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은 우리를 겸손하게 하고, 인격을
형성한다. 그것은 단순히 우주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를
넓혀준다."
칼 세이건 (Carl Sagan)
어둠이 지배하던 태초의 밤, 인간은 두려움 속에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 무수한 별빛들은 한낱 아름다움으로 머무르지 않았다. 별은 시각이었고, 시간이었다. 별을 바라보는 것은 살아남기 위한 관찰이었고, 반복되는 하늘의 리듬을 익히는 일은 생존의 지혜였다. 그리하여 과학은 불확실한 세계를 이해하려는 인간의 본능에서 비롯되었다.
인간은 묻기 시작했다.
"저 하늘의 별들은 무엇일까?"
"왜 계절은 반복되는 걸까?"
"하늘의 변화는 우리 삶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이 물음들이 상상과 관찰이 되었고, 관찰은 곧 과학으로 이어졌다.
인류 최초의 학문이 무엇인지 한번 상상해 보자. 수학·의학 등의 학문은 고대 인류가 갖고 있던 선구적 지식 중 하나였다. 이는 그들의 생존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렵채집 생활을 했던 고인류에게 분배는 공동체 유지를 위한 필수적인 행위였다. 그리고 인류는 그 분배를 위해 첫 수학을 시작했을 것이다.
또한 의학(본초학)의 경우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오랫동안 연구되었던 학문 중 하나이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약초 분류·처방 등에 관한 기록들은 천문 기록만큼 오래됐다. ‘자연관찰과 실험’이라는 측면에선 오히려 의학이 고대 과학보다도 더 과학적으로 탐구되었다.
그렇다면 과학은 어땠을까?
고인류에게 수학과 의학이 인간의 생존을 위한 학문이었다면, 과학은 문명을 창조한 학문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과학이란 '관측 천문학', 즉 '코스모스를 바라보는 행위'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기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분명 우리는 문명의 탄생이 비옥한 범람원이 있는 지역에서 인간이 정착과 농업 시작하게 됨으로 시작되었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여기서는 농업에 대한 지식이 아닌 과학이 문명을 창조한 학문이라고 하는 것일까?
생명체의 인지란 자극을 통해서만 발생할 수 있는 활동이다. 자극 없이는 인지·학습의 ‘재료’가 공급되지 않는다.
생명체마다 어떤 자극을 수용할 수 있는가는 그 종에 따라 달라지지만, 인간의 경우 오감이라 불리는 감각기관이 존재한다. 바로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이다. 그중 인간의 학습에 가장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자극은 시각이다.
인간의 대뇌 피질은 50 % 이상이 시각 정보 처리에 사용된다. 이는 다른 어떤 감각 영역보다 큰 비중이다. 그러니 인간은 보는 것을 통해 배운다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 고대의 인류가 무엇을 보았는지를 생각해보면 그들이 무엇을 배웠는지 상상해 볼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1만 2000년 전, 혹독한 겨울만이 지속되었던 지구의 마지막 빙하기가 끝이 나자 인류는 동굴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동굴밖의 생활은 그들에게 풍부한 시각적 자극을 선사해 주었을 것이다.
들판의 소와, 잘 익은 붉은색 열매, 초록의 대지와 숲. 그 자연 안에서 인류는 활보했고, 그 모든 것을 눈에 담았다. 해가지기 시작하면 무리의 남성들은 그들의 부락으로 돌아와 사냥한 짐승의 살점을 나누기 시작했다. 불 앞에 둘러앉은 공동체는 그 수에 따라 채집한 열매와 함께 불에 익힌 고기를 나누어 먹었다.(수학은 이때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하늘은 그들에게 삶의 인도자였다. 태양은 하루의 시작을 알려주었고, 사냥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야 할 시간을 가늠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불 앞에 둘러앉아 올려다본 밤하늘은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었다. 은하수의 위치와 방향, 하늘에 그들이 그린 별자리의 변화는 채집가능한 열매의 종류가 변한다는 것을 알려주었고, 이동 시기를 고려하게끔 만들었다.
다시 말해 그들이 올려다본 하늘의 모든 천체, 코스모스는 인류의 미래를 그려냈다. 하늘은 인류에게 지금이 아닌 앞으로의 행동 방향을 결정하게 만들었고, 오늘이 아닌 내일을 살아가기 위해 고민하게 만든 것이다.
하늘의 규칙성은 자연의 규칙성과 같았고, 그 규칙에 따라 인간의 삶도 그 규칙성과 닮아있었다. 그들이 농업과 정착을 정확히 왜,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는 아직까지도 명확한 근거를 대기가 어렵다.
다만 이 땅의 모든 자연과 같이 그들이 재배하기 시작한 농작물도 코스모스의 규칙을 따랐고, 코스모스의 운행을 이해하기 시작한 인류는 이 작물들을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터득해 갔다.
즉, 코스모스를 바라보고 기억하고 기록했던 인간의 시선이 없었다면, 문명의 시작의 불씨가 된 농업혁명도 없었을 것이 분명하다.
고인류가 '코스모스를 바라보던 시선' 즉, '관측 천문학'은 그 당시 인류가 그것에 대해 기록하고 그 패턴 인식하며, 수학적 주기로 발전시켜 그 운행에 대해 보편적 법칙을 찾으려 했다는 점에서, '과학적 방법'의 원형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 고대의 과학은 달력과 시각(時刻)의 개념을 창조하고, 사회 조직·농경 주기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또한 천체 주기를 설명하기 위해 기하·산술 등을 사용하며 수학이 자연의 언어임을 그 시작에서부터 증명해 나갔다.
