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많아도, 돈이 없어도, 가족이 있어도, 가족이 없어도 여전히 나다
푸르게 푸르게 물들었네.
감귤에만 피는 줄 알았는데, 벽지에도 녹색 곰팡이가 피는구나
암세포도 생명이라고..
나름 비 오는 날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생겨나는 생명들을 매번 없애는 게 즐거운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곰팡이와 함께 살면 내가 일찍 죽으니까..
오늘 아침은 녹색 곰팡이 제거와 함께 시작됐다.
반지하로 이사 온 지 벌써 두 달이 되어간다.
그건 바꿔 말해, 내가 꿉꿉이 인간 수습기간 두 달 차.
TV, 인터넷 없이 산 지도 두 달이 되었다는 것이다.
꿉꿉이 인간이란?
벽지, 가구 등에 스며든 꿉꿉함이 지하에 거주하는 인간에게 전이된 상태를 뜻한다.
나름 할인할 때 큰맘 먹고 산 로레알 샴푸와 생일 선물로 받은 딥디크 향수로도 가려지지 않는, 꿉꿉한 냄새로 반지하에서 1년 이상 거주하게 된다면 원하든 원치않든 꿉꿉이 인간으로 변모한다.
살면서 냄새날까 봐 걱정해 본 적은 없었는데..
아무리 향을 피우고, 섬유유연제를 뿌려도 집에 들어오면 어쩔 수 없는 눅눅+쾌쾌한 냄새가 사람을 주눅 들게 만든다.
나 스스로에겐 아직 꿉꿉한 냄새가 느껴지지 않는데, 남들에게 꿉꿉이 인간으로 후각적 피해를 입히는 건 아닐까 하는 염려가 늘 있다.
나의 일상에 이런 염려가 생겼다는 것이 가끔은 서글프기도 한, 2024년 여름이다.
그리고 이제 뉴스를 TV로 보지 못한다
이사 온 집엔 TV가 없고, 인터넷 단말기가 없다!
설치하면 될 문제 이긴 하지만, 이참에 도파민 디톡스나 해볼까 하고 아직 설치하지 않았다.
뉴스는 출퇴근길에 지하철에서도 접할 수 있고, 핸드폰으로 봐도 된다.
넷플릭스나 유튜브가 보고 싶은 경우에는 옆자리 사람 화면을 슬쩍 보면 된다.
요즘 핫한 릴스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티라미수 케이크 챌린지가 유행인 거 같더라
여름은 진행 중
아빠는 떠났고, 엄마는 정신적으로 약해졌다.
첫 자취라 집을 깜찍하게 꾸미면서 살고 싶었지만 귀여운 소품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다. 실용적인 제습 도구를 배치하고 단열벽지로 도배해도 꿉꿉한 냄새가 사라지지 않는다.
마음 둘 곳 없는 통곡소리 가득한 반지하에 오게 되었고, 이렇게 인생이 트위스트 댄스를 추는 건가 싶지만 수많은 불운과 행운이 지나가고 지금의 내가 있다.
엄마 아빠의 사랑을 듬뿍받고 고층 엘레베이터가 금방 안 내려온다고 투덜대던 여고생에서
중소기업에서 점심만 사줘도 감사할 줄 알게된 직장인이 된 내가 있다.
그 모든 일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