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김없이 사무실 문을 연다. 이제 나는 익숙한 듯 변신을 시작한다. 우선 미간을 확 찌푸린다. 동공에는 슬쩍 힘을 푼다. 뻐근한 목을 까딱거리며 주기적으로 한숨도 쉬어준다. 누군가 나를 부르면 최대한 굼뜨게 반응한다. 빠릿빠릿한 모습을 보였다간 일이 몰리기에 십상이다. 발소리와 목소리는 되도록 작게. 없는 사람처럼 존재감을 지운다. 팀장은 ‘업무 모드’로 변한 나를 보고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한다.
“그렇게 일하기 싫으면 출근하지 말지 뭐 하러 나와?”
맞는 말이다. 아침마다 변신의 피로를 감수해가면서까지 나는 왜 출근을 하는가. 일이 좋아서는 아니다. 태생이 한량임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일에 미친 사람이었다면 하루 종일 동태눈으로 앉아있진 않을 것이다. 그럼 혹시 같이 일하는 사람이 좋아서인지 가정해 본다. 직장 생활 동안 인류애가 바닥난 걸 보면 이 또한 아니다. 그냥 입에 풀칠하러 출근한다고 답하면 편하겠지만 영 내키지 않는다. 입금과 동시에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월급 때문에 영혼이 갈린다 생각하니 울적하다.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지긋지긋한 출근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그럴듯한 이유 말이다.
고민에 지쳐 질끈 눈 감은 순간, 퀭해진 눈꺼풀 위에 새하얀 빛이 아른거린다. 사무실 창 너머로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고 있다. 그 빛을 신호탄 삼아 배 속에서도 꼬르륵 알람을 울린다. 정신이 번쩍 든다. ‘행복 모드’로 전환할 시간이다. 나는 황급히 구겨진 미간을 편다. 눈빛에도 생기가 돈다. 언제 뻐근했느냐는 듯 온몸에 기운이 퍼진다. 그래 나는 어쩌면 이 순간을 위해 출근길을 달려왔는지도 모른다. 내 하루의 낙, 점심시간이 왔다.
점심은 하루 중 해가 가장 높게 떠있는 시간이다. 마음까지 한껏 들뜨는 시간이기도 하다. 지금이야 점심이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정오 즈음이겠거니 하지만, 처음부터 시간의 의미를 내포한 건 아니었다. 옛 기록에 따르면 승려들이 참선하다 허기질 때 빈 속에 점 찍듯이 가볍게 먹는 것을 '점심(點心)'이라 불렀다고 한다. 고된 정신 수양 중 먹은 한 끼가 어찌나 큰 위로였던지. 한낮에 식사를 챙기는 일이 잦아지면서 점심이란 단어에 '낮에 먹는 끼니'라는 의미가 생겨났다. ‘아침’과 ‘저녁’은 시간이란 개념에 끼니의 뜻이 더해지지만, ‘점심’은 끼니란 개념에 시간적 의미가 더해진 것이다.
단어의 정의를 바꿔버릴 만큼 점심이 지닌 힘은 실로 대단하다. 급식실로 달려가기 위해 책상 밖으로 다리를 꺼내던 학창 시절부터 그랬다. 무슨 메뉴 먹을지 상상하는 재미로 정신없는 오전을 채워준다. 지루하게 남아있는 일과도 밥심으로 버티게 한다. 가끔은 전날의 쓰라린 기억을 해장하기도 하고, 새로운 맛집을 발견하면서 짜릿함을 주기도 한다.
먹을 수 있어서 좋은 것만은 아니다. 긴 업무 시간 중 유일하게 쉴 기회라 더 소중하기도 하다. 밥맛 떨어질 정도로 피곤한 날이면 잠시나마 잠을 청할 수 있다. 상사의 등쌀에 지친 몸을 달래러 병원에 가기도 한다. 소박한 급여로 어떻게든 버텨보고자 은행에 들를 수도 있다. 한 시간 남짓한 동안 우리는 점심이란 이름 아래 참 다채로운 순간들을 보낸다.
앞으로 써내려갈 글은 내가 지나온 수많은 점심에 대한 기록이다. 분노의 젓가락질부터 감동의 한 숟갈까지. 계속 입맛을 당기게 하는 에피소드들이 담겨있다. 점심을 먹으며 알게 된 상사의 이면, 한 입만 빼앗아 먹는 사람에 대한 통쾌한 응징, 점심시간 소개팅 등 점심시간에 벌어지는 스펙터클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개떡같은 직장 생활 찰떡같이 견뎌내고픈 사람이라면, 무료한 일상 속에서 웃을 일 좀 생겼으면 싶은 사람이라면, 왜 이리 열심히 사는지 모르겠는 자신을 위로하고픈 사람이라면, 점심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유독 달게 느껴질 것이다. 우연처럼 나의 글과 만난 모든 이들이 약간의 미소와 약간의 울림이라도 맛보게 되길 바란다.
『톰 소여의 모험』으로 유명한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도 일찍이 끼니의 중요성을 설파한 바 있다.‘인생에서 성공하는 비결 중 하나는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힘내 싸우는 것이다’라고 말이다. 어차피 먹고살기 위한 밥벌이, 이왕이면 즐겁게 먹을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니 짤막한 점심시간만큼은 내 멋대로 누리자. 힘든 하루를 버틸 수 있도록 맛깔나게 먹고 기깔나게 쉬며 스스로를 다독이자. 우리 그 정도는 충분히 누릴 자격이 있다. 하늘 위 가장 높은 곳에서 빛나는 정오의 해처럼, 일상에 맞서는 자신이 누구보다 눈부신 존재임을 잊지 말자.
이제 나도 뭐 하러 출근하냐는 팀장의 핀잔에 당당히 답한다.
“점심 먹으러 출근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