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부터 한번 해 볼까
'이상 기후'라는 말이 절로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삼십여 년을 살아오며 경험했던 첫눈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첫눈에 폭설이라니. 기후를 관장하는 신에게 특별한 감정의 변화라도 생긴 걸까 싶었다. 첫눈이 내리고 단 두 시간 만에 회사 모든 건물의 전등과 난방이 다 꺼져버렸다. 정전이 된 것이다. 폭설로 인한 사건 사고는 다음날까지도 계속되었다. 눈길로 인한 교통사고가 계속되자 방송에서는 연신 대중교통을 이용하라고 안내했다. 우습게도 우리 동네 도착 예정 버스는 없었다. 눈이 너무 와서 길이 미끄럽다는 이유였다. 결국 남편의 도움을 받아 차를 얻어 타고 출근했다. 눈길과 빙판길 위 목숨을 건 드라이브를 감행해야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첫눈의 폭설로 학교와 어린이집에서도 휴교와 휴원령이 떨어졌다. 갑작스럽게 아이들을 돌볼 사람이 필요해진 것이다. 딸내미를 출근시키기 위해 친정엄마가 급하게 휴무를 잡아야 했다. 버스가 없으니 그나마도 용인이 되는 듯 보였다. 첫눈이 몰고 온 폭설은 미치 폭탄과도 같았다. 우리 집 전체를 쥐고 흔들어 버리고야 말았다.
얼마 뒤 또 한 번 폭설이 내렸다. 아름답게만 보이던 새하얀 눈은 이젠 무섭게만 느껴졌다. 다시 만난 눈이 또 얼마나 많은 피해를 가지고 올까 심히 걱정스러웠다. 설 명절을 맞이하여 준비한 요리들을 두 손 가득 들고 왔어야 할 시어머니와 아가씨는 출발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나와 아이들은 그저 집 안에서 창문 밖을 쳐다보는 게 다였다. 하염없이 쌓여만 가는 눈이 대체 언제쯤 그칠까에 대한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거실에 있는 스피커에서 방송이 나왔다. 긴 명절로 인해 경비원들이 부족하니 입주민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눈을 쓸어 통행로를 만드는 일에 손을 보태 달라고. 잠시 후 할아버지 한 분이 1층 현관을 나섰다. 흠 없이 뽀얀 눈 위에 송송 발자국 구멍을 몇 개 내더니 현관 앞 수납함에서 밀대를 꺼내 어디론가 사라졌다. 아마 그곳에서부터 여기까지 눈을 밀고 치워가며 올 테지.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할아버지에게 마음이 빚이 생겨 버렸다. 나도 힘을 보태야 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일 나간 남편 탓에 홀로 아이 둘을 데리고 나가야 했기에 일찌감치 포기해 버렸다. 경비원들과 함께 눈을 치우며 봉사하고 있을 분들에게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잠시 후 딩동댕동 소리와 함께 또다시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여전히 눈을 치워 줄 인원이 부족하다며 일손을 보태길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여력이 되는 다른 누군가 부디 힘을 보태길 마음으로 바랄 뿐이었다. 그때였다. 엄마로 보이는 여성과 어린 남자아이 하나가 빼꼼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는 엄마 옆에 앉아 삽으로 눈을 퍼내며 장난을 치는 듯 보였고, 아이의 엄마는 밀대를 꺼내 1층 현관부터 쓰레기장 방향으로 눈을 밀어내고 있었다. 사람들이 편하게 통행할 수 있도록 보행자 도로를 내고 있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광경에 머리가 띵했다. 망치로 얻어맞은 듯 머리가 지끈지끈 울려왔다. 아이들이 있어서 할 수 없다는 것은 그저 핑계에 불과했다.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다 딱 걸려버린 난 어린아이처럼 아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을 것이다. 내 자신이 몹시도 부끄러웠다. 할 수 없던 것이 아니었다. 추운 날씨와 달리는 체력으로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나부터 한번 해 볼까.
엄마로서 어른으로서
좋은 본보기가 되어 보는 거야.
눈놀이를 하러 가자며 꼬드겼다면 분명 아이들은 신이 나서 나갈 채비를 했을 것이다. 눈을 치우고 길을 만들며 사회가 자신들을 필요로 했다는 것을, 나이와 무관하게 노력에 따라 사회에 양껏 기여할 수 있음을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줬더라면 어땠을까. 이미 지나버린 시간에 대한 미련이었고, 게을렀던 스스로에 대한 반성과 자책이었다. '나 하나쯤이야. 다른 누군가가 하겠지.'라는 마음이 모인다면 결코 좋은 세상은 만들어 갈 수 없다. 아이들이 살아갈 앞으로의 이곳은 지금 보다 조금은 더 나은 세상이어야 하기에 필요로 하는 곳에 적극적으로 손을 뻗고 힘을 보탤 수 있는 용기와 마음가짐으로 앞으로를 살아가야 하겠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나와 그 추운 아침부터 고생했을 천진난만했던 아이와 그의 강인한 엄마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득 담아 이 글을 바칩니다. 덕분에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있어 더는 나태해지지 않겠노라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