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하나 보고 결혼한 여자의 지금 --- 어떻게 해야 하나
1월 어느 주말, 몇 번이고 반복되어온 그런 날이었다.
아이들 밥을 먹이고 생선을 굽는데,
갑자기 목까지 심장이 뛰어 오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숨이 차고 머리가 핑 돌기에 일단 누웠다.
누워있어도 나아지지가 않아 남편에게 "가슴이 답답하다"고 이야기했다.
남편은 놀라서 와서 지켜보더니 곧 다시 제 할일을 했다. (휴대폰을 들고 게임을 했거나 영상을 봤겠지)
한시간이 지나도 불편함과 갑갑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휴대폰 삼매경에 빠져 있는 남편에게 "병원에 가야겠다"고 했다.
그제서야 남편은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친정 부모님께 연락해 아이들을 부탁하고 남편과 응급실로 향했다.
동네 병원 응급실에 가니 3시간 기다려야 했다. 가슴이 답답하다고 해도 되돌아오는 답은 똑같았다.
서울대병원으로 가자고 했다.
내가 아는 젤 좋은 병원은 서울대병원이었기에 그리로 갔다. 숨은 계속 찼고, 차에서도 거의 누워있었다.
서울대병원 응급실에 가자 '가슴 통증이 있다면 알려달라'는 문구가 있었다.
응급실 문 옆의 공간에 간호사 같은 분이 있는 공간으로 먼저 들어가자
손가락 끝에 뭔가르 찝고
혈압을 쟀다.
기계가 삐빕삐비 소리를 냈다.
몇번을 재더니 전화기로 뭐라고 하더니 나는 바로 처치실로 들어갔다.
눕자마자 (아마도) 의료진들이 몰려왔다.
부끄러운 뱃살과 가슴팍을 모두 열고 이거저거 꼽고 팔에는 주사바늗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참 많았다.
"약이 들어가면 불편할 거예요. 심장이 쿵 떨어지는 느낌이 날거예요."
아데노신.
바퀴벌레도 위급상황에는 아이큐가 200이 된다고 했지.
생전 처음 들어보는 약의 이름이 귀에 꽃혔다.
등도 어깻죽지도 모두 뻐근한 느낌이 들면서 심박수가 내려갔다.
...
의사선생님이 뭐라고 설명해주었는데,
'심장 수술을 해야한다'는 말 다음부터 귀가 먹먹해 잘 들리지 않았다.
눈물만 났다.
커피를 아무리 마셔도 꿀잠 자던 내가,
술과 그리도 다정하던 내가,
어쩌다 이런 말도 안되는 병이 생겼을까.
.....그 주에 시댁 제사가 있었다.
나는 여러가지 이유로 시댁이 불편한데
...... 남편에게 말해봐야 싸움만 되고
나도 살아야겠으니 묻어두고 살아왔다.
최대한 부딪치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으나 제때 해결하지 못하고 그냥 묻어둔 것들이 몸으로 나오는 것.....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번도 얼굴을 못본 시가의 어른들 제사를 위해 장을 보고 음식을 하는 것,
그 자체가 너무 피로했지만,
그 과정을 꾸역꾸역해야만 하는 내 상황이 괴로웠다.
대단한 걸 하지는 않지만,
제사와 명절 마다 - 그저 그 음식들을 (도대체 누구를 위한 음식인지)- 형님네 식구들까지 잡솨야해서 그리 많은 전을 해야 하는가. 그걸 왜 내가 해야하는가. 그런 사사로운 부조리들부터 ... 빌려간 돈을 갚지 않으면서 잘먹고 사고싶은 것을 사며 그들을 보는 것은.... 고역이었다. 매달 그들이 빌려간 돈의 이자가 빠져나갈때마다 내 영혼도 빠져나가는 것 같았지.
그리고 이틀 뒤 또 같은 증상이 나와 응급실에 갔다.
그러니까 제사를 앞두고 두번이나 응급실에 갔던 거다.
이틀만에 응급실에 다시 온 나는 한참이나 안정을 취하고 돌아가야 했다.
게다가 그날은 남편이 퇴근하기 전 저녁 시간에 갑자기 증상이 나와
친정아버지와 함께 병원을 갔고,
이제 완연한 노인이 된 아버지가 .... 응급실 불편한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계신 모습은
.... 죄송하고 슬펐다.
인생은 도대체 뭘까.
그리고 자정이 지나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다음날 아침 내게 물었다. "제사 장은 봤어?"
헛웃음이 나왔다.
도대체 사랑이 뭘까. 나는 뭐에 홀려서 이 남자와 결혼한 것일까.
아무 대책 없이 결혼해
아무 대책 없이 새끼를 둘이나 낳았는데
나는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나.
제사고 나발이고 니가 가라 하와이, 하고 싶었지만
나는 제사음식을 준비해서 시댁에 갔고
제사도 올렸다.
시어머니는 지나번 수술한 곳이 아프다고 뭐라고 하셨지만
아들들도 큰며느리도 작은며느리도 장성한 손녀들도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