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some sort of crude sense which no vulgarity, no humor, no overstatement can quite extinguish, the physicists have known sin; and this is a knowledge which they cannot lose.”
“물리학자들은 일종의 죄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어떤 유머로도, 어떤 과장으로도 지워지지 않는 지식이며, 결코 잊을 수 없는 깨달음이다.”
로버트 오펜하이머
이건 단순한 무기가 아닙니다.
이건 태양을 만드는 일이에요.
오펜하이머는 자신의 목소리마저 조용히 삼켰다. 방 안은 숨소리조차 얼어붙은 듯 고요했다.
1942년, 비밀리에 소집된 과학자들 앞에서, 미군 고위 관계자는 봉인된 문서를 내려놓았다. 그 안엔 인류 역사상 가장 위험한 실험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맨해튼 프로젝트.
오펜하이머, 페르미, 파인만, 베테, 시라드. 세계 최고의 두뇌들이 하나둘씩 사막으로 모였다. 그들은 자의든 타의든, 이제 세상 모든 전쟁의 종식이라는 미명 아래 머리를 맞대고 지성을 모으기 시작했다.
날이 새도록 토론에 토론을 반복하는 회의는 매일 이어졌다. 복잡한 수식과 격렬한 논쟁 속에서, 그들은 핵분열의 연쇄 반응이 새롭게 만들어낼 폭탄의 핵심이라는 것에 동의했다.
우라늄-235와 플루토늄-239. 이들 중성자에 의해 쪼개지는 핵종은 한 번의 분열로 막대한 양의 에너지를 방출했다. 문제는 그 분열이 어떻게 연속적으로 이어지느냐는 것이었다. 충분한 양의 핵물질이 ‘임계질량’을 넘어서면, 방출된 중성자들이 인접 원자핵을 다시 쪼개며 지수 함수적으로 반응이 증폭되기 시작한다. 이때 손실되는 질량은 에너지로 변환된다. 그것은 아인슈타인의 질량-에너지 등가 공식, E=mc²의 실현이었다.
단 1그램의 질량 손실이 TNT 수천 톤에 해당하는 폭발 에너지로 바뀐다. 도시 하나를 사라지게 만들 수 있는 별의 힘이, 인간의 손에 쥐어진 것이다.
이론은 이제 실험을 요구했다. 사막의 기지에서, 핵연쇄반응의 설계가 차근차근 완성되어 갔다.
"우리가 만들지 않으면, 누군가가 먼저 만들겠지." 누군가는 그렇게 중얼댔다. 그러나 그것은 핑계인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이제, 그들은 신이 되려는 문턱에 서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1945년 7월 16일, 뉴멕시코 사막.
그날은 인류가 처음으로 ‘별의 심장’을 깨운 날이었다. 하늘을 가르는 섬광, 산맥을 울리는 충격파, 하늘 높이 솟구치는 버섯 모양의 검은 구름. 오펜하이머는 그 장면을 보며, 바가바드 기타의 문장을 떠올렸다.
"나는 죽음이요, 세계의 파괴자가 되었다."
단 몇 주 뒤, 그 불꽃은 히로시마의 하늘을 찢고 내려왔다.
그날 아침은 유난히 맑았다. 아이들은 학교로 걸어가고, 장터에는 장사 준비를 하는 손길이 분주했다. 그러나 08시 15분, 한 줄기 섬광이 도심 한복판을 가르며 세상을 갈라놓았다. 하늘은 순식간에 하얗게 타올랐고, 그 빛이 사라질 때쯤 도시의 그림자는 이미 땅에 새겨진 채 사라지고 있었다.
폭풍 같은 열과 압력이 수천 도의 불길을 쏟아내며 집과 거리를 집어삼켰다. 사람의 피부는 옷감 무늬 그대로 화상으로 새겨졌고, 눈은 순간 증발해 사라졌다. 숨을 쉬는 것조차 고통이었고, 불타는 공기 속에서 사람들은 물, 물을 찾으며 강가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강물마저도 시뻘겋게 끓고 있었다.
사흘 뒤, 나가사키, 구름이 걷히던 오후. 그곳에서 두 번째 태양이 피어올랐다.
그날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것이 인류가 다시는 건너지 말아야 할 강을 이미 건넌 순간이라는 것을 알았다.
도시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무너진 콘크리트 기둥과, 바싹 타버린 나무 기둥, 그리고 주인 잃은 한 짝의 작은 신발뿐이었다.
하지만 참상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능이 사람들의 몸속에 스며들어 수년, 수십 년 뒤에도 암과 기형, 피를 토하는 고통을 안겼다. 전쟁이 끝났음에도, 폭탄은 여전히 사람들을 죽이고 있었다.
고대 그리스의 신은 인간에게 불을 내려주었고, 신이 된 인간은 같은 인간에게 불을 내려주었다. 하지만 그 불의 역할은 너무나도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과학은 대량학살자가 되어 전쟁사와 인류사 모두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그러나 끔찍한 파괴의 끝에서, 무언가가 다시 시작되었음을 나는 말하고 싶다.
폭발의 버섯구름이 걷히자, 과학자들의 마음속에서는 또 다른 반응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오펜하이머는 1945년 10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직후 트루먼 대통령을 찾아가 말했다.
“Mr. President, I feel I have blood on my hands.”
트루먼 대통령은 오히려 "피를 묻힌 건 내 손"이라 말하며 오펜하이머를 '아기처럼 징징대는 과학자'라고 비판했지만, 오펜하이머의 죄책감은 가볍게 넘길 수 있던 게 아니었다.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자를 포함한 모든 과학사를 통틀어 과연 오펜하이머만큼 커다란 죄책감에 사로잡혔던 과학자가 있었을까?
