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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과학, 사유에서 이론으로

by 더블윤
"가장 중요한 아름다움의 형태는 질서와 대칭, 그리고 명확성이다. 이는 수학적 과학에서 특별히 드러난다."

아리스토텔레스


"천문학은 영혼이 위를 바라보게 하며, 우리를 이 세상에서 다른 세계로 이끈다."

플라톤


고대 그리스의 천문 계산기(안티키티라 기계)


고대인들이 과학의 초입에서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은 오늘날 우리가 아는 ‘과학’과는 전혀 달랐다.
아직 코스모스를 관측하거나 관찰하는 것에 머물러있었던 그들의 과학은 자연 현상을 지금처럼 법칙과 기제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없었다.
즉, 그들에게도 과학적 행위는 있었지만, 과학적 자의식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도 질서를 이해하려는 시도와 원인을 탐구하는 사유의 흔적이 분명히 있었고, 바로 그 지점이 과학의 씨앗이 되었다.


고대인은 코스모스와 자연을 바라보며 거기서 ‘분명한 질서’를 느꼈지만, 그 질서를 신화와 마법의 언어로 해석했다. 번개는 신의 분노였고, 일식은 하늘의 괴물이 삼킨 결과였다. 달력과 농사력은 천체의 움직임을 따르되, 그것은 신의 뜻을 맞추기 위한 제의였으며, 의학조차 주문과 기도로 병을 다스리려 했다.
그러나 이 모든 ‘믿음’의 저변에는 공통된 시선이 있었다.


"세계는 질서를 갖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의 그러한 믿음은 결국, 과학이라는 새로운 언어로 진화하게 되었다.

고대 그리스에 이르러 인간은 신의 손에서 세계를 떼어내어, 이성이라는 도구로 자연을 설명하려는 시도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 시기는 과학이 단순한 관찰과 경험의 축적을 넘어, 원리를 밝히고 이론으로 체계화되는 지적 전환점이었다. 세계는 더 이상 신의 목소리가 아니라, 인간의 질문을 통해 해석되기 시작했다.




그 시작을 연 이는 밀레토스 학파의 철학자 탈레스였다. 그는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 주장하며, 자연 현상을 신화가 아닌 물질적 근원에서 설명하고자 했다. 이 발상은 오늘날의 과학 기준으로는 유치하게 보일 수 있지만, 신화에서 벗어나 세계를 자연법칙의 질서로 이해하려는 최초의 시도였으며, 자연철학의 문을 여는 출발점이 되었다.

뒤를 이은 아낙시만드로스는 우주의 기원을 ‘무한한 것(아페이론)’에서 찾았고,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떠 있다는 발상을 제안했다. 그는 최초로 지도를 제작하고, 생명체가 물에서 유래했다는 진화적 발상을 암시하기도 했다. 아낙시메네스는 공기를 만물의 원리로 보며, 기체의 희박함과 응축을 통해 세계의 다양성을 설명하려 했다.


이들은 모두 세계의 기원을 신의 뜻이 아닌, 관찰 가능한 자연 원리에서 찾으려 했다는 점에서 과학적 사유의 전환점을 상징한다.




피타고라스는 수학이 우주의 본질임을 주장하며 과학의 언어를 ‘수’로 환원시켰다. 그는 하모니와 비율을 통해 음악과 천체운동의 질서를 설명하려 했고, ‘우주적 조화’를 수학적으로 이해하려는 이 시도는 오늘날 천체물리학의 뿌리가 된다. 그가 정립한 피타고라스 정리는 기하학의 핵심이 되었으며, 이후 건축과 음악 이론, 미학 전반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수는 단순한 계산 도구가 아니라, 자연과 우주의 본질을 드러내는 형식이다."라고 생각한 그는, 수학이 자연의 언어라는 본질적 통찰을 가졌던 인물이었다.

에우독소스는 복잡한 행성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동심천구설을 고안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지구는 우주의 중심에 정지해 있고, 별과 행성은 중심이 같은 여러 개의 투명한 구(천구)가 회전하면서 움직인다. 이는 천체의 운동을 수학적으로 모델링하려는 최초의 시도였으며, 후에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철학적으로 보강되고,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로 정립이 된다.
그의 이론에서 출발하여 탄생한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이 1,500년 동안 서양 천문학의 정설로 군림하였으니 실로 놀라운 이론이었음이 분명하다.


피타고라스와 에우독소스의 이러한 수학화의 시도는 “자연을 수로 표현하려는 사유”라는 점에서 분명한 의의가 있다. 피타고라스의 수학적 발견은 오늘날에도 위대한 수학적 정리로 칭송받고 있다. 또한 수학이 가진 논리와 보편성을 고려해 보면, 수학이야 말로 고대 과학을 추상적 이론의 세계로 끌어올린 일등 공신이라 볼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을 관찰하고 분류하며, 논리와 경험에 기반한 학문 체계를 세웠다. 그는 식물과 동물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운동, 원인, 존재론적 탐구를 포함하는 철학적 과학의 골격을 마련했다. 특히 사원인론(형상인·작용인·목적인·질료인) 은 세계의 변화를 네 가지 원인으로 설명하려 한 사고틀로, 이후 물리학과 생물학적 사유의 틀을 제공했다.
그의 『자연학』과 『동물지』는 중세 의학과 생물학의 기본 교재가 되었고, '사유를 체계화하는 방식' 자체가 중세 유럽 교육 시스템에 깊이 뿌리내렸다. 비록 그의 우주론이나 목적론은 훗날 반박되었지만, 그가 구축한 논리적 사유 체계는 수천 년을 관통하는 과학적 사고의 틀을 제공했다.

