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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더하기 Apr 03. 2022

단골집 추가요

눈물로 잡은 간자미

 


무더울 것으로 생각하고 나섰는데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불어준다. 25년째 친구 사이로 지내고 있는 우리 셋은 몇 번 가서 먹었던 당진 안섬포구에  있는 식당으로 갔다. 해물칼국수를 전문으로 팔고 있는 여러 식당이 모여 있는 곳 중이 한 곳이다. 우리가 간 날은 일요일 늦은 오후였는데 '개인 사정으로 인한 휴업'이라는 문구를 매직으로 쓴 종이가 식당의 허름한 출입문에 더 허름하게 붙어있다. 하는 수 없다른 식당으로 발길을 돌렸다. 우리는 수족관에 있는 커다란 문어 한 마리를 넣어서 칼국수를 끓여 달라고 했고, 간자미 무침도 추가로 주문했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미어캣처럼 몸을 곧추세우고 가게를 두리번거리며 살피었다. 식당 안에는 제법 많은 손님이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정수기 앞에 앉아서 팔을 쭉 뻗어 물통에 물을 채우는 주인으로 보이는 할아버지가 보였다. 허리 보호대를 있는 힘껏 조여 매서 배가 부풀대로 부푼 복어 같았다. 그 채운  물을 일어서지 않고 엉덩이를 밀면서 냉장고 앞으로 가서 차곡차곡 넣었다. 혼자 속으로 '저렇게 힘들면 집에서 쉬시지 왜 나오셨데.' 하면서 주방 쪽으로 눈을 돌렸다. 주방에 할머니 말고는 없었는데 오래된 연륜이 느껴지듯 당황하는 모습은 느껴지지 않았다. 칼국수를 끓일 물이 데워지는 동안 회를 무치고, 회를 무치고 나면 반찬을 접시에 담아 쟁반에 올렸다. 할머니가 주방에서 다 됐다는 신호를 보내자 물통을 냉장고에 넣던 할아버지가 힘겹게 일어났다. 한 손으로 허리를 잡고 한 손으로는 간자미 무침이 푸짐하게 올려진 접시를 들고 우리 쪽으로 와서 내가 얼른 일어나서 받아와 상에 놓았다.


"처음 오신 분들 같네. 간자미 무침 다 먹으면 칼국수 나오유. 내가 허리가 안 좋아서......"


본인 모습이 미안했는지 허리 통증에 대세 말씀을 해주셨다. 할아버지는 몇 년 전에 허리 디스크로 시술을 했는데 다시 재발해 일주일 전에 시술을 다시 했다고 하셨다. 주치의는 6개월간 아무 일도 하지 말고 휴식을 취하라고 했단다. 그러나 식당에서 고개만 들면 내다 보이는 배를 어찌 놀리겠느냐면서 오늘도 새벽에 간자미를 잡으로 바다에 나갔었단다. 끝도 안 보이는 바다에서 혼자 배를 타고 나가 간자미를 잡아 올리는 데 허리가 너무 아파서 바다가 떠나가라 소리 내면서 우셨단다. 바다에 소리를 지르고 있는 자신이 서러워 더 크게 우셨다면서 웃으신다. 그렇게 잡아 온 간자미로 할머니가 솜씨를 내고 찾아온 단골손님들이 먹는 모습을 보면 그 아팠던 순간을 잊게 한단다. 배를 놀리는 게 아까운 게 아니라 단골손님들에게 손수 잡은 간자미로 무친 것을 맛보게 하고 싶은 마음이 할아버지를 바다에 나가게 한 거 같다. 그때 조금 한가해졌는지 주방에 계시던 할머니가 오셨다.


"우리 식당은 거의 단골손님 이유."


그래서 우리가 처음 왔는지 단번에 알아보셨단다. 할머니가 손수 담근 매실액으로 단맛을 내고 직접 농사지은 갖은 싱싱한 채소를 더하고 고춧가루로 곱게 색을 입힌 간자미 무침은 젓가락을 쉴 새 없게 만드는 맛이었다. 당진 시내에 상가건물도 있고 이제 살 걱정 안 해도 된다고 자녀들은 식당을 그만두라고 성화지만 찾아주는 손님들을 돌려보낼 수 없기에 죽기 전까지는 해야 한단다. 자긍심이 멋지시다. '저렇게 힘들면 집에서 쉬시지 왜 나오셨데.' 잠시 가졌던 속마음이 죄송스럽다.


"두 분 건강하셔야겠어요. 그만두시면 이 맛있는 간자미 무침 못 먹잖아요. 다른 사람들도 맛봐야지요."


내 말에 두 분이 활짝 웃으시는 얼굴이 오늘 당진 안섬포구 바람처럼 시원하다.

단골집이 새로 생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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