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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을 피해 본 적 있어요?

영화: 내 몸이 사라졌다

by 소시민 Feb 05. 2025



"그러니까... 왜 있잖아요"


"걸을 때..."


"여기로 오는 척하며"


"농구할 때 속이는 동작처럼"


"딴 길로 새서"


"저 크레인으로 점프하는 거예요"


"하면 안 되는... 뭔가 즉흥적인 일"


"금지된 행동을 하는 거죠"


"덕분에 다른 세상에 가서 잘됐다며"


"후회도 안 해요"


"그런 거요"


"그러고요?"


"드리블로 운명을 피한 다음에 어떻게 해요?"


"그때요?"


"계속 피하는 거죠"


"냅다 뛰는 거예요"


"행운을 빌면서요"



스스로 운명 지어졌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목사이면서도 운명 지어졌다고 믿는 칼빈주의가 아닌 아르미니우스주의 진영의 교단에 속해 있었다 보니 그랬다. 그런데 운명이 결정되어 있는 거라면 어떨까? 처음부터 모든 게 정해져 있었다면 말이다. 


태어날 때부터 이미 내 경계가 그어진 삶 속에서 살아간다는 건 사실이다. 국적과 문화와 정서, 사회, 성, 성향, 유전 등. 내가 빠져나가고 싶어도 이미 세팅된 세상에 존재하게 된다. 오래된 역사의 한 지점에 던져진다.


운명을 피할 수 있을까? 정해졌다고 생각한 길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나에게는 퇴직을 하고 월세를 빼서 보증금과 수중에 있는 돈을 가지고 일본에서 3개월을 버틴 일이 그런 일이었다.






주인공이 우연히 알게 된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서 발걸음을 시작했을 때부터 운명에서 벗어나 다른 길을 가게 된 것이었을까? 아니면 부모가 사망한 사건에서부터였을까? 어떤 것이 운명이고 어떤 것이 운명을 벗어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자신의 운명을 피해 가는 사람처럼 보였다. 여자의 삼촌이 운영하는 목공소에서 일하게 되면서 결국은 손이 절단되는 사건, 그리고 크레인을 향해 점프한다. 손이 깔끔하게 절단되고도 여전히 자신의 운명을 벗어나려는 그의 삶에 대한 태도가 경의롭게 보인다. 


운명은 그를 피아니스트나 우주인이 아닌 피자 배달부로 이끌었지만 운명을 벗어나는 도전을 멈추지 않는 그다. 작은 행동들일지도 모르는 그 행동들이 너무나 크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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