나아가 천문학은 인류의 시선이 단순히 코스모스를 향한 경외감에 머물러 있게 하지 않았다. 인간은 그 고대의 과학을 통해 코스모스를 동경하며 기록하였고, 그 규칙성을 그들의 삶에 적용시켰다. 모든 인류는 고개를 들어 같은 코스모스를 바라볼 수 있었고, 같은 곳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들에게 같은 유대감을 선사했으리라 생각된다. 그 유대감은 공동체의 신념이 되고, 질서의 기준이 되었으며, 각자의 인격형성과 그 속에 조화를 지향하는 마음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같은 곳을 지향하는 그 마음들, 나는 그것이 인류 문명의 시작이었다고 본다.
문명의 시작에 코스모스를 관측한 과학이 있었듯, 고대 모든 문명은 시간이 지나도 천체를 관찰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사람들은 점성술을 통해 하늘의 변화를 예측했으며, 그 기록을 통해 천문학이 시작되었다. 특히, 그들은 별자리와 행성의 움직임을 기록하고, 이를 통해 농업에 필요한 시기를 정하고 국가의 주요 사건들을 예측하는 데 사용했다.
고대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별의 주기와 일식, 월식을 기록한 최초의 천문표를 만들었으며, 이는 후에 그리스와 아랍 세계로 이어져 과학적 연구의 기초가 되었다.
이집트에서는 신전의 배치가 별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이루어졌다. 이집트의 건축가들은 별과 태양의 움직임을 철저히 계산하여 피라미드와 같은 건축물을 세웠다. 이들이 추적한 태양과 별의 주기는 고대 이집트 달력의 기초가 되었고, 그 달력은 농업에 필수적인 역할을 했다. 또한, 이집트의 의학도 별자리와 관련이 있으며, 특정 별자리가 지구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도 했다.
고대 중국은 천문학에 있어 뛰어난 성과를 이루었다. 중국의 천문학자들은 하늘의 움직임을 기록하고, 이를 농업에 활용했다. 이들은 수천 년에 걸쳐 하늘의 변화를 추적하며, 천문 기록을 매우 체계적으로 남겼다. 또한, 중국에서는 '천문'이 단순한 별 관찰을 넘어, 자연의 질서를 이해하려는 방법으로 발전했다. 고대 중국의 '천문학'은 정치적 권력과 밀접하게 연관되었으며, 황제는 '하늘의 뜻'을 해석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는 나중에 중국 사상과 윤리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고대 문명에서 과학은 수학과 결합하여 발전했다. 수학은 천체를 계산하고,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도구였다. 수학은 과학을 설명하고 이해하는데 필요한 언어로서 고대과학과 함께 더불어 발전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집트인들은 천문학뿐만 아니라 건축과 수로 시스템에도 수학을 사용했다. 이집트의 수학은 주로 실용적 목적을 위한 것이었지만, 이들의 기하학적 계산은 후에 그리스 수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들은 태양의 주기를 정확히 측정했으며, 이를 통해 정교한 달력을 만들었다. 또한, 고대 이집트의 수학은 농업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수확의 시기를 정확히 예측하는 데 사용되었다.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숫자 체계에서 중요한 발전을 이뤘다. 특히, 그들의 60진법은 오늘날의 시간 측정에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메소포타미아의 수학은 천문학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그들은 별의 움직임을 수학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했다. 그들은 특히 기하학적 계산과 각도를 측정하는 데 능숙했으며, 이는 후에 천문학적 계산을 위한 중요한 기초가 되었다.
이 시기의 과학은 오늘날 우리가 아는 과학과는 달랐다. 그것은 실험과 이론이 아니라,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려는 인간의 첫 번째 시도였다.
천체의 움직임, 별자리의 변화, 달의 주기 등을 통해 인간은 자연의 질서를 해석하고자 했다. 이는 그 자체로 과학의 첫걸음이었으며, 문명의 기초를 형성하는 중요한 과정이었다.
이때의 과학은 신성한 것과 결합되어 있었고, 신의 뜻을 이해하려는 시도였으며, 자연과 인간을 연결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들에게 과학은 신의 세계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이었고, 그로 인해 과학은 철학, 종교와 얽혀 있었으며, 문명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이와 같이 고대 문명에서 시작된 과학은 인간의 본능적인 호기심과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노력에서 비롯되었다. 천문학, 수학, 자연을 이해하려는 욕망은 인류 문명의 기초가 되었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지구에서 얻은 지식의 출발점이 되었다.
과학은 단순한 이론이나 실험이 아니라, 인간이 자연과 상호작용하고 이해하려는 지속적인 노력의 산물이었다.
고대 과학은 오늘날 우리가 아는 ‘과학’으로 발전한 초석을 다졌으며, 그것은 단순히 우주를 바라보는 눈이 아니라, 인간 존재와 자연의 관계를 되돌아보는 중요한 첫 번째 걸음이었다.
과학은 처음부터 거대한 실험실에서 탄생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작은 시선, 그리고 그 안에서 질서를 찾고자 한 열망에서 시작되었다.
이 시기 인간에게 과학이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신의 뜻을 이해하려는 시도였고, 자연의 리듬을 읽으려는 문자의 탄생이었다.
과학은 그저 계산과 실험이 아닌, 인간이 코스모스와 맺은 가장 깊고도 오래된 대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