인류사를 통틀어 자신의 지성이 수십만 명의 목숨을 일순간에 사라지게 했던 인물이 있었는가?
오펜하이머의 고백은 단순히 개인의 윤리적 책임감에 대한 고백이 아니었다. 그것은 과학자가 그들이 하고 있는 '과학'을 되돌아보는 성찰의 선언과 마찬가지였다.
오펜하이머뿐 아니라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일부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설계한 지식이 수만 명의 민간인을 순식간에 죽음으로 몰아넣는 모습을 보고 말할 수 없는 죄책감에 휩싸였다. 리오 실라르드 같은 일부 인물은 전쟁 중에도 핵폭탄의 사용에 반대했고, 이후 핵확산 방지를 위한 활동에 평생을 바치기도 했다.
물론 모든 과학자들이 죄책감에 사로잡혀있진 않았다. 몇몇의 과학자들은 그것이 전쟁을 조기에 끝내고 더 많은 인명을 구했다고 믿으며, 그들에게 원자폭탄은 ‘필요악’이었고, 전쟁의 종식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자위하기도 했다. 아마 그들은 그렇게라도 명분을 세우며 스스로를 정당화시키지 않으면,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지 않았을까 추측도 해본다.
하지만 분명히, 많은 과학자들이 이 사건을 통해 과학이 단순한 진리 탐구를 넘어, 전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수도 있는 힘이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인류 최초로 자신들이 하고 있는 과학에 대해 성찰을 시작한 과학자들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원폭 투하 직후, 오펜하이머를 비롯한 맨해튼 프로젝트 과학자들이 모임을 가지며, 핵무기의 국제적 통제 필요성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과학자들은 “우리가 만든 무기가 인류를 절멸시킬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했고, 핵무기 개발의 지속 여부와 연구 책임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했다.
1957년부터 시작된 퍼그워시 회의(Pugwash Conferences)는 원자폭탄의 참상을 목격한 뒤, 러셀과 아인슈타인이 발표한 '러셀-아인슈타인 선언(1955)'이 계기가 되어 설립되었다. 이 회의를 통해 세계 각국의 과학자들이 핵무기 폐기, 군축, 과학 연구의 평화적 이용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과학이 가져온 파괴를 목격한 과학자들이 ‘과학자 윤리’와 ‘연구의 책임’이라는 개념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한 것이다.
20세기. 과학은 또 하나의 도약을 이루었다. 이번에는 엔진과 기계로 드러난 물질의 진화가 아니라, 세계 그 자체를 인식하는 방식의 혁명이었다.
뉴턴의 법칙이 정교하게 맞물린 시계장치 같은 세계를 그려냈다면, 20세기의 과학은 그 틀을 깨뜨리고 불확실성과 낯선 질서가 살아 숨 쉬는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었다. 상대성이론은 시간과 공간의 절대성을 무너뜨렸고, 양자역학은 세계의 가장 깊은 곳에서조차 우연과 확률이 지배하고 있다는 진실을 폭로했다.
인간은 처음으로, 세상이 단순한 논리나 질서로 설명되지 않을 수 있다는 깊은 낯섦 앞에 섰다. 이 거대한 깨달음은 동시에 두 갈래의 길을 열었다.
하나는 문명을 가속시키는 질주였다. 원자력, 컴퓨터, 생명공학. 과학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가능성의 문을 열었다. 인간의 삶을 다시 설계할 수 있는 기술적 능력이 손에 쥐어졌다.
다른 하나는, 그 모든 힘이 초래한 파괴의 가능성이었다. 과학은 도시를 재건할 수 있었지만, 도시 하나쯤은 쉽게 사라지게 만들 수도 있었다. 핵폭탄의 파괴와 수소폭탄의 섬광 속에서, 과학은 더 이상 순수한 진리 탐구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의 손에 쥐어진 가장 위태로운 선택지이자, 인류 전체를 삼킬 수도 있는 거대한 불확실성이 되었다.
그러나 바로 그 위기의 순간, 과학은 또 다른 얼굴을 드러냈다. 모든 것을 불태울 수 있는 그 지식과 힘이, 동시에 우리를 인도하며 구원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
밤하늘의 별빛이 눈부신 이유는 그것이 어둠 속에 있기 때문이다. 20세기의 과학은 인류 문명의 어둠을 드러냈지만, 그 속에서도 다시 코스모스를 향해 나아가려는 희미하지만 확실한 빛을 품고 있었다.
그것은 기술이 아니라, 과학이라는 사유 방식이 품은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었다.
비로소 성찰을 시작한 과학은 또다시 진화하며 문명을 다른 길로 이끌기 시작했다. 성찰과 반성은 변화의 가능성이자 힘이다. 과학은 이제 문명을 이끄는 힘인 동시에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되고자 했다.
이전과 달리 문명이 향하는 방향은 더 이상 단순한 발전이나 지배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혼돈 속에서 다시 질서를 향한 열망, 파괴를 넘어 조화를 추구하는 새로운 가능성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세계가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인간은, 오히려 그 순간부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묻는 윤리적이고 철학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결국 이 시기, 과학은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지며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섰다.
우리는 이 힘으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그리고 바로 이 질문에서, 과학은 단순한 도구가 아닌, 인간의 길을 비추는 등불로서의 가능성을 다시 얻기 시작했다.
“Science is not only compatible with spirituality; it is a profound source of spirituality.”
“과학은 영성과 양립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깊은 영성의 근원이기도 하다.”
- 칼 세이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