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성서 1장
김 부장께서 막내 대리에게 이르시되. “너는 모든 시간을 비우고 부대찌개집으로 들어가라. 이 부서에서 니가 진정 의로운 자임을 보았다. 그러니 시간을 내어 친구 없는 나와 점심을 먹을지어다. 내 친히 너에게 인생 조언을 하사하겠노라.”부대찌개 영 내키지 않았으나, 명을 따르지 않으면 눈치가 비처럼 내려 사내 모든 생물이 지상에서 쓸려나갈지니. 막내 대리는 김 부장께서 명하신 대로 준행하였도다.
막내 대리는 김 부장의 명에 따라 정결한 두부, 부정한 갖가지 햄과 소시지를 암수 한 쌍씩 냄비 안으로 모았다. 부대찌개가 끓는 동안 인생 조언 홍수가 밀려드니. 땅의 깊은 샘이 터지고 하늘의 창이 열린 듯 하였다. 막내 대리 단 한순간도 조언을 바란 적 없으나 부하 직원 아낀다며 시작하기를, “회사에서는 항상 다른 사람을 존중해야 하노니. 기분이 태도가 되면 안될지어다. 최 본부장처럼 일하면 욕 먹기 십상이다.”
이어지는 말은 김 부장의 직속 상사 뒷담화인지라.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이 험하였더라. 퇴근 후에 카톡하는 사람, 중요한 자료를 꼭 급하게 요청하는 사람, 내가 낸 아이디어에 숟가락 얹으려는 사람 다 쓸어버려야 한다고 대노하였다. 가만히 듣던 막내 대리 이해가 안되어 고개를 갸웃하나니. 김 부장도 그러하거늘 누가 누구를 욕하는지 의아함이었다. 주말에도 밤낮 없이 연락하고, 부탁한 자료 언제 주는지 1분에 한 번씩 물어보고, 부하 직원 아이디어로 보고자료 만든 자가 김 부장 아니었던가. 라면 사리조차 어이없어하며 육수 위를 황망히 떠다니더라.
막내 대리가 조용히 듣기만 하자 천하의 김 부장 갑자기 수저를 내려놓고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회사에도 집에서도 내 자리가 없는 것 같다”며 통곡하더라. 급격한 전개에 화들짝 놀란 막내 대리 조심스레 무슨 일이시냐 질문하기에, 김 부장 기다렸다는 듯 남편 욕을 시작하였으니. “내가 아픈 날 죽 한 번을 안 사줬도다. 결혼 하려거든 잘 생각해라”이른다. 말 끝나기 무섭게 자식 욕도 신랄히 이어지니. “힘들여 낳으면 뭐하나 용돈 필요할 때만 연락하고 평상시엔 꿀먹은 벙어리다. 자식 낳지 말고 혼자 살아라” 말한다. 아끼는 부하 직원이 인생에서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조언하는 거라 덧붙였도다. 가만히 있던 막내 대리 순식간에 푸념받이 되었더라.
눈물 멈추자 뱃 속이 곯다. 마침 부대찌개 국물이 끓어 넘치매 김 부장 친히 국자를 들어 햄을 한 움큼 떴으니. 맛있는 사리 자신의 배로 들어가고, 갈 곳 잃은 콩 사리만 막내 대리 배로 들어갔다. 잔뜩 이야기를 쏟아내고 후련해진 김 부장 기쁘게 말씀하시되 “오늘의 내 말을 새겨 들으라. 회사 선배, 인생 선배로서 너를 잘 이끌어줄 것이다. 너는 나를 보필하여 우리 부서 번성하게 하라”이르었다. 막내 대리 입꼬리만 겨우 웃는 체하고, 눈은 동태눈이 되었으니. 상사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 천금 같은 점심 시간을 날렸다 하노라.
김 부장이 인생 조언 낭독하사 라면 사리 불게 하시매, 육수의 샘이 닫히자 입맛 떨어진 막내 대리 지상으로 수저를 툭 내려놓았다. 탄복하여 즐거이 걸어가는 김 부장 보며 막내 대리 반면교사의 교훈을 뼈저리게 느꼈도다. 회사에선 뒷담화를 하지 말자, 사생활을 말하지 말자, 타인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쓰지 말자 굳게 다짐하노니. 낮과 밤이 그치지 않을 영겁의 시간 동안 그 다짐 어기지 아니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