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게 하는 힘
워킹맘이었기에 주말이면 더없이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곤 했다. 한겨울에도 춥지 않게 뛰어놀 수 있는 실내 공간에서 반나절을 원 없이 보낸 뒤 집에 돌아왔다. 그런 이유로 잠자리에 드는 시간도 늦어진 어느 날 밤, 11시가 다 되었을 무렵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이들 뿐 아니라 나 역시도 자고 있을 시간이었기에 특별한 일이 없다면 남편은 전화를 하지 않았다. 휴대폰을 들고 안방을 나서며 아이들이 깰까 방 문을 살포시 닫았다. 평소였다면 시큰둥하게 전화를 받았을 것이다. 자는 시간에 무슨 일이냐고. 그래야 했던 내가 전화받는 걸 망설이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알았다.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걸.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요동치는 심장을 손바닥으로 꾸욱 누른 채 전화를 받았다.
"여보?"
"으윽. 자기야, 하...... 지금, 여기 좀 와줘야겠어."
슬프게도 직감은 언제고 틀린 적이 없었다. 남편에게 큰 사고가 났다.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로 실려간 남편은 하염없이 내가 오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보호자가 없이는 입원도 수술도 받지 못한다고 했다. 응급실 엑스레이 촬영 결과 남편의 왼쪽 발목뼈 두 개가 모두 부러졌다고 했다. 블랙 아이스를 발견하지 못하고 뛰어가다 쭈욱 미끄러지고 말았다. 그렇게 가족들에게 조심하라고 이르던 남편이 다칠 줄이야.
구급차에서는 받아 주는 응급실이 있어서, 응급실에서는 바로 입원이 가능하여, 병동에서는 다음날 바로 수술을 잡을 수 있어 천만다행이라고 했다. 남편이 운이 좋았던 거라고. 몸이 재산이던 남편이 앞으로 꽤 오랫동안 일을 할 수 없기에 망연자실하고 있던 우리 부부에게 그나마도 힘이 되어주는 말이었다. 남편은 한쪽 다리가 완전히 망가져서 2~3개월은 목발을 짚어야 한다. 완전히 뼈가 붙으려면 6개월은 걸리는 데다 1년 후에 철심을 제거하는 수술로 다시금 입원을 해야 한다. 남편의 골절로 인해 수개월간 경제적 어려움에 놓일 테지만 우린 이전처럼 어떻게든 감내하고 돌파하며 극복해 나가겠지.
수술 당일 아침, 남편 옆을 지키던 중 첫째에게 전화가 왔다. 전날 잠들기 직전까지도 아빠 걱정을 한없이 늘어놓던 아이였다. 수술을 앞둔 아빠에게 기운을 불어넣고자 전화를 했을 테지.
"우리 딸, 일찍 일어났네."
"아빠 수술 아직 안 했지?"
"아직. 아마 저녁 6시 넘어서야 수술실 들어갈 것 같아."
"엄마, 있지. 아빠 수술 잘 될 것 같아!"
아침 일찍부터 전화를 해서는 아빠의 수술이 잘 될 것 같다고 말하는 아이의 말에 웃음이 터져버렸다. 창가로 날아와 종종 얼굴을 비추곤 하는 까치라도 본 건가 싶었다.
"엄마도 알지? 승기 꿈이 정확한 거. 오늘 일어나자마자 승기가 그러더라고. 자기가 유니콘을 타고 하늘로 훨훨 날아갔다고. 그러니까 아빠한테 걱정하지 말라고 꼭 전해줘! 수술 아주 잘 될 거라고."
일순 활짝 웃고 있던 내 눈과 입이 제자리를 찾아갔다. 별안간 눈물이 핑 돌더니 두 눈에 가랑가랑 맺혀 버렸다. 맥없이 병원 침상에 널브러져 쪽잠을 자고 있는 남편을 바라보니 더욱이 그랬다. 양가적인 이유였다. 아이들에게 늘상 슈퍼히어로였던 남편이 유달리 초라하고 작게만 느껴졌던 이유에서. 그리고 그런 남편이 조금이라도 기운을 차려 빠르게 회복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느껴졌던 이유에서였다.
수시로 들락거리며 환우들의 상태를 확인하는 통에 병실은 늘 시끌벅적했고 남편은 금세 잠에서 깨어났다. 하루 만에 핼쑥해진 남편의 얼굴을 보니 마음이 찡하게 아파왔다. 덩치만 컸지 마음은 여려서 눈물은 또 얼마나 많은지. 수술의 결과를 두려워하고 있을 게 뻔했다. 활짝 웃으며 앞서 딸아이가 했던 말을 전했다.
"귀엽네."
"그러니까 걱정할 것 없대도. 알지? 유니콘은 행운을 상징하는 동물인 거? 수술 진짜 잘 될 거야."
내 말을 들은 남편은 사고 이후 처음으로 한껏 웃어 보였다. 눈가에 잡힌 자글자글한 주름이 진짜 웃음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아무런 희망도 없이 서서히 죽어가는 듯 보이던 남편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낭랑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따스하게 모인 아이들의 마음 덕에 우리 부부는 한참을 깔깔대며 웃을 수 있었다.
나를 살린 말 한마디.
그건 바로 사랑하는 마음이었다.
이곳이 지독한 태풍 속인지, 가혹한 지옥 불 위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 난국을 타개할 수 있도록 다시금 살아갈 용기를 준 건 사랑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 전했던 아이의 말 한마디였다. 그게 나와 남편을 살려낼 수 있었다. 여전히 나는 믿는다. 사랑은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게 만드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졌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