한편, 히포크라테스는 의학을 신의 영역에서 끌어내려, 인간의 체계와 자연법칙 속에서 질병을 이해하려 했다. 그는 관찰과 임상 기록을 중시하며 최초의 과학적 의학의 기틀을 세웠고, “병은 신의 분노가 아니라 자연적 불균형에서 비롯된다”는 사고는 의학을 과학으로 이끈 결정적 도약이었다. 그의 사유는 오늘날까지 ‘히포크라테스 선서’로 계승되며, 현대 의학 윤리의 근간이 되고 있다.

에라토스테네스는 지구의 둘레를 정교하게 계산했고, 이는 훗날 지리학과 항해술의 기초가 되었으며, 아르키메데스는 부력 법칙과 기하학의 원리를 수립하여 물리학과 공학의 토대를 마련했다. 특히 아르키메데스의 사유는 측정 가능한 세계를 수학적 법칙으로 설명하려는 의지를 상징하며, 이후 갈릴레오와 뉴턴에게까지 깊은 영향을 끼쳤다.




우리는 흔히 고대 그리스를 인문적 철학과 민주주의의 발상지로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행했던 철학 안에는 그 이상의 것들이 담겨있었다.

고대 그리스의 자연 철학은 신화적 설명에서 벗어나, 자연 그 자체의 원리를 탐구하려 했고, 자연을 수와 기하로 설명하려 했으며, 관찰을 통한 개념화와 체계화의 흐름으로 이론적 구조를 만들어냈다. 또한 분류와 인과관계 설명을 통해 자연 전체를 하나의 통합된 대상으로 다루려 했다.
즉, 고대 그리스 자연 철학자들의 사유는 ‘과학적 이론’이라는 형식을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갖춘 시도였기 때문에 '최초의 과학 이론'이라 부를 수 있다.


가히 최초의 과학자였던 고대 그리스 자연철학자들의 사유는 단지 이론에 그치지 않고, 정치, 교육, 예술, 의학, 건축 등 다양한 문명의 제도와 구조를 형성하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로마의 건축가들은 피타고라스의 수학 이론을 바탕으로 아치, 돔, 대칭의 건축미학을 구현했고, 이는 르네상스 건축으로 이어졌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원인론은 기독교 신학 체계에 흡수되어 중세 유럽의 스콜라 철학과 대학 시스템을 구성하는 사유 구조가 되었다.

이러한 이론적 유산들은 수천 년에 걸쳐 재해석·계승되었고, 갈릴레오, 코페르니쿠스, 뉴턴, 아인슈타인으로 이어지는 과학 혁명의 밑거름이 되었다.

그 시대의 과학과 그들이 생각한 사유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일은 적절하지 않다. 비록 그들이 생각한 과학은 현대의 그것과 차이가 있었고 증명되지 못한 이론은 분명한 오류가 있었지만, 그들의 사고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현대과학이 무성하게 자랄 수 있게 하는 양분이 되어주었다.

그들의 사유는 갈릴레오와 코페르니쿠스, 뉴턴과 아인슈타인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을 가로지르는 과학적 탐구의 길에 첫 불을 밝히는 횃불이었다.
그리하여 인간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별과 달의 움직임을 관찰했고, 그 조화 속에서 세계의 이치를 찾기 시작했다. 단지 신의 뜻으로 포장되던 자연 현상들에 대해 사람들은 처음으로 묻기 시작했다. “왜?”, “어떻게?”라는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었다. 그것은 무지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었고, 세계를 향한 최초의 도전장이었다.


이렇듯 세계에 대해 이유를 묻고, 원리를 찾아내려는 자세는 곧 과학의 진화를 의미했다. 신화로 설명되던 세계를 논리와 이성으로 해석하고자 했던 그 첫걸음은, 인류가 정신의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아 나서는 일이었으며, 바로 그 질문의 순간부터 과학에 대한 사고는 변화해 나가기 시작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에 주목해 볼 필요성이 있다. 과학은 정적인 진리가 아니라, 변화에 민감하고, 새로움을 향해 나아가는 생명력 있는 사유의 체계라는 것이다.
태초의 인간이 우주를 향한 질문을 던졌고 그 행위가 인류의 진화를 이끌었던 것처럼, 과학 또한 변화와 적응을 반복하며 지금까지 살아남아 온 하나의 '지성의 생명체'였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과학 역시 진화해 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진화는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새로움을 향해 도약하는 혁신의 반복이었다.


과학은 그렇게 변화를 거듭하며, 시대가 직면한 새로운 문제들에 적응해 왔다. 때로는 인류의 생존을 위한 도구가 되었고, 때로는 문명의 혁신을 견인했다. 그 진화는 생물의 진화처럼, 결코 단선적이지도 않고 단순하지도 않다. 길을 찾는 듯 헤매다가도, 어느 순간 빛나는 도약을 이루는 그것이 과학의 진화이며, 곧 인간 사유의 진화였다.


이렇게 과학은 고대 그리스에서 첫 번째 진화의 도약을 이루었다. 그 도약은 단지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인간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 자체를 바꾸는 인식론적 전환이었다.

그 결과, 인류 문명은 과학적 사고라는 새로운 도구를 얻게 되었고, 그 사고는 오늘날에도 계속 진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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