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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유기 Mar 12. 2024

마귀할배의 군만두

“아 싸장님요! 여기 군만두 싸비스 안 주십니까? 우리 회사가 여기서 짜장면을 맷 그릇을 시킸는데! 탕수육 안 시키믄 손님도 아이다카는 겁니까? 군만두로 기름칠을 싸악 해야 회사가 돌아가지!”


같은 테이블에 앉은 팀원들이 고개를 내젓는다. 저 마귀할배가 또 시작이구나 싶은 표정이다. ‘팀장’이란 직함보다 ‘마귀할배’란 별명으로 더 많이 불리는 그는 머릿속이 온통 회사 생각뿐인 워커홀릭이었다. 저렇게 군만두 서비스를 닦달하는 와중에도 회사 타령을 할 만큼 지독했다. 휴가조차도 회사로 떠나는 사람이었다. 휴가 결재를 올려놓고 매일같이 출근했다. 사무실에 나오면 에어컨 바람 덕에 몸도 시원하고, 일도 처리할 수 있으니 마음도 시원한데 대체 왜 휴가가 필요하냐며 열변을 토했다. 회사를 향한 그 맹목적인 사랑에 모두가 혀를 내둘렀다. 


주방장이 못 이기는 척 내어준 군만두 앞에서 중국음식 중 군만두가 최고라며 깔깔거리는 모습이 영락없는 마귀할배다. 기름냄새가 꼬숩지 않냐며 벌름거리는 매부리코마저 마귀할배 같다. 꼭 본인 같은 음식만 좋아하는구나 싶었다. 군만두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내 입장에선 더 그랬다. 입천장 다 까지게 딱딱하고 기름기에 물리는 군만두처럼 재미없고 지겨운 사람. 그런 마귀할배가 맞은편에 앉은 내게 뜬금없는 질문을 꺼냈다. 


“자네는 아버지와의 추억이 있나?”


하마터면 어디 아프시냐고 대답할 뻔했다. 그동안 지켜봐 온 마귀할배라면 이런 질문을 던질 리가 없었다. 회사와 사랑에 빠진 사람의 입에서 가족 얘기라니. 같이 밥을 먹은 게 한두 번도 아니지만 매번 일 얘기만 잔뜩 하다 사무실로 복귀하기 일쑤였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아버지와의 추억을 물었다. 순간 당황한 나는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바싹 마른 군만두 껍데기만 툭툭 치며 어색하게 입꼬리를 씰룩거릴 뿐이었다.


마귀할배는 자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날의 기억을 꺼냈다. 상주로 장례식장을 지키고 있는 동안 이상하게도 눈물 한 방울 나지 않았다고 한다. 기억 속 아버지는 언제나 화내고 꾸짖는 모습뿐, 떠올리면 코끝이 시큰할 만큼 즐거웠던 추억이 하나도 없음을 깨달았다는 거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그 자체보다 함께 한 추억이 없다는 사실이 더 사무쳤다고 했다. 자기도 하나뿐인 딸에게 그런 무미건조한 아버지로 남을까 봐 무섭다고. 


담담하게 넋두리를 하던 마귀할배는 무거워진 분위기가 싫었는지 멋쩍게 웃어 보였다. 그러고는 어느새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 화면을 불쑥 내밀었다. ‘여자친구 사진 찍어주는 법’이라 적힌 블로그가 띄워져 있었다. 딸에게 사진 못 찍는다고 혼이 났다며 요즘 유행하는 각도를 공부한다고 했다. 다음 주 딸의 대학 졸업식에서는 실력 발휘를 해야겠다며 눈을 빛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생경하던지. 회사 이야기가 아닌, 가족 이야기를 하며 웃기도 하는 사람이었구나 싶었다. 익숙한 편견 뒤에 숨겨진 새로운 모습이었다.


바싹 마른 군만두 껍데기를 반으로 갈라본다. 단단한 튀김옷 사이로 촉촉한 육즙이 새어 나온다. 고기와 채소가 알록달록 다채롭게 속을 채우고 있다. 마귀할배, 아니 팀장은 군만두가 자신과 닮은 음식이라 좋아한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겉은 거칠고 딱딱하게 날을 세울지언정 속에는 가족을 향한 따뜻함을 품은 사람. 나도 이 군만두와 정이 들 수 있을까.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이 아닌, 그 속에 숨은 진가를 발견할 수 있을까. 서툰 기대와 함께 한입 가득 군만두를 베어 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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