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잘했어요
타인에게는 관대한 말과 행동을 한없이 베풀었지만 스스로에게 더없이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곤 했다.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가 곧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줄 것이라 생각했다. 밖으로 비춰지는 나의 모습은 언제나 올바르고 완벽해야 했다. 스스로를 돌보지 않았던 탓에 내면 아이는 올바르게 성숙하지 못했고, 내실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 실속 없는 어른으로 커 버렸다. 입 밖으로 내뱉던 수많았던 칭찬들 가운데 단 하나라도 스스로를 위해 꺼내본 적이 과연 있었던가.
격려와 응원이 되는 칭찬의 말을 자기 자신에게 건넬 줄 아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되려 스스로를 객관적이고 보다 냉정하게 들여다보고 평가하는 것에 더 익숙하지 않을까. 왜 우리는 언제나 열심히, 최선을 다하길 강요받으며 살아왔을까.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남들보다 앞서 가기 위해 이리도 치열하게 살아야만 했던 걸까. 영원한 것은 없기에 결국 태어나기 전으로 돌아가야 하는 짧은 생을 살고 있음에도 왜 그리 스스로에게 혹독해야 했을까.
살아가며 다른 누군가를 응원해야 하는 순간들을 참으로 자주 마주했다. 반장 선거에 후보자들이 나오면 그들의 공약을 듣고 마음에 둔 친구들을 응원했고, 체육대회 날 계주를 뛰는 선수들에게 우레와 같은 함성을 쏟아내며 목청 높여 격려했다. 동호회와 직장 선후배들의 별거 아닌 농담에 물개 박수를 치며 격한 리액션을 보였고, 명사들의 강연을 들을 때면 그들 삶에 대한 아낌없는 존경과 찬사를 표현했다. 늘상 내가 아닌 타인에게만 그랬다.
여유로웠던 주말 저녁 늦은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도서관을 다녀온 게 다였던 하루였다. 냉장고에서 밑반찬을 꺼낸 후 정성스럽게 볶아낸 소불고기를 식탁에 올렸다. 밥 먹으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고기 냄새를 맡은 아이들이 식탁 주변으로 모였고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그들은 배가 고팠는지 빠르게 식판을 비워냈다.
"우와, 다들 왜 이렇게들 잘 먹지? 엄마 기분이 너무 좋은 걸! 맛있게 먹어줘서 고마워."
엄마의 칭찬에 어깨가 으쓱해진 둘째는 싱글벙글 한참을 웃더니 의자에서 내려와 내 등 뒤로 걸어왔다.
"엄마, 참 잘했어요."
아이는 내 등을 토닥토닥 손바닥으로 서너 번 두드렸다. 그리고선 자신의 방으로 가 장난감을 꺼내어 놀기 시작했다. 5살 아이에게 칭찬을 받았다. 맛있는 저녁을 준비한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이자 힘들었을 엄마를 격려하는 말이었다. 하루를 또다시 잘 살아낸 것에 대한 위로였고, 앞으로도 잘할 거라는 믿음 섞인 응원처럼 들려왔다.
작년 겨울 처음으로 거울 앞의 나에게 말을 걸었다. 먼저 그동안의 안부를 물었다. 스스로를 홀대한 것에 사과를 건넸고 이어 칭찬의 메시지를 던졌다. 불편했고 낯설었지만 배시시 웃음이 났다.
"그동안 고생 많았지. 사실 다 알고 있었어. 모른 척해서 미안. 용기가 없었어."
"잘 살아왔어, 지금껏. 아주 많이."
자신을 마주한 채 스스로에게 건네는 칭찬의 말이 처음부터 제대로 나올 리가 없었다. 차리리 거울이 없는 곳에서 시도할 걸 하는 후회도 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제법 칭찬에 도가 트이기 시작했다.
"오늘 많이 힘들었지. 회사 일이 다 그렇지 뭐. 그래서 네 자리도 주고 월급도 주는 것 아니겠어? 네가 아니라 상식 없이 말과 행동을 내뱉은 그 사람이 잘못된 거야. 휘둘리지 않고 철저하게 이성적으로 행동한 것 칭찬해. 정말 잘했어."
참 잘했어요.
참 잘했다는 그 말이 얼마나 큰 격려와 응원이 되는지 이제는 안다. 초등학교 때 받았던 노트 속 '참 잘했어요' 도장이 어떤 의미였는지, 선생님이 어떤 마음으로 그걸 찍고 또 찍었던 건지. 그래서 오늘도 난 나에게 속삭인다. 너 참 잘했다고. 오늘도 참 잘 살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