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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괴설 Apr 01. 2024

[화조풍월 연작 4] 月 : 달을 안고 싶은 소년

독점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관하여

화조풍월 (花鳥風月)

명사  |  꽃과 새와 바람과 달이라는 뜻으로, 천지간의 아름다운 경치를 이르는 말.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일반적으로 풍류를 일컫는 말이며, 혹은 아름다움의 대명사로 쓰인다.



      하루 중 소년의 제일 큰 낙은 높은 언덕 위로 올라가 밤하늘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동네에서 제일 높은 언덕이라 올라가는 것도 꽤나 일이었다. 그래도 소년은 숨을 몰아쉬며 언덕을 달려올라 갔다. 그 언덕 위로 올라가면 달이 보였기 때문이다. 동네에서 제일 높은 언덕, 그래서 소년만이 올라갔고, 소년만이 늘 달의 아름다움을 감상했다. 그 사실이 소년의 자부심이었다. 아랫동네 사는 친구는 달이 손톱 같다가 동그래지기도 한다는 사실 자체를 모를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언덕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걸 모르는 사람도 있어? 소년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 봤다. 뒤에 있던 것은 여우였다. 나도 아는 건데. 소년은 당황하며 대답했다. 저 달은 나만 아는 게 아니었어? 여우는 그 말을 듣고 소년을 비웃었다. 너 정말 순진하구나? 굴속의 토끼도, 연못의 물고기들도, 심지어 기어다니는 뱀들도 달을 알고 있어. 소년은 여우를 노려보며 화를 냈다. 아니야, 저 달은 내 거야. 나만 알고 나만 가질 거야. 그러자 여우는 콧방귀를 뀌며 돌아섰다. 보름달이 뜨면 달한테 말을 걸 수 있어. 그때 달이 누구 거인지 물어보지 그래? 소년은 그 자리에서 화를 삭이며 씩씩댔다. 그러자 여우가 재밌다는 듯 더 소년을 놀리기 시작했다. 설마 말을 걸 수 있다는 것도 몰랐던 건 아니지? 아랫동네 사는 애도 데려와서 물어봐. 어쩌면 걔는 알고 있었을 지도 모르잖아? 그러고선 여우는 재빨리 언덕을 내려갔다.

      소년의 속은 부글부글 끓었다. 보름날 달에게 말을 걸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도 화가 났지만, 자기만이 달을 보고 있던 게 아니라는 사실이 소년의 심장을 찔렀다. 그리고 소년은 정말 아랫동네 친구도 달을 알게 될까 봐 불안해졌다.

      보름날 밤, 소년은 굳은 표정으로 언덕을 올랐다. 평소 같은 기대의 숨이 아닌, 긴장의 숨을 뱉으며 정상에 오른 소년의 눈앞에는 왠지 더 둥글고 커다란 달이 보였다. 보름달의 아름다움에 넋을 놓기도 전에 소년은 서둘러 달에게 말을 걸었다. 달님은 저만의 것이 아니었나요? 그러자 보름달이 차분히 대답했다. 나는 하늘 높은 곳에서 지구의 밤을 보내는 것들을 모두 비추고 있어. 나는 그들 모두의 것이야. 소년은 재차 질문했다. 그럼 달님은 제 것 만이 아니었군요. 보름달은 다시 한번 차분하게 대답했다. 지금 내가 너를 비추고 있으니 너의 것도 맞단다. 그러나 소년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나만 갖는 달이 아니라면 아무 의미 없어.

      슬퍼하는 소년을 본 달은 조용히 말을 꺼냈다. 그럼 내가 특별히 너에게 무엇을 해주면 좋겠니. 그러자 소년은 대답했다. 저만의 달이 되어주세요. 그러나 달은 단호하게 설명했다. 안돼. 지구의 밤은 너무 어두워. 나의 빛이 필요한 것들이 너무 많아. 소년은 달의 대답을 듣고 고개를 숙였다.

      잠깐의 시간이 지난 뒤, 소년이 다시 달에게 말을 걸었다. 그럼 안아주세요. 잠깐만이라도 저만의 것이었으면 좋겠어요. 달은 그러겠노라 했다. 언덕 위에서 소년이 환하게 웃으며 달을 향해 팔을 벌렸다. 달도 소년을 향해 조금씩 움직였다. 둘 사이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하늘을 달이 가득 채웠다. 그리고 마침내 둘은 서로를 안았다. 그렇게 소년도, 달도, 지구도 끝이 났다. 소년은 끝까지 달을 향한 웃음을 잃지 않았다. 애석하게도 소년은 자신과 달 사이의 거대한 산이나 운석이나 인공위성의 존재는 몰랐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달은 소년을 제일 먼저 안은 것도 아니었다.





에필로그 - 연작을 마치며


이 단편 소설 연작은 탐미주의를 주제로 하여 기획되었고,

2021년 여름부터 시작해 지금 드디어 끝이 났다.

원래는 4가지 주제 모두 그림을 그리고자 했으나... 귀찮은 나머지 그냥 글만 썼다.

그마저도 귀찮아서 이제서야 끝이났다.


각자 가지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잘 간직하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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