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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걸음씩 Sep 20. 2024

암이 왜 왔는지 알았어.

[아들의 고백]

기독교에 대한 온갖 비난과 조롱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크리스천에게 '아닌 건 아니다'라는 게 있다.

우리 가족에게는 불신결혼이 그것이다.

나는 당대신앙이라서 남편과 결혼할 때 불신결혼의 개념조차 미탑재된 상태였다.

오직 그의 돈이 나를 행복하게 해 줄 거라 믿고 한 결혼이다.

그러나 살아보니 '남편이 함께 예수를 믿었더라면'이라고 생각되는 적이 여러 번 있다.


이번에 아들이 갑상선암 수술을 받으면서 정말 힘들어했던 게 있다.


'왜 나야?'


라는 생각이다.

나도 그랬다.

차라리 내가 걸렸으면 했다.

심지어 한때는 갑상선 암을 달라고 기도한 적도 있다.

돈문제로 너무 힘들어서 살 소망까지 잃었던 그때, 그나마 좀 착한 암이라고 하는 갑상선 암에 걸려서 진단금이라도 받아 빚을 정리하고 싶었었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내가 아닌 아들에게 응답해 주셨다.

(이런 기도는 정말 함부로 할게 아니다.)


아들은 투석과 신장이식만으로도 남들이 겪지 않는 고난을 겪었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하지만 아들을 바라보는 내 입장은 조금 달랐다.

말을 하면 혹시나 상처가 될까 하여 입조심을 했지만 이식한 후 아들은 걱정덩어리였다.

아들은 대학교 입학 당시부터 지금까지 여자친구가 없던 적이 없다.

투석할 때는 그래도 몸이 힘드니 텐션 자체가 아들의 생활을 자제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식 후에 아들은 모든 것에 날개가 달린 것 같았다.

식욕을 별로 느끼지 않고 살다가 먹고 싶은 게 많아지니 절제가 되지 않았다.

집에 함께 살았더라면 내 잔소리 때문에라도 덜 했겠으나 독립해서 살다 보니 제동을 걸어줄 사람이 없었다.

살은 급속도로 쪘다.

한눈에 봐도 건강에 이상이 생길 것 같았다.

두 달에 한번 검사를 하러 갈 때마다 가슴을 졸이며 걱정을 하다가도 '이상무'라는 소견을 듣고 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장애인 특채로 들어간 회사에서는 능력을 인정받다 보니 직장에서도 겉으로는 티를 안내도 게으르고 능력 없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마음으로 무시가 된다고 했다.

결정적인 것은 신앙이 없는 여자친구를 사귀는 것이었다.


'불신결혼'


예수를 믿는다고 꼭 예수 믿는 사람과 결혼해야 하는 건 너무 이기적이지 않냐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정말 믿음이 있다면 이것이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지 알 것이다.

나는 삶으로 불신결혼의 힘든 여정을 두 자녀에게 보여줬다.

아들도 머리로는 그 문제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기에, 여자친구를 전도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했다.

여자친구도 아들을 따라 교회에 몇 번 오기는 했지만 샤머니즘이 강한 집에서 자란 탓인지 교회가 안 맞는다고 했단다.

아들은 여자친구보다 자기가 더 많이 좋아했기 때문에 언젠가는 여자친구가 함께 교회에 다닐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것 같다.


이번에 암수술을 하면서 아들이 많이 외로움을 느꼈는데 그 이유는 이런 문제를 본인만 겪고 있다는 좌절감 때문이었다.

누군가가 자기와 똑같은, 말하자면 이식도 하고 암도 걸리는 이중고를 겪은 사람이 있다면 위로가 될 것 같다고 한다.

아무리 힘든 사람들 이야기나 간증을 들어도 자기 문제가 가장 크게 느껴지는 건 누구에게도 당연할 수 있다.


아들이 여자친구와의 감정적 괴리를 호소한 때가 바로 이때다.

정말 잘 챙겨주고 이야기도 들어주는데 딱 거기까지라는 거다.

그 후에 느껴지는 공허함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그나마 딸과 나, 셋이 대화를 할 때는 신앙의 문제로 풀어가니 조금은 낫다고 했다.


어제 아들에게서 톡이 왔다.


"여자 친구랑 어젯밤에 이별했어"


3년의 연애에 마침표를 찍은 용기와 결단에 딸과 나는 칭찬을 해 줬다.

바로 이어지는 아들의 톡이 반전이다.


"어제 새벽 세시까지 계속 울었어.

그러다가 인터넷으로 설교를 듣다 보니, 내가 여자친구랑 정리할 생각만 했지 회개를 안 했더라고.

그래서 기도했지.

정말 진심으로 하나님한테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근데 그러다가 방언 터짐.

전개 이상함"


나도 놀랐다.

그러나 정말 기뻤다.

더 기쁜 건 그다음 아들의 고백이다.


"근데, 어제 그렇게 기도하면서 암도 결국 내 불신교제로 인한 거라는 해석이 됐음.

 다윗이 밧세바랑 만든 첫 자식이 죽은 것처럼 나도...

그래도 설교를 통해 회개하고 나면 진정한 사랑을 하게 된다는 말씀을 주셔서 좋음"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지려고 그대로 옮기다 보니 본의 아니게 음슴체 대잔치가 되었지만 어찌 됐든 아들의 고백에 이제 정말 하나님을 만났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벅차올랐다.

딸과 나는 아들에게 약속했다.

이제 더 적극적으로 아들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딸이 아들에게 농담처럼 했던 말이 있다.


"네가 그렇게 음란하니까 하나님이 그런 몸에 널 가두신 거야."


그 말에 모두 웃었지만 인정했다.

이제는 다른 사람의 말이 아닌 자기의 체험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된 아들.

그 아들에게 기도의 응원을 한껏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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