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부터 상사에게 잔뜩 깨진 날이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열심히 준비한 보고자료는 회의 내내 난도질을 당했다. 서른 넘어서도 이렇게 혼날 줄이야. 이가 바득바득 갈렸다. 이러려고 힘들게 취업했나 싶은 자괴감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런 내 표정을 눈치챘는지 옆자리 동료가 슬쩍 점심 데이트 신청을 했다. 좋은 데 가서 기분 전환하고 오자는 거였다. 새로 생긴 맛집이라도 가려나 싶어 못 이긴 척 따라나섰다.
내 기분을 풀어주겠다며 데려간 곳은 코인 노래방이었다. 편의점에서 급하게 산 맥주도 함께였다. 점심시간부터 노래방과 맥주라니 웃음이 났다. 당황스러우면서도 묘한 즐거움의 웃음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기분 전환은 확실히 될 터였다. 동료는 영광의 첫 곡을 내게 헌정하겠다며 마이크를 빼 들었다. 선곡한 노래는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그 노래에 코끝 찡할 세대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지만, 명곡은 세대를 초월한다는 말에 더 대꾸할 수 없었다.
조용히 탬버린을 짤랑거리며 화면에 뜬 노랫말을 곱씹었다. 자연스레 나의 서른을 곱씹게 됐다. 서른 즈음이면 아무 고민 없이 살 수 있는 줄 알았다. 그 나이면 수능도 진작 끝났고 취업도 했을 텐데 무슨 고민이 더 필요할까. 마음껏 인생을 즐길 일만 있을 거라 생각했다. 머물러 있는 청춘이 아닌, 어느 때보다 눈부시게 흐르는 순간이 되리라고 믿었다.
막상 서른의 문턱을 넘어 보니 펼쳐진 건 물음표 가득한 세상이었다.‘이 회사가 내게 맞는 걸까?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일인가? 그런데 왜 즐겁지가 않지? 내가 뭘 좋아했더라?’ 한번 시작된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문제만 가득할 뿐 정답이 없는 시험지를 푸는 듯했다. 한 마디로 ‘노답’이었다.
밀려드는 답답함에 맥주를 벌컥 들이켰다. 그 사이 동료의 열창이 절정을 향해 가고 있었다. 노래는 서른 즈음을 ‘매일 이별하며 사는’ 시기로 묘사했다. 조금씩 잊혀져 가고, 또 하루씩 멀어지는. 괜히 맥주를 한 번 더 삼켰다. 그런 쓸쓸한 서른 즈음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해 보기로 했다. 끝없이 이어지던 물음표들을 되새겨보니 결국 나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잘 알아야만 답할 수 있는 질문들이었다. 정답을 찾아 노답 인생을 끝내려면 내가 나와 더 친해져야 했다. 하루하루 어떤 일상을 살아가는지, 그 속에서 어떤 생각과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알아야 했다. 상사의 질타 따위에 흔들리지 않을,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쌓아야 했다.
노래가 끝나자 모니터에는 100점이란 글자가 떴다. 동료는 한껏 어깨를 으쓱거렸다. 음정 박자 무시하고 100점이라니 기계가 고장인 것 같다 놀리자, 노래는 자신감으로 밀어붙이는 거라며 응수했다. 오가는 농담 속에 기분은 한결 나아져 있었다. 아침의 우울함은 이미 흐릿해졌다.
자신감으로 밀어붙여야 하는 건 노래만이 아닐 것이다. 나의 서른 즈음도 그렇게 나아가야 할 터였다. 젊음과 하루씩 멀어질지언정, 스스로에 대한 믿음은 하루씩 더 깊어지는 시기로 만들고 싶어졌다. 그렇게 어릴 적 꿈꾸던 서른의 모습과 조금은 가까워질 수 있기를. 그런 마음으로 남은 맥주를 쭉 들이켰다. 목구멍이 확 열리며 맥주가 내 안으로 거침없이 흘러 들어갔다. 마지막 한 모금이, 아니 점심시간의 맥주가 유독 달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