보고 있자니 거부감이 앞선다. 마냥 피하고 싶다. 옆을 지나던 직장인들도 모두 고개를 푹 숙인 채 비둘기 행렬이 지나가기만 기다렸다. 여유롭게 즐기려던 점심 산책 계획은 비둘기의 습격으로 물거품이 되었다.
빌딩 숲 사이 작은 공원은 점심시간만 되면 산책 나온 직장인들로 만원을 이루는 곳이다. 공원 입구 벤치에는 어떤 노인이 홀로 앉아있었다. 가슴에 유공 훈장 문양이 그려진 남색 조끼를 걸친 채였다. 주름진 손에는 식빵 봉지가 들려있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아껴먹었는지 봉지가 너덜너덜했다. 그는 마지막 남은 한 조각을 입에 물고는 봉지 안에 남은 빵 부스러기를 손바닥에 털었다. 그리곤 마법의 꽃가루라도 날리듯 부스러기를 날렸다. 공원의 비둘기들이 노인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순간 그곳에 잿빛 구름이 내려앉는 듯했다.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마세요’라는 표지판이 여기저기 세워져 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저 더 높이, 더 멀리 빵 부스러기를 뿌렸다.
비둘기들은 머리 위에 달라붙은 빵가루를 떼어먹겠다며 서로의 머리를 막 쪼아댔다. 그 모습이 꽤 우스꽝스러웠다. 저게 어딜 봐서 ‘평화의 상징’인가. 다 철 지난 영광이다. 빛나던 과거는 탁한 회색 깃털처럼 바래버렸다. 김광섭 시인의 <성북동 비둘기>라는 시에도 이런 묘사가 나온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처럼 보고 / 사람 가까이 /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 낳지 못하는 쫒기는 새가 되었다’
노인은 그런 비둘기들을 측은한 눈으로 바라봤다. 가까이 다가온 녀석은 조금씩 쓰다듬기도 했다. 비둘기도 노인의 손길이 싫지 않은지 조용히 곁을 내어줬다.
멀리서 들려오는 날 선 소리에 비둘기들이 황급히 날개를 펼쳤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구청 직원들이 호루라기를 불며 성큼성큼 공원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땅에 내려앉았던 잿빛 구름이 순식간에 흩어졌다. 구청 직원들은 훠이훠이 손을 내저으며 노인 앞으로 향했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된다, 비둘기 먹이 주지 말라는 표지판 못 보셨냐, 비둘기는 유해 야생동물이라 시민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며 몰아붙였다. 기세에 눌린 노인은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유공 훈장도 받으신 선생님께서 법을 안 지키면 어떡하느냐는 추궁에 우물쭈물 망설이던 그는 빵 봉지를 꽉 쥐더니 소리쳤다.
“노인네가 이거 아니면 할 일도 없고, 여기 아니면 갈 데도 없는데 어떡합니까!”
과거의 영광을 추억하는 건 비둘기만이 아니었다. 그는 이제 젊음도 잃고, 사람도 떠나가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그의 사상엔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는다. 무슨 말이라도 꺼내볼까 하면 되레 ‘꼰대’라 눈총받기 쉽다. 아니 차라리 꼰대 취급이나마 해주면 다행이다. 잔소리할 권위라도 있었다는 뜻일 테니. 그러나 지금 그는 사회의 테두리 밖으로 밀려나 버린 존재다. 곁에 남은 건 시간뿐이다. 공원에 나와 비둘기 먹이나 주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 되었다. 마음 둘 곳 없이 떠도는 모습이 잿빛 미래를 생각나게 한다. 비둘기를 보던 측은한 눈빛은 사실 자신을 향한 연민이었는지 모른다.
“돈 없는 노인네는 비둘기만도 못하지.”
구청 직원들의 성화에 자리를 떠나던 그는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리곤 먹다 남은 식빵을 바닥에 툭 던졌다. 반쪽짜리 빵 위로 비둘기들이 머리를 조아렸다. 노인이 쓰다듬던 비둘기조차 무리 속으로 파묻혀 빵을 쪼아댄다. 그의 점심시간은 그렇게 끝이 났다. 어느새 빌딩 숲 직장인들도 총총히 사무실로 돌아간다. 훈장의 영광을 둘러메고 있어도 그에겐 누구도 관심이 없다. 쓸쓸한 뒷모습 너머로 빛바랜 인생이 가라앉는다. 비둘기를 위한 나라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