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것들의 발견

by 안개별


보잘것없는 순간에 이름을 붙일 때,

그 장면은 아름다운 이야기로 완성된다.



특별할 것 없던 주말의 아침이었다.

알람 소리에 쫓기며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 날,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소처럼 일찍 눈이 떠졌다. 아이들 역시 부스럭대는 소리에 나이 순서대로 눈을 떴다. 소파에서 뒹굴거리다 옷을 입었고, 식탁에 앉아 따뜻하게 차려놓은 밥을 먹었다. 평소의 주말보다 일찍 눈을 떴기에 서두를 필요는 없었지만, 외출 준비를 해야 했다. 아이들의 치과 진료가 있기 때문이었다.


차를 타고 어린이 치과로 향하던 길. 늘 다니던 길이라 특별할 것도 없었다. 빨간불 신호 앞에 차가 멈추자 그제서야 창밖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바람이 무서운 속도로 세상을 뒤흔들고 있었다. 차까지도 좌우로 흔들리는 듯했다. 세차게 불어대는 바람에 가로수들이 몸을 잔뜩 웅크렸고, 바닥에 떨어진 낙엽들은 갈길을 잃은 듯 이리저리 흩날리고 있었다.

문득 우리나라를 훑고 지나가며 큰 피해를 주었던 태풍의 이름들이 떠올랐다. 매미, 루사, 힌남노. 또 뭐가 있더라. 어렸던 그때, 뉴스에서 보았던 장면들이 떠올라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이었다. 나도 모르게 어깨가 한 번 높게 들썩였다.


그때 뒷자리에 앉아 있던 둘째가 외쳤다.

"엄마, 나뭇잎이 발레를 하는 것 같아요."

아이의 말대로였다. 바닥에 있던 낙엽들이 바람에 이리 흔들, 저리 흔들,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마치 발레리나 같기도 했다. 팔을 크게 벌렸다 오므렸다 하는 동작처럼 보이기도, 다리를 높게 들고 껑충 뛰어오르는 동작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머나, 정말 그렇네! 우리 아들은 어쩜 말도 이리 예쁘게도 하지?"

운전대를 잡고 있던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아이의 말 한마디에 바깥의 풍경이 완전히 달리 보였다. 방금 전까지는 그저 거센 바람이 부는 거리였지만, 지금은 넓은 무대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이번에는 바람이 위에서 아래로 몰아쳤다. 나뭇가지에 붙어있던 몇 안 되는 잎들이 우수수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는 괜히 아이에게 질세라 한마디를 보탰다.

"바람이 너무 세서 나뭇잎이 다 떨어지네. 꼭 낙엽비 같지 않아?"

뒷좌석에 앉은 아이들이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가볍고도 산뜻한 웃음소리가 차 안을 꽉 채웠다. 마치 봄이라도 찾아온 듯 싱그러움이 느껴졌다. 백미러로 그들의 얼굴을 살폈다.

돌만 굴러가도 웃음이 터지는 나이라고 했던가. 말갛고 무구한 그들의 표정을 바라보았다. 해준 것도 없는데, 구김 없이 낭창하게 자라주는 것 같아 괜히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다시 둘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저기 좀 보세요. 낙엽 구름 같아요. 낙엽들이 둥둥 떠다녀요. 예쁘지요?"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나온 갈색 잎들이 둥실 떠오르다 이내 흩어졌다. 옆으로 불어온 바람 덕에 잠시동안 둥둥 떠있는 것이 정말이지 구름 같았다.

"정말 낙엽 구름이네. 예쁘다, 정말 예뻐."


짧았던 신호 대기의 순간, 어른의 시선을 거두고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 급할 것도 없었고, 서둘러야 할 것도 없었다. 우리는 잠시 멈춰 자연의 풍경에 그저 푹 빠져버렸다.

생각해 보면 아이들은 그랬다. 어른들은 볼 수 없는 것들을 볼 줄 알았고, 그 장면 속에서 나름의 의미를 발견해 냈다. 그리고 이름을 붙였고, 주변 사람들과 나누었다. 반면 나는 바쁘게만 사느라 너무 많은 것들을 놓치고, 그냥 지나쳐버리고 있었을 터였다.


아름다움을 발견할 줄 아는 아들과 그를 어여쁘게 바라보는 엄마. 우린 제법 잘 어울렸다. '케미가 좋다'는 말이 이럴 때 쓰이는 말임이 분명했다.

이따금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를 키워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제아무리 세상이 등을 돌리고, 사정없이 바람을 몰아치며, 낭떠러지로 끝으로 나를 몰아세운다 해도 끝내 나를 붙들어주는 건 아이들이라고.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고, 느낄 줄 아는 그들이 있기에 나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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