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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더하기 Oct 16. 2023

옷의 시간



큰아이가 예비군 훈련이 있다고  군복을 가지러 집에 왔다.

논산에서 5주간의 군사훈련을 마치던 날 면회를 갔을 때 군복을 처음 입은 모습을 보고 늠름하기보다는 낯설고 한없이 안쓰럽기만 했던 기억이다. 어설픈 옷매무새, 어설픈 경례에 눈물이 고여 제대로 볼 수조차 없었던 날이었다.

“군복을 벗으면 안 돼?”
나는 면회를 위해 잡았던 펜션에서 갈아입을 옷을 건네며 '꼴 보기 싫은 군복'을 어서 벗기를 바랐다. 옷걸이에 걸려 벽에 걸린 군복이 나의 사랑하는 아들을 마치 가로채가 돌려주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 어울리지 않던 군복은 몇 번의 면회를 갈 때마다 제법 잘 어울리네로 바뀌고 있었다.  제대할 무렵에는 휴가를 나와 사복으로 갈아입은 모습이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변해 있었다. 나는 변한 모습에 익숙해졌었다. 제대를 하면 카키색은 쳐다도 보지 않겠다고 했던 아이는 그 해 겨울 아이러니하게도 카키색 파카를 사서 입었었다.


군복을 가지러 온 모습을 보니 우리가 옷과 함께 성장하고 있었다는 것이 새삼 느껴졌다.

아이가 처음 태어났을 때 손바닥 만하던 배냇저고리를 입고 우주처럼 크게 우리에게 자리를 잡았었다.

(가장 후회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배냇저고리를 하나라도 남겨 뒀을걸 하는 것이다. 그놈의 이사를 핑계로 삼아 본다)

주황색 단복을 입고 아파트 놀이터를 가로질러 어린이집으로 달려가고, 손등을 덮을 정도로 크게 교복을 맞추면서 이만큼 키가 크길 소망했었다. 의무로 입었던 군복도 옷걸이에 걸려 가끔만 나오면 되었다. 다른 세상으로 향해 가기 위해 면접날 입었던 양복은 아이에서 어른이 된 것 같았다. 그렇게 옷이 바뀌면서 아이와 나는 성장하고 있었다. 좋은 옷을 입고 좋을 일들만 가득하길 바라는 것이 엄마들의 희망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어떤 옷을 입든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엄마는 감사하다. 옷으로 이 많은 것들이 정리되다니 참으로 옷에는 많은 힘이 있는 것 같다.


"이 군복도 이제 몇 번만 더 입으면 끝나요."

옷이 알려주는 시간은 참으로 정확하고 정직하다.

다시 군복은 며칠 후에 좁은 원룸에 둘 수 없어 예비군 훈련이 끝나면 집으로 가지고 올 것이다. 옷을 가지고 오는 날에는 편한 옷을 입고 소주를 한 잔 하며 지난 옷의 시간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겠다.


'싫어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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