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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을 통해 얻은 행복

삶을 바꾸는 마음가짐

by 안개별 Jan 30. 2025


세상일이 언제 한 번 뜻대로 된 적이 있었나 싶은 추웠던 겨울밤이었다. 요리주점을 운영하는 남편은 새벽이 되어서야 퇴근을 했다. 누적된 피로로 몸이 너무 힘든 날을 제외하고는 으레 그래왔다.


삐삐삐삐-.

철컥.


번호키가 눌렸고 현관문이 벌컥 열렸다. 이어 현관 조명이 켜졌다. 센서 등은 어두컴컴한 남편의 얼굴을 밝게 비추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게 분명했다. 까무잡잡한 피부가 유독 더 시커멓게 느껴졌다. 훤칠한 키 덕에 언제나 높게만 느껴지던 남편의 어깨는 한없이 바닥을 향해 있었다.


"웬일로 일찍 왔네. 오늘도 고생 많았지."

"장사도 안되고 스트레스 받아서 그냥 왔어."


남편은 오늘 있었던 일들을 미주알고주알 꺼내가며 하소연을 했다. 침체된 경기와 함께 꽁꽁 얼어붙어버린 사람들의 지갑은 도통 열리지를 않았다. 수입은 몇 달째 계속 줄어왔고 결국 통장은 바닥을 보였다. 넉넉하지 못한 가계로 긴축 재정이 필요한 때가 또다시 찾아온 것이다. 어려웠던 시기는 많고 많았지만 새로운 국면에 들어설 때면 늘 지금, 현재가 가장 힘들었다. 그때마다 오늘이 가장 밑바닥일 거라며 더는 내려갈 길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희망찬 미래를 꿈꾸며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던 우리였지만 고난은 언제고 다시금 찾아왔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근데 지금 애들 학원은 어디어디 보내고 있어?"

"둘째는 어린이집만 다니고 있지. 첫째는 피아노 선생님 주 2회 오는 거 있고, 주 1회는 미술학원, 태권도는 매일 다니고 있어."

"그렇구나. 학원비부터 줄이는 게 맞을 것 같은데."


수영과 영어 학원을 끊은 지도 벌써 수개월이 지났다. 다시금 아이들의 교육비를 줄이자고 말하는 남편의 고충을 헤아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학원 다니는 걸 너무도 즐거워하는 첫째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려왔지만 지금은 남편의 말처럼 하는 게 맞겠다 싶었다. 바로 다음날부터 며칠에 걸쳐 아이를 살살 달래 가며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주 1회 다니는 미술만 제외하고 첫째의 학원을 모두 정리했다.



초등학교 1학년이던 첫째는 집과 학교만을 오갔다. 일찍 끝난 날은 시립도서관에서 책을 보다 오기도 했고,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와 저녁 준비를 돕기도 했다. 첫째는 엄마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 더없이 좋기만 하다고 했다. 주 3회 두 시간씩 영어 학원에 앉아 있는 게 고역이었는데, 마는 자유롭게 쉴 수 있게 해 준다며 엄마표 학원이 최고라는 말을 덧붙였다. 학원을 가지 않는 매일이 천국이라는 말과 함께. 공부하는 걸 제법 즐긴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엄마를 기쁘게 하기 위한 선의의 거짓말이었다. 늦게라도 아이의 마음을 솔직하게 들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러나 매일 놀릴 수만은 없었기에 학원을 다니던 때와 같이 방과 후 학습을 위한 스케줄을 짰다. 아직 혼자 주도적으로 학습할 줄 모르는 아이를 위해 그녀만의 튜터가 되어주기로 했다. 매일 우린 1~2시간씩 짜인 일정에 맞춰 학습했고, 남은 시간엔 자유롭게 책을 볼 수 있도록 두었다. 처음엔 아이에게 좋은 선생님이 되어줄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이 주는 고민 탓에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다양한 육아서들을 빌려와 읽고 또 읽어가며 어떤 선생님이 되어 주어야 할지에 대한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약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난 회사로 다시 돌아갔다. 학원을 모두 정리하고 매일의 일정에 따라 학습하는 훈련이 된 첫째는 2학년이 되어서는 스스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자기 주도적 학습을 제법 잘하는 학생이 된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건 학원 다니느라 바쁘고 시간이 없어 충분히 가지지 못했던 독서를 원 없이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지식의 함양이나 배움의 깊이 확장에 책이 아주 큰 조력자가 되어주었다. 평일에는 하루 온종일 책 속에 빠져 살았고, 주말이면 배경지식들을 직접 체험하고 확인하기 위한 활동들을 하러 다녔다. 책을 보는 시간이 또래들에 비해 월등히 많았기에 문해력, 어휘력, 글쓰기 능력이 절로 자라났다. 첫째가 성장하는 속도보다 몇 배는 빠르게 느껴졌다. 아이는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똑똑하다는 소리를 제일 많이 듣는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2년간 전국 독서감상문과 동시 창작 대회에서 수상할 수 있었고, 다독으로 시장상도 받을 수 있었다.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았기에 아이가 좋아하면서 잘할 수 있는 분야를 빠르게 찾아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사교육은 옳지 않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도리어 필자는 자라나는 꿈나무들에게 필수 불가결하게도 요구되는 것이 사교육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여건상 어쩔 수 없이 모든 학원들과의 이별을 해야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 선택이 아이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운이 좋았던 것이 아니라 내가 가졌던 마음가짐 덕이었을 것이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선의 방법을 찾으려고 했던 나의 노력이 가져다준 결과가 아니었을까. 



"불행을 대하는 마음의 자세를
조금만 바꾸어 보자.
진정한 행복이 느닷없이 찾아올 테니.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다고 느끼던 그때와 지금의 상황은 사실 별반 다르지가 않다. 그러나 감정에는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더는 내가 불행하지만은 않다고. 오히려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여긴다. 가족들을 위해 밤낮없이 돈을 버는 남편이 있고, 스스로 척척 언제나 똑 부러지는 첫째가 있고, 늘 고운 말과 바른 행동으로 기쁨과 행복을 주는 둘째가 있고, 그런 딸네 가족을 돕고자 다시 돌아와 준 엄마가 있기에 난 그리 척박한 생을 걷고 있지만은 않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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