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이 안 좋잖아..
반지하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꽤나 색다르다.
나는 아침형 인간이라 자부해 왔는데, 그건 햇빛이 잘 드는 짱짱 집에 살았기 때문이었다.
반지하의 장점이자 단점이지만, 암막커튼이라도 설치한 것처럼 어둡다.
깊은 숙면이 가능하지만 반대로 아침에 일어나기도 어렵다.
출근할 때마다 깜깜한 창문을 바라보면,
지금도 이런데 겨울에는 어떻게 일어나지? 걱정이 앞선다.
거의 이런 느낌..
LG 모닝콜이 필수인 아침이다.
그리고 카르마를 믿기 때문에, 최대한 살충은 피하고 싶은데
아침부터 모기와 각종 거미, 바퀴를 없애는 것이 퍽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상황이 안 좋아지면 궂은 일을 해야 하고, 반지하에 살게 됐다는 이유로 매일 살충을 해야 하는 게 마음이 안 좋다.
이 업보가 계속 쌓이면 어쩌지.. 그런 마음에 가능하면 모기 외에는 잡아서 밖에 풀어주려고 노력 중이다.
장마철이라 그런지 집이 세상 눅눅하다.
어릴 때 봤던 이토준지의 기름집에 와있는 것 같다.
근데 이게 내 집이라니..
환기를 하고 싶지만, 창문을 열면 습도가 미친 듯이 올라가고
창문을 닫으면 공기가 탁해진다.
어쩔 수 없지만 장마철엔 최대한 창문을 닫고 보일러, 제습기를 틀어놓는다.
제습기를 4시간 정도 틀어놓으면 이렇게 물이 쌓이는데 보고도 믿기지가 않는다
이만큼의 물이 공중에 떠있다고..?
이렇게 겨울이 기다려진 적은 처음이다.
추우면 그래도 곰팡이와 습도 문제는 차차 해결되겠지..!
사실 어젯밤에 많이 울었다.
매일 벌레 최소 5마리 이상 죽이는 것도 맘이 불편하고, 집은 끈적거리고
우는데 그 와중에 내 눈물이 습도 높이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어서 눈물도 최소화하려고 노력하고,
떠난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고 그래서 펑펑 울었는데
윗집 남자도 많이 힘든지 어김없이 새벽 1시에 울부짖어줘서 어찌 보니 하모니를 만들어냈다.
목표가 생겼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세워보지 않는 목표.
1년 안에 지상으로 올라가겠다!
나 몰라라 엄마를 두고 반지하로 와서 일에 몰두했지만, 이제 엄마를 모시고 서울 36층 집에 다시 들어갈 것이다.
습기와 눈물로 얼룩진 이 슬픈 지하에서 생활력 잔뜩 기른 뒤에 알뜰살뜰하게 고층 아파트 생활을 할 것이다.
(이거 뭔가 기생충 마지막 장면 대사 같은데..)
눈코 뜰 새 없이 몰락한 만큼, 어느 날 갑자기 가파르게 상승할 수 있겠지.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지만, 좋은 일이 있을 걸 알기에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