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are not playthings of cosmic forces. We can use our knowledge to steer our future toward better outcomes.”
"우리는 우주의 힘에 휘둘리는 장난감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지식을 통해 미래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데이비드 도이치
과학과 인류는 성찰을 시작했다. 과학이 핵을 쪼개고 세상에 죽음과 파괴의 잔혹함을 드러냈을 때, 인류는 처음으로 과학의 힘이 단지 생존과 진보를 위한 도구만은 아님을 깨달았다. 그것은 세계의 질서를 바꾸고, 문명의 진로를 재편할 수 있는 힘이었다.
그렇다고 과학이 멈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과학은 더 깊이 파고들었고, 그에 기반한 기술은 세상 구석구석으로 확장되었다. 핵무기 이후에도 과학은 여전히 새로운 파괴 수단들을 만들어냈고, 인간은 그 힘을 경계하면서도 여전히 그것을 필요로 하고 있다.
과학이 기술과 만나 참전했던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문명은 과학의 힘으로 또 다른 경쟁을 시작했다. 미국과 소련의 우주개발 경쟁이 그것이었다. 두 나라의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지성을 우주를 향해 쏟았고, 인류는 지구상 생명체 최초로 자신들의 고향행성 바깥세상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인류는 자신들이 살고 있는 이 세계를 다시 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름다운 구슬처럼 빛나고 있는 이 작은 행성에서, 인류는 사상과 국가와 민족으로 나누어진 집단이 아니라, 모두가 하나의 지구인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 시기, 과학은 국가 경쟁의 무기에서 지구촌 의식을 형성하는 촉매로 변모했다.
발달된 교통과 통신기술로 세계는 점점 좁아지기 시작했다. 온 인류가 쉽게 왕래하고 소통을 할 수 있는 세상을 뜻하는 '지구촌'이라는 말처럼, 인류는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의 소식을 알 수 있었고, 심지어는 소통도 가능했다.
좁아진 세상은 흩어져있는 지성과 의식을 모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사람들은 모였고, 대화했으며, 논의하고 협의하고 합의하기 시작했다. 이 또한 과학기술이 불러일으킨 놀라운 변화의 바람이었다.
여전히 과학은 시한폭탄과도 같은 힘이었다. 그러나 변화한 것이 있었으니, 과학자들이 자신들의 연구에 윤리적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고, 문명은 과학을 조심스럽게 감시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예전처럼 과학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던 시대는 끝났다. 좁아진 세상 덕분에 인류는 한데 모여 자신들을 이끌었던 과학의 방향을 고민할 수 있었다.
핵확산금지조약(NPT)이 열리고, 부분핵실험금지·전면핵실험금지 논의가 이어졌다. 쿠바 미사일 위기의 간담 서늘한 기억과 체르노빌의 검은 구름은, 과학이 통제 밖으로 흘러갈 때 무엇이 무너지는지 세계에 각인시켰다.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은 산업의 번영이 생태의 침묵을 대가로 삼지 않도록 경고했고, 이를 계기로 환경운동이 서구 문명에서 적극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몬트리올 의정서는 오존층 회복이라는 희귀한 전 지구적 합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환경 회의와 기후 협약, 위험평가와 윤리심의, 공공참여와 투명성 등, 문명은 과학의 방향을 사회적으로 선택하는 장치를 조금씩 만들어냈다.
그리고 20세기말, 과학은 또 하나의 위대한 발명을 통해 인류 문명을 전 지구적 공동체로 바꾸어 놓았다. 이번에 과학이 인류에게 선사한 것은 물리적 에너지나 힘이 아닌, 보이지 않는 정보의 흐름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인터넷이 있었다.
인터넷은 단순한 과학의 산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수십 년간 축적된 과학 이론들이 교차하고 융합된 지식의 결정체였다.
정보를 수학적으로 정의하고 디지털화한 클로드 섀넌의 정보이론, 데이터를 쪼개어 전달하는 패킷 교환 기술, 전자기 흐름을 다루는 전자공학,
계산의 구조를 설계한 전산학, 그리고 트랜지스터와 반도체를 가능케 한 양자역학과 물리학.
이 모든 과학들이 모여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문명의 인프라를 만들어냈다.
역사의 반복처럼, 인터넷 개발을 주도한 것은 역시 군이었다. 냉전 시기, 미국은 핵전쟁 상황에서도 끊기지 않는 통신을 원했고, 그 결과 1969년, 미국 고등방위연구계획국(ARPA)은 ARPANET을 개발했다.
분산형 구조를 가진 이 네트워크는, 하나의 노드가 파괴되어도 전체 시스템이 작동하도록 설계되었다. 전쟁의 논리 속에서 태어난 기술은 놀라울 만큼 유연하고, 강인한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문명은 곧 이 기술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선택했다. 과학자들과 연구자들은 이 시스템을 정보 공유와 협업의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그 흐름은 학계를 넘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1991년 팀 버너스 리가 개발한 World Wide Web(WWW)은 인터넷을 전 세계 대중에게 개방하며, 인류 문명에 이전에 없던 통합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3차 산업혁명, 정보화 시대의 개막이었다.
