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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벽한 가족 Jan 17. 2022

나는 '부모'로 도망쳤다


우리네 수명을 100라고 가정해보자. 초등학교 6년,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각 3년, 대학교는 2~4년. 기한이 꽤 가시적이다. 모두를 합하면 길지만, 각각의 기간으로 보면 그리 부담스러운 기간은 아니다.   

   

사회생활은 어떤가. 젊음이 남아있는 동안은 사실상 무한대다. 슬럼프에 빠질 땐 10kg의 쌀가마니를 이고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걷는 기분도 든다. 패기 넘치던 직장인들도 어느 순간부터는 마지 못해서’, ‘의무감으로 출근을 한다.     


나의 경우 약 10년을 담당한 직무(홍보)는 적성에 맞는 편이었다. 글 쓰는 것도, 트렌드를 쫓는 것도 즐겼다. 일하고 밥 먹는 시간 빼고는 각종 커뮤니티를 섭렵하고 실시간 검색어를 날마다 훑어보던 ‘스몸비(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길을 걷는 사람들, 스마트폰과 좀비의 합성어)’인 나는 뉴미디어 담당자로 꽤 잘 맞았다. 엄청 외향적이진 않지만 외부 고객을 상대하는 일도 나름대로 즐거웠다.     



어느 순간 그 빠름이 버거웠다. 9년 넘도록 거의 매일같이 빠르고 신속하게 보도자료와 제안서를 포함한 갖가지 텍스트를 쓰다 보니 퇴근하면 정작 자신의 블로그에 글 한 줄 적을 힘도 없었다. 아이디어도체력도마음도 모두 바닥이 났다. 그렇게 나는 9년 6개월의 직장 생활을 잠시 접고 육아 휴직에 들어갔다.     


부모가 된 이유는 사람마다 각양각색이다. 잠깐이나마 업무로부터 도피해보겠다고 부모가 된 나 같은 사람도 있고, 원치 않은 임신의 결과일 수도 있다. 양가 어른들의 성화에 못 이겨 부모가 되기도 하고, 나이가 더 들면 출산이 어려울까 부랴부랴 부모의 길을 택한 것일 수도 있다.     


위 사람들은 모두 부모로서 함량 미달일까? 아동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다. 태어난 아이는 자신을 ’ 낳았는지보다 어떻게’ 키워줄 것인지가 훨씬 중요하다. 아니, '어떻게'가 전부다.

  

평생을 고대하여 최상의 환경을 조성하고 아이를 낳은 부모가 있다고 치자. 자녀를 실제 양육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기대와 다르다고 아이의 몸과 마음에 상처를 준다면 그것은 옳지 않다. 학대할 거면 낳지나 말지’, ‘부모가 아닌 악마라고 지탄받는 아동학대 가해 부모 중에선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이들도 있지만, 완벽한 부모를 꿈꾸며 자녀를 학수고대하던 사람도 있다.     



꾀를 부린 덕분에 내 인생의 난이도는 두 배가 됐다. 지금은 일도, 육아도 모두 잘 해내야 한다(OMG). 난이도를 저울질하자면 일보단 육아가 내겐 조금 더 어려운 과업이다. 일은 욕심내서 열심히 하면 대부분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가지만, 사람을 키우는 일은 그렇지 않다. ()이 인간에게 아무리 발버둥 쳐도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걸 가르쳐주기 위해 아이를 만들었다는 격언은 생각할수록 명언이다.    

 

혹시 ‘다소 어른스럽지 못한’ 이유로 부모가 되었는가? 괜찮다. 아이들은 자신을 낳은 이유에 대해 묻지 않는다(훗날 이럴 거면 왜 낳았어!”라고 소리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일을 예방하기 위해 지금 당신은 이 글을 보고 있다.) 아이의 눈을 바라보고 매 순간 생각하자. 아이를 위해 어떤 태도를 보이고어떻게 말할 것인지. 그것이 부모의 자격을 만든다. ■          


         



[초록우산이 당신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

1. 무엇이 ‘좋은 부모’를 만든다고 생각하나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2. 나는 위 ‘1’의 요건들을 충분히 갖춘 부모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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