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티비’라는 말이 유행이다. 부모들의 의견은 분분하다. “그게 대체 무슨 뜻이죠”, “저는 이제 틀렸어요. 도저히 못 따라가겠음”, “문상(문화상품권)조차 최근에 알았는데….” 재밌다는 의견도 있고,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도 있다.
▲ "어쩔티비"에 대응하는 다양한 방법 중에는 "저쩔 람보르기니"가 있다(유튜브 채널 '키즐' 영상 中)
2000년 전후는 바야흐로 닷컴버블의 시대였다. 가정마다 PC가 필수품처럼 보급되고, 국내 ‘IT공룡’들이 꿈틀대던 격변의 시기다. 학교 수업시간에 선생님은 ‘메일 계정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셨다. ‘이니셜+전화번호’를 조합하거나 좋아하는 아이돌그룹 이름을 넣어 각자 개성 넘치는 아이디를 만들었다. “뭐해”, “하이”같은 짧은 대화도 이메일로 주고받았다. 다이어리로 ‘단체 펜팔’을 돌려쓰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문화 혁명’이라 칭할 만하다. 이 글을 쓰고 있자니 문득 당시의 내가 궁금해졌다.
보낸이: ┗♡뚜진ⓔ눙딱㉧ㅣ㉧ㅑ~!!♡
날짜: 2001/09/01[토] 22:56
제목: 오호라~★☆
다음주가 씨에이넹...
왜 ⓒ.ⓐ눙 한㉢ㅏ㉣ㅐ 한번바께
안하듸??⊙_⊙?? 뎡말 짜둥나..━★
일주일㉧ㅔ 한번띡 하믄 어디가 덧나나??
짱나 ★ 굼 난 이만쑤께..열한시야.
.... 퀴즈퀴즈 ㉭ㅏ㉢ㅏ㉥ㅓ닌깐...ㅋ ㅔㅋ ㅔ^^;;;
굼 이만~
*CA: Club Activity의 약자로 '동아리 활동'을 의미한다. 축구, 배드민턴, 영화관람, 제과제빵 등 정규 교과목 이외의 다양한 활동이 있었다.
‘누구냐, 넌….’ 사회복지사로서 내 장점은‘아이 시절의 마음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라고 여겨왔는데 20년 전 ‘보낸메일함’을 보고 있자니 자신감을 고수하기는커녕 손발이 사라지고 말았다. 선호하는 특수문자가 어떤 타입인지에 차이가 있을 뿐 친구들로부터 받은 메일들 역시 ‘세심한 해독’을 필요로 했다. 밀레니얼 시대를 여는 중1들은 ‘기호집착증’들이었다!
초등학생, 특히 고학년에 접어들며 또래집단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증가한다. 이 때의 아이들은 하루 평균 46%의 시간을 또래집단과 함께하고, 어른과 함께 있는 시간은 불과 15%에 그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또래문화는 아이들의 생활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 친구들 사이에서 소외되는 것은 무척 불안한 일이다. 공유되는 문화 속에서 서로를 모방하며 아이들은 동질감과 안정감을 느낀다. 아이들 입장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뒤쳐지는 것은 곧 '사회에서 도태되는 것'이다.
유행어나 신조어 역시 또래문화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20년 전, 해독할 수 없는 외계어를 남발하던 나는 성인이 되어 브런치 작가로 활동 중이다. ‘홀리몰리(Holymoly)’에 과카몰리를 붙여 쓰든, ‘어쩔티비’를 ‘어쩔냉장고’, ‘어쩔청소기’로 받아치든,괜찮다. 결국 미래 어느 시점에는 아이들에게도이불킥을 부르는 기억이 될 것이다.
나는 요즘 핫하다는 ‘스우파’나 ‘리정’을 알지 못한다. 기성세대가 되어버린 마당에 여기서 무언가를 더 말해봐야 관대한 척 겉멋만 든 사람이 될까 두렵다. 어차피 꼰대인 거, 좀‘너그러운 꼰대’가 되고 싶다. 상대를 심각하게 비난하는 의미가 아니라면 요즘 신조어 앞에 ‘라떼’를 기억하며 웃어넘길 수 있는 꼰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