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시끄러워요.
고급 스시집에서 알바를 하면 종종 정치인들, 연예인 커플들이 오는데
비밀 유지 의무가 있기 때문에 누가 누가 사귄다더라~ 어떤 정치인이 와서 뒷돈 주고 가더라~ 따위의 말을 퍼트릴 수는 없다. (물론 안 지킬 수도 있지만)
그래서일까? 알바생을 npc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마치 그들의 대화를 엿듣지 않고 그냥 서빙만 제공하는 로봇이라 생각하는 것처럼.
반지하에 살게 되니 온갖 sound를 접할 수 있는데, 이 소리는 고급 스시집에서 들리는 대화보다 흥미롭다.
1. 옆집 아저씨는 에어컨 수리기사로 현재 성수기라 아주 바쁘다. 그래서인지 가족들이 아빠 뒷담을 하는데 아주 재밌다. 에어컨은 잘 고치는데 정작 아들 방에 전기 나간 건 안 고쳐주는 걸 가족들이 서운해하니 빠른 시일 내로 전기를 갈아주시길.
2. 윗집 남자는 윤하를 좋아한다. 힙합보다 발라드를 좋아하는 듯한데, 윤하 노래를 자주 따라 부른다. 고음 파트에선 묵음처리하는 걸 보아 양심은 있는 거 같다.
3. 사실 여긴 어딘지 모르겠다. 201호인지 202호인지 혹은 301호의 소리가 여기까지 내려오는 걸 수도.
매일 새벽 1시 43분 이후에 샤워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아주 서럽게 우는 소리.
얼마나 고되면 이 시간에 눈물샤워를 하는 걸까.. 싶다가 열받기도 하는 이 마음.
반지하라고 층간소음 없는 건 아니었다.
아래층에서 소리가 안 난다는 장점이 있는 것 같지만, 가끔은 땅들도 수다를 떠는 것 같다.
벌레들이 이동하는 소리.. 식물들이 자라나는 소리..
36층에 거주할 땐 들어본 적 없는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비가 오면, 창문 너머로 바지가 쫄딱 젖은 타인의 종아리를 구경할 수 있는데 그 풍경이 퍽 서글프다.
아빠가 떠나고, 충격으로 오락가락하는 엄마를 두고, 혼자 살아보겠다고 온 반지하다.
힘든 시기이지만, 이럴 때 정신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남은 가족들에게서 독립하고 정을 떼고 싶기도 했다.
온갖 소리와 먼지가 다 들어오는 이 반지하가 나에게 준 선물은
너 뭐 돼?
비빌 언덕 없이 혼자서 올라가야 하는 산봉우리는 너무나도 춥고 경사지다는 것
그것을 배웠다.
고맙다 -1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