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희랍어시간>
인생에서 언어를 잃어버린다면 어떤 느낌일까.
앞을 볼 수 없다면 어떤 장면이 내 안에서 기억될까.
나에게 말(言)이 없다면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대부분 내 마음을 아프게 했던 어떤 '말'로 남게 되곤 한다. 다른 사람에게 주고 말았을 상처 역시 미숙한 내가 내뱉었던 '말'로서 그에게 남아있을 것이다. 상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반면, 말은 기억되고, 맴돌고, 곱씹을 수 있다. 행복했던 순간 역시도 그 순간을 적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있을 때 더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언어는 '육체적인 접촉'이라는 표현이 기억에 남는다. ‘시선’과는 다르다. 눈으로만 인사하고, 미안해하고, 감사를 표하는 '시선'은 접촉하지 않으면서도 접촉할 수 있는 방법인 반면, 언어는 폐와 혀와 입술을 움직여 공기를 흔들어 상대에게 보내는 것이기에 반드시 접촉해야 하는 것이라고. (*가끔은 무심한 언어보다 차가운 시선이 더 아프기도 하지만.)
나에게 말이 없다면, 오늘 새벽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느꼈던 행복이나 지금 글을 쓰며 마시고 있는 커피 한 잔이 주는 에너지 같은 것들이 바람의 감촉과 씁쓸한 커피 맛으로만 기억되겠지. 어떤 말들은 그 자체로 나를 따뜻하게 해주기도 하는데, 그 따뜻함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공허할 것만 같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있다는 것이, 오늘 나를 기쁘게 했던 순간을 ‘말’로 정리하고 남길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글을 쓰는 이 공간도 나에게 언어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기에 하루를 살아감에 있어 최대한 많은 순간을 끌어안고, 내 마음으로 가져와서, 나만의 ‘말‘로 남겨놓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이상하다. 언젠가 꼭 이런 밤을 겪은 것 같다.
비슷한 수치와 당혹감을 느끼며 이 길을 걸었던 것 같다. 그때에는 그녀에게 말이 있었으므로, 감정들은 더 분명하고 강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녀의 몸속에는 말이 없다. 단어와 문장들은 마치 혼령처럼 그녀의 몸에서 떨어져, 보이고 들릴 만큼만 가깝게 따라다닌다.
그 거리 덕분에 충분히 강하지 않은 감정들은 마치 접착력이 약한 테이프 조각들처럼 이내 떨어져 나간다.
-한강, <희랍어 시간>
앞을 볼 수 없다면
하루에도 수백 번, 수만 번 많은 생각들이 나를 찾아온다. 현실적으로 필요해서 떠오르는 생각도 있고, 들뜨게 만드는 생각도 있고, 내 마음의 밝은 구석을 난데없이 짓누르는 생각도 있다. 떠오르는 장면들은 대부분 지나간 과거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만약 내가 앞을 볼 수 없었다면, 세상이 암흑과 같다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어떤 장면으로 그려질까? 이미지 없이 어떤 감촉만으로만 그 순간을 그려볼 수도 있을까?
6월을 갓 넘긴 어느 날 갑작스럽게 뜨거워진 날씨에 손부채질을 하며 걷는 사람들의 모습,
대학 입학식 날 촌스러운 파마를 하고 봄재킷을 입고 왔는데 갑자기 쏟아진 폭설에 어리둥절 오들오들 떨던 촌스러운 나의 모습,
첫 회사 입사교육받으러 가던 날 감색 스커트에 흰색 블라우스를 입고 긴장과 행복이 교차하던 내 얼굴,
갑작스럽게 양수가 터져 병원으로 향하던 평일 대낮의 한산한 거리,
퇴근 후 저녁 수영을 마치고 나와 바라본 저녁 하늘,
지나온 모든 기억들은 대부분 장면과 그림으로 내 속 어디엔가 저장된다. 필요할 때 가끔 꺼내보곤 한다. 만약 내가 앞을 볼 수 없었다면 지금 나의 기억과 추억들은 아주 다른 모습을 한 채 저장되어 있겠지.
하지만 시각이 없어도 기억은 다양한 감각으로 저장되기도 한다. 초여름밤의 풀냄새, 동기들과 둘러앉아 짜장면을 먹었던 그 잔디의 까끌한 감촉, 두툼하고 따뜻했던 남자친구의 손 같은 것들.
그래서 난 언어와 시각 둘 중 하나만 선택하라고 한다면 그래도 언어를 남기고 싶다.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해도 감촉과 온도와 냄새로 기억할 수 있을 것이기에. 하지만 언어 자체가 없다면 그 감각을 설명할 수가 없을 것이고, 설명되고 정의되지 못한 감각들은 금방 흩어지고 잊힐 것만 같다.
그때의 나에게 불교의 인상이란,
보름쯤 전 어머니와 누이동생과 함께 갔던 연등회 날의 기억이 전부였다. 그때까지의 짧은 인생을 통틀어 시각적으로 가장 아름다워다고 할 수 있을 광경을 그 하루의 낮과 밤에 모두 경험했다.
수십 장의 얇은 홍보랏빛 한지 조각들을 일일이 주름지게 말아 꽃잎을 만들어 붙인 연등들이 햇빛을 받으며 대웅전 앞마당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따스한 촛불의 빛이 안쪽에서 고요히 새어 나오는, 먹색 어둠 속에서 겹겹이 흔들리는 수백 송이의 붉고 흰 지등들.
-한강, <희랍어 시간>
언어를 잃어버린 여자와,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가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다.
상처를 알아차리고, 감싸주고, 사랑해 주는 일은 눈도 입도 필요가 없는 듯하다.
나에겐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언어도 있고, 사랑의 모습을 그대로 기억할 수 있는 시력도 있지만 이것들이 영원할 것만 같아 오늘도 그에게 표현하지 않았다. 쓴다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아낄 이유가 없는데 왜 이리도 박한 것일까. 내 마음을 열심히 말해주고, 추억으로 남을 이미지를 많이 만들어 가는 일이 결국 깊게 살아가는 일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