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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내면의 힘

혼자라도 괜찮을 용기

by 안개별 Jan 23. 2025


아이를 낳고 쉼 없이 계속 일했다. 첫째를 낳고는 3개월, 둘째를 낳고는 4개월간 몸을 돌본 후 다시 회사로 돌아갔다. 이른 나이에 결혼했고, 아이도 늦지 않게 가진 터라 체력적으로 크게 힘들지는 않았다. 좋은 점도 많았다. 마치 지난 금요일까지 근무하고 차주 월요일에 출근한 보통의 직장인처럼 일할 수 있었고, 복직일이 정해져 있었기에 디데이를 세어가며 다이어트에도 성공할 수 있었다. 돈을 벌기 위해 빠른 복직을 결정했는데, 불은 몸에 맞는 옷을 다시 사야 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친정 엄마에게 아이를 맡기고 매일 1시간씩 유산소 운동을 했고 2개월 만에 처녀 시절의 몸무게로 돌아갈 수 있었다.


동네 유치원 추첨에 모두 떨어진 첫째는 옆 동네 유치원에 입학했다. 유치원이 멀기도 했고 일이 바빴던 탓에 친구를 만들어주는 엄마가 되어주지는 못했다. 엄마들은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삼삼오오 모임을 가진다고 들었지만 나에게는 그럴 여력이 없었다. 그럼에도 사교성 좋은 첫째는 친구에게 먼저 다가갈 줄 알았고 두루두루 친구를 사귈 수 있었다. 어린이집을 건너뛴 탓에 가족 외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어지간히 좋았던 모양이었다.


문제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였다. 그동안 마주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불현듯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학기 초, 같은 유치원을 졸업한 아이들끼리 혹은 같은 아파트 단지 안에 사는 이미 왕래가 잦은 친구들끼리 무리 지어 놀이하는 것이 당연했다.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어 다가가면 그들은 "너랑 놀기 싫어." 등의 말로 확실하게 거절의 의사를 표현했다. 결국 첫째는 쉬는 시간과 점심 시간에 혼자서 놀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건 바로 독서였고 책이 그녀의 친구가 되어주었다. 돌이켜보면 상상 속 친구를 불러 놀이했던 것도 아마도 이런 이유에서가 아니었을까 싶다. 첫째의 이야기를 듣고 엄마로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담임선생님과의 상견례 날, 번쩍 손을 들고 반대표를 하겠다고 했다. 솔선수범 하는 걸 좋아하기도 했고 엄마들을 두루 알아두면 아이의 친구 관계에도 도움이 될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다들 공사다망했고, 그들만의 커뮤니티에 나를 들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이와 친하게 지낸다는 친구들의 엄마들에게 돌아가며 연락을 취해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같았다. 그날은 시간이 안된다고 했다. 그러나 다른 일자를 확인하고 약속을 잡을 생각은 추호도 없어 보였다. 첫째의 친구를 만들어주려는 노력은 결국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1학년 공개 수업 날이었다. 유치원을 다니던 그 시절에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공개 수업이 단 한 번도 진행된 적이 없었다. 그런 이유로 아이가 수업 시간에 집중은 잘하는지, 쉬는 시간에는 무얼 하며 보내는지가 너무도 궁금했다. 다행스럽게도 반듯한 자세로 앉아 선생님 말에 내내 집중했고, 크고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발표도 제법 잘했다. 밖에 내놓은 아이의 모습은 제법 그럴싸했다. 내심 가슴이 벅차올랐고 그녀가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이어지는 쉬는 시간, 다들 하나둘 그룹을 지어 모이더니 보드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혼자 시간을 보내는 친구는 내 아이밖에 없었다. 하교 후 아이를 붙들고 조심히 물었다.


"나나는 쉬는 시간에 책 보고 있던데, 무슨 책을 보고 있었어?"

"엄마가 지난주에 사 준 소공녀 보고 있었어. 엄마도 이거 봤어?"

"어릴 때 봤는데 잘 기억이 안 나네. 다 보면 엄마도 빌려줘. 꼭 볼게. 근데 쉬는 시간마저 책을 보며 보내는 거 괜찮아? 나나가 원해서 하는 일인지가 궁금해."

"엄마, 그 책 진짜 재미있어. 벌써 5번째 보고 있어."

"쉬는 시간까지 책을 보면 좀 힘들지 않아? 그냥 좀 쉬면 어때?"

"친구들이랑 노는 것보다 책 보는 게 좋은 걸."


몇 번을 더 물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변함없었다. 마음이 맞지 않은 친구와 억지로 노는 것보다는 좋아하는 책을 꺼내 읽는 게 더 좋다는 아이의 대답이 썩 어른스럽게 느껴졌다. 더는 친구 관계로 인해 고민하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지 않았다. 그렇기에 엄마인 나도 아이를 믿어 주기로 했다. 혼자인 아이를 더는 안쓰럽게 보지 않고자 노력했고, 되려 그 시간들을 값지게 활용하고 온 것에 칭찬을 더했다. 타의에 의해 혼자가 된 후 이를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던 나의 학창 시절과는 다른 그녀의 모습이 정말이지 멋지게만 느껴졌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스스로를 탓하기보다 돌파구를 찾기 위해 다각도로 고민을 하고 조언을 구하는 그런 삶을 살아 보고 싶다고 잠시 생각해 보았다.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솔직하게 표현할 줄 알았기에 첫째와의 대화는 언제나 유쾌했고 즐거웠다. 그런 이유로 아이의 생각과 마음을 존중하며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잘 알지 못하는 부분들은 각자 책을 보며 찾는 시간을 가졌고, 이후 다시 모여 습득한 지식들을 바탕으로 토론을 했다. 서로에게 주고받는 존중과 칭찬이 이를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을 터였다. 어린 나이였지만 홀로 할 수 있는 사색의 시간을 자주 만들어 주었던 것이 혼자라도 괜찮을 용기가 되어 주었을 것이다.



사색의 시간,
고요함 속에서 발견하는
진정한 나


고독함 속에서 넓고 깊게 생각을 뻗어 나갈 수 있는 훈련을 했기에 주변의 환경에 쉽게 흔들리지 않을 단단한 내면의 힘이 그녀에게 주어질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힘은 느닷없이 직면하게 될 앞으로의 다양한 문제들을 풀어갈 용기가 되어 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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