여기서 가장 주목할 것은 과학과 기술, 그 자체보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했느냐는 문명의 선택이다.
인터넷은 폐쇄된 군사 기술로 남을 수도 있었지만, 인류는 그것을 정보 공유와 연결, 의식의 확장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길을 택했다.
인터넷은 단지 지식을 연결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고방식과 가치관, 사회 구조까지도 변화시킨 거대한 전환점이었다.
정보는 국경을 넘고,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그리고 그 흐름 속에서 인간은 처음으로, 전 세계가 하나의 문제를 동시에 고민하고, 함께 꿈꿀 수 있는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과학은 다시 문명을 새로운 차원으로 이끌었다.
이번에 과학이 만들어준 세계는, 무기와 에너지가 아닌, 의식과 정보로 이루어진 세계였다.
과학기술이 가져온 또 다른 산업혁명은 그 즉시 문명의 변화를 일으켰다.
제조업은 여전히 중요했지만, 부가가치의 핵심이 ‘물리적 생산’이 아니라 정보와 데이터에서 창출되기 시작했다. 여러 분야들이 디지털화되기 시작하며 금융, 소프트웨어, 컨설팅, 디자인, 미디어 산업들이 급성장했다. 또한 정보통신기술(ICT) 덕분에 생산, 유통, 관리가 전 세계적으로 실시간 연동됨에 따라 국가 간의 장벽을 허문, 다국적 기업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맥도널드, 코카콜라, 애플, 나이키 같은 브랜드는 세계 어디서나 같은 로고·메뉴·상품을 제공했고, 이런 표준화된 소비 경험은 공통의 문화적 코드를 갖게 하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문화는 민족이나 국가의 틀을 벗어나 활발하게 교류되기 시작했다. 한류, 할리우드, 일본 애니메이션 등 국가 간 문화 교류의 속도와 범위가 지속적으로 확장되어 가며 사람들의 공감의 범위는 점차 넓어져갔다.
또한 전화, 팩스, 인터넷, 모바일 통신의 보급은 전 세계가 ‘즉시 연결’ 상태가 될 수 있게 만들었다. 이를 통해 시간·공간의 장벽이 무너지면서 실시간 소통·협업이 가능해졌고, 원격근무, 재택근무, 온라인 교육이 등장해, 해가 뜨면 일터에 나가고, 해가 지면 집에 들어온다는 고정적인 생활 패턴에 변화가 일어났다.
이제 정보는 어디에나 넘쳐났다. 인터넷과 위성방송을 통해 누구나 전 세계 소식을 접할 수 있게 되었고, 검열과 정보 독점이 약화되었다. 누구나 타국, 타 지역의 생활상이나 부조리들을 알 수 있었고 이는 시민운동과 국제연대를 가능케 했다.
하지만 무엇이든 다양성에는 명과 암이 공존하기 마련이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는 동시에 새로운 어둠을 품고 있었다.
정보는 무기가 되기도 하고, 진실을 덮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감시는 더욱 정교해졌고, 개인정보는 상품이 되었으며, 왜곡된 가치와 허위 정보가 빛보다 빠르게 확산되기 시작했다.
기술은 인간을 자유롭게도 만들었지만, 또 다른 방식의 통제와 조작, 분열의 도구가 되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이쯤 되면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과학기술은 그 자체로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그 기술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언제나 인간이다. 인류의 선택이 곧 문명의 방향을 결정한다.
우리는 지금, 지식과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바다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또 한 번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공유할 것인가?
어떤 가치를 선택하고, 어떤 윤리를 따라야 하는가?
더 많은 정보보다, 더 깊은 사유.
더 빠른 기술보다, 더 나은 방향.
이제야말로 우리는 공존과 조화, 질서와 의미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정보의 바다에서 길을 잃지 않게 해 줄 우리 모두의 나침반일 것이다.
과학은 지금도 문명을 새로운 변화로 이끌고 있다. 이제 지구 위의 문명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과학이 가져온 이 미래의 시대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모든 정보와 의식을 공유할 수 있는 오늘날, 우리의 미래를 설계할 토대는 이미 마련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 말은 즉슨, 우리가 맞이할 문명의 모습과 그 문명을 이끈 과학의 모습까지 우리가 설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코스모스를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된 과학은 항상 기술과 함께 인간의 생각과 삶의 방식, 심지어 존재의 방식까지 바꾸어 놓았다.
그렇다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미래는 분명하다.
코스모스의 회복. 아니, 어쩌면 이전엔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코스모스의 건설.
과학은 앞으로도 그 길을 밝히는 첫 별빛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과학은
그 본질부터 이미,
코스모스로부터 태어난 학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