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다 아프다]
아들을 병원에 두고 온 날은 많이 우울했다.
아무리 갑상선 암이 별거 아니라고 해도 그래도 암수술인데...
이튿날 출근하는 길에도 기분은 나아지지 않고 우울이 더 깊어졌다.
최근에 일어난 일들 때문에 내가 제대로 힘들어하지도, 우울해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감정일 거라고 스스로 진단했다.
그러나 나는 역시 가벼운 사람이다.
어제 오전에 통화할 때 아들의 목소리가 좋지 않아서 계속 마음이 안 좋았는데 오후가 되니 컨디션이 많이 좋아졌다며 편의점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는 말에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지...
우울은 무슨...
오늘은 병원 1층에 있는 던킨도넛에 가서 커피와 도넛을 사느라 주사시간을 놓쳐서 간호사의 호출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암환자가 그렇게 단 음식을 먹어도 되냐며 잔소리를 했더니 허락을 받았다는데 진짜인지 거짓말인지 알 수 없지만 따지기도 귀찮고 소용도 없으니 그냥 넘어가준다.
그리고 이제 와서 하는 말이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간병인 출입이 제한된다고 한다.
나도 수술첫날이라 출입이 가능했던 것이고 다음날부터는 어차피 허락되지 않는다는 말을 들으니 비로소 마음이 편해졌다.
진작 말해줄 일이지.
알았더라면 내가 그렇게까지 미안해하고 우울해하지 않았을 거 아냐.
입원수속 때 안내해 준 내용이라는데.
우리 가족이 심각한 경우에도 농담을 주고받는 습관이 있다 보니 그게 조절이 안 되는 경우가 있다.
아들 환자복을 갈아입힐 때 목에 연결된 피주머니를 양쪽 가슴에 집게로 꽂아주면서
"찌찌 달아줄게"
했는데 아들이 아무 말을 안 해서 뻘쭘해지는 바람에 분위기 파악 못하는 철딱서니 엄마가 됐다고 딸에게 말했더니 딸은 재밌다고 웃는다.
지금은 우스갯말로 하지만 그 순간에는 내가 정말로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아들을 신경 쓴답시고 물 좀 마셔라, 뭘 도와줄까 하며 계속 말을 시키다 보니 아들도 귀찮았는지 내가 집에 갈 때 아쉬움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였다.
딸은 간병을 할 때 입의 혀처럼 어찌나 필요한걸 잘 알아서 척척 해주는지 내가 감탄을 했는데 나는 정말 이런 데는 소질이 하나도 없다.
열이 나던 딸은 다음날 많이 좋아진걸 보니 코로나는 아닌가 보다.
무심한 남편은 아들은 괜찮냐, 수술한 병원은 어디냐 라는 딱 두 가지 질문을 하고 입을 닫는다.
아들에게 농담으로 아빠한테 간병해달라고 할까 물었더니 기겁을 한다.
초등학교 때 다리 골절로 수술을 하고 아빠와 함께 있던 때를 떠올리면 너무 싫었다면서.
그때 아들의 좁은 침대에 같이 누워 낮잠을 자던 남편이었다.
내가 출근을 하면서 병원에 있으라고 하니 정말 억지로 꾸역꾸역 (지겨운) 시간을 보냈다는 것을 잘 안다.
무심한 남편이라고 구박을 많이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받아보지 못한 부성애를 만들어서라도 하라고 강요했다는 생각이다.
이럴 때마다 고인이 된 시아버님을 자꾸 들먹이게 되는데 이제 그것도 그만하고 싶다.
시아버님과 산 세월보다 나와 함께 한 시간이 더 많기 때문이다.
남편이 나를 안 만났더라면 지금의 모습은 아닐 거라 생각하면 시아버님만큼 나의 잘못도 있다.
남편은 안 하는 게 아니고 할 줄 모르는 것이다.
내가 신혼 때 이런 것을 알았더라면 그렇게 힘들게 살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그때는 모르는 게 또 당연할 수도 있다.
아빠를 교회로 인도하는 게 엄마의 사명이라며 자기들에게 떠넘기지 말고 죽기 전에 꼭 하고 가란다.
농담으로 하는 말이지만 농담으로 듣지 않는다.
이식환자가 암까지 걸린 것이 해석되지 않았더라면 아들도 나도 지옥을 살았을 것이다.
함께 울어주는 공동체가 있어서 아들도 나도 감사가 나왔다.
만일 이 교회를 만나지 않고 예전처럼 살았더라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며 아들과 이야기했다.
이런 세계에 아빠도 와서 기쁨을 누렸으면 좋겠다고 아들은 말한다.
나도 그렇다.
낙이 없으니 술도 먹고, 담배도 피우고, 도박도 하고, 외도도 하고 그랬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도 이 교회에 오기 전에 그랬으니까.
언젠가는 오겠지만 하루라도 빨리 남편도 그리스도를 만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