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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 Oct 19. 2023

먹빛, 그 한없는 포용

녹원 최연옥 개인전


먹빛, 그 한없는 포용

장소ㅣ충북문화관 숲속갤러리 2층

일시ㅣ2023년 10월 24일-29일, 10시-18시

초대ㅣ2023년 10월 25일 16시


녹원 최연옥의 개인전 <먹빛, 그 한 없는 포용>전은 예순 중반에 이른 작가의 첫 개인전으로 문인화가라는 이름으로 걸어온 삶의 궤적을 작품을 통해 회고한다. 


고향 녹도의 모습을 그려낸 《기다림》은 바다를 바라보며 어머니가 돌아오는 배를 기다렸던 유년시절의 기억을 담아냈다. 《묵란》과 《묵송》은 성장기 섬에서 본 숲의 모습을 떠올리며 구성했다. 6m의 긴 화폭으로 이어진 《묵란》은 태풍이 지난 뒤 마주했던 고향의 모습이면서 작가가 스스로의 삶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장면이기도 하다. 유년시절을 반추한 《기다림》과 현재의 모습을 그려낸 《묵란》 사이의 시간들은 사군자(매난국죽)를 포함하여 게, 연꽃 등의 문인화로 만날 수 있다. 


문인화가이자 수필가인 작가는 전통적인 도상들이 갖고 있는 의미와 주제를 바탕으로 개인적인 삶의 이야기를 작업에 녹여냈다. 문인화가에게 요구되었던 시서화詩書畵 라는 오랜 가치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화하고 표현해냈다. 이번 전시는 20여점의 작품이 작가의 글과 함께 전시되어 작가의 삶의 여정을 따라 감상의 폭을 넓힐 수 있다.

기다림 – 파랑에 서다.


바위로 이루어진 섬. 내가 태어난 곳이 그랬다.

바위섬. 그 섬의 가장 높다란 꼭대기에 우리 집은 있었다. 나는 엄마가 육지로 오일장에 나가면 바다를 향해 기도했다. 제발 비가 내리지 말기를, 제발 바람이 불지 않기를. 하지만 한겨울엔 나의 기도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언니 오빠들이 모두 육지로 떠난 집엔 난 늘 혼자였다. 견디기 힘든 기다림의 고통은 이른 아침 오서산 꼭대기에서 붉은 태양이 떠오르고 바다새들이 우리집 마당을 향해 날아오를 때 비로소 엄마가 오실 수 있었다.

윤슬이 반짝이는 수평선 저 끝으로 까만 점 하나가 나타나고 그 점이 엄마를 태운 배라는 것이 확실해질 무렵이면 오서산 붉은 태양은 어느새 우리 집 토방 마루에 걸리고 양손에 커다란 보따리를 들고 엄마가 배에서 내렸다.

그 기다림은 내가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육지로 나오면서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더 진한 기다림과 그리움으로 이어졌다. 요즘처럼 교통수단이 편리하던 시절이 아니어서 쉽게 오갈 수 없는 고향은 너무 멀고 아득했다. 바다를 보고 기다리던 때와는 또 다른 차원의 기다림과 그리움이었다.

그러나 살아있음은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전제로 하지만 세월이 흘러 사무치게 보고 싶었던 엄마는 이제 요르단강 저편으로 가셨고 지금 나는 수만 리 이 땅의 반대편에 있는 딸을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다.

엄마를 기다리던 딸로서의 감정과 딸을 기다리는 엄마의 감정이 사뭇 다른 지금 난 수십 년 전 엄마의 절절한 마음을 곱씹으며 마음 속에 일렁이는 파랑을 마주하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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