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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지 Nov 06. 2024

어쩌면 나라는 인간에게 가장 당황한 사람은 나일지도

자려고 누웠을 때 내가 말하고 싶은 것들



요즘 자려고 누우면 여러 생각이 나를 깨운다.


밤 10시 이후에 드는 인생에 대한 생각을 믿지 말라는 말을 어디서 봤는데,

맞는 말이다. 


늦은 밤에 나를 돌아보는 것은 꽤나 큰 우울감을 남긴다.


법륜스님의 말씀대로 자꾸만 삶의 의미와 존재를 찾다 보면 결론은 죽음밖에 남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그냥 태어난 것이지 무언가 목적과 이유를 가지고 태어난 것이 아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했는데


사랑받고 있지 않다면


당신은... 사람.. 살고 있다...


이렇게 되어버린단 말이지.


요즘 나의 밤은 저... 에 대한 의문들로 가득하다.


나는 이 의문과 우울함의 원천에 대해 파헤쳐보고 싶어졌다.


나는... 사람... 어디에서.. 어떻게... 해서 살고 있나...





1.  아무리 멀리 여행해도 나 자신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


자기 전에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이다.

나의 강점은 '스트레스받았을 때 핸들링 하는 나만의 해소법이 있다'라는 점이었는데, 요즘은 이 해소법도 딱히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꼈다. 해소법을 리뉴얼할 때가 온 걸까?


여행을 참 좋아했는데, 이제는 귀찮기도 하고 내가 이럴 때인가 싶기도 하고

무엇보다 왜 그토록 여행을 좋아했는가 돌이켜보면 여행에 끝에는 무사히 잘 돌아왔다고 맞이해 주는 집과 가족이 있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얼마든지 여행은 다시 갈 수 있지만 고생하고 있는 엄마와 오빠를 두고 훨훨 가고 싶진 않다.


한국에서의 책임감과 스트레스는 잠시 접어두고 훨훨 떠나는 것이 여행의 즐거움인데,

그 어딜 가도 '내가 지금 이렇게 노는 게 맞나?'라는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아 현시점에서 여행으로 나를 찾는 방법은 잠시 보류.


 


2. 적어도 끝까지 가진 않았다. 그런데 거의 끝이다. 


나도 알고 있다. 이렇게 끝나지 않고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경제 상황도, 사회적인 평가도 최악이 아니라는 거

얼마든지 트램펄린 위에서 껑충껑충 뛰는 것처럼 도약할 수 있다는 거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마인드로 나를 바라봐준다면 

나는 건강하고 잘 지내고 있다는 것


그런데 일가친척을 만날 때마다 느껴지는 불편함과 타인 같은 감정이

다시 예전처럼 끈끈하게 돌아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아빠만 빠졌을 뿐인데.

리더가 없어도 팀은 굴러갈 수 있는 건데..


나만 더 이상 가족 구성원이 아닌 것 같이 느껴진다. 이방인이 된 기분이다.


자취하게 된 이 반지하에 친척들 그 누구도 초대하고 싶지 않다.

이사했다는 사실도 말하지 않았다.



3. 하츄핑을 갖고 싶다.


전에 층간소음이 엄청 심하다고 글을 썼던 적이 있는데, 돌이켜보면 그때가 절간처럼 느껴진다.

매일 밤 가수 윤하의 노래를 부르던 남자가 이사를 갔다. (축하해요. 지상으로 가셨길)


대신 더 엄청난 분이 들어오셨다. 매일 밤마다 육두문자를 선사하신다.

그런데 알람 맞춰놓고 욕을 하시는 건지 항상 새벽 1시 28분에 욕을 하신다.


고민이 많아지고 잠 못 드는 밤에 이 분의 욕설을 듣고 있노라면 

당신도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맞지..? 싶다.


단 한 번도 이런 생각이 들어본 적이 없는데, 나를 잘 키워내는 것도 벅찬 시기인 걸 아는데

이 반지하에서 같이 살아갈 반려동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믿을 수 없는 심경의 변화이다. 


나는 외롭다고 책임도 못 지면서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들을 절대 이해하지 못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데도 아이를 낳는 사람들이 나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스트레스 해소법으로 주로 애용한 여행은 이제 싫고, 

다른 생명체와 함께 살아볼까 생각하다니


나라는 인간에 대해 커다란 당혹감을 느꼈다.


내가 날 갑분싸시키다니..


우선은 요새 계속 잠을 제대로 못 자서 이런가 싶다.

신경이 안정되면 누군가가 혹은 어떤 생명체가 있어줘야 진정될 거 같다는 생각이 사라지겠지.


숙면에 도움이 되는 인센스 스틱을 피우고 잠들었다.


밤 10시에 든 생각은 정답이 아니다.

아침에 다시 생각해 봤는데

꼭 강아지 고양이와 살고 싶진 않지만 하츄핑이랑은 살고 싶다.


주인공 로미와 항상 같이 다니는 영혼의 단짝, 하츄핑


지금 내게는 몹시도 그런 존재가 필요한 것 같다.


정확히 말하면 그런 존재를 갈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아이러니하지만, 그 누구도 필요 없다는 생각은 가장 상처받고 약할 때 드는 생각이기 때문에


하츄핑이 갖고 싶다는 생각은 한동안 넋이 나가 

모든 의욕을 잃었던 나의 정신이 슬슬 돌아오고 있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참 신기한 일이다


나이가 들수록 나에 대해 뾰족하게 알게 될 거라 생각했는데 점점 더 모르겠다.


나는 나의 취향만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앞으로 또 어떤 불행이 닥쳐온다면 내가 어떻게 헤엄쳐서 빠져나올지 모르겠다.

자유형을 할 것인지 아예 잠수를 탈 것인지 그냥 익사해 버릴 건지


그렇지만 확실한 건 지금 나에게 닥친 불행의 수면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이다.


이젠 물이 많이 빠진 상태